대한민국에 흐르는 남성우월주의

그 안에 억눌려 살아온 자아

by 거북이와 달팽이

지난 5년간 내면아이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치유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왜 나의 내면아이는 이토록 치유하기 어려웠던 것일까?

나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 사회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항상 남자가 리드해야 한다는 생각. 남자는 양보하고, 남자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금의 내면아이를 만든건 아닌지.

나의 내면아이를 살펴보고, 대한민국에 흐르는 남성우월주의와 어떻게 결합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결혼 초기. 내면 아이가 뭔지도 모를 때

착한 남편 콤플렉스에 빠져서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만든 모습들이

아내에게서 보이는 것이 두려워져서 내 속 마음을 외면하기 급급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의 첫번째 내면아이를 찾으면서 착한 남편 콤플렉스를 극복한 후에는

자발적 의지로 아내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성관계의 내밀한 부분까지도 소통하면서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였고

나의 열등감을 드러내고 공개함으로써 부부관계에서의 일대 전환점이 맞이하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아내와 있는 것이 편안했고 아내에게 마음 편하게 의지할 수 있어 행복했다.

마치 올바른 부부의 표준인양 교만을 떨며 주변의 다른 부부를 내 마음대로 평가했다.

왜 나는 그토록 가족을 우선시하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일텐데, 나는 왜 가족에 집착하고 있는가?

‘완벽한 부모', '완벽한 가정'에 대한 나의 강박이 나의 내면아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의 울타리를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


나는 나의 부모가 직장생활보다 자식에 우선을 두고 사는 삶을 보고 살아왔고

그것이 나에게는 '부모'라는 것의 기준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는 나만의 철저한 철학이 세워진다.

바로 여기서 아내의 희생을 강조하는 대한민국 DNA 속에 흐르는 신조와 섞인건 아닐까?


‘엄마는 수퍼맘이 되어야 하는 것. 직장생활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여자니까. 엄마니까.’


나의 철학을 철저히 지지해주는 대한민국의 분위기 속에서 아무런 죄책 감 없이 아내에게 이를 요구한다.

왜 죄책감이 없을까?

난 이미 착한 남편 콤플렉스도 아닌 걸 알고

대한민국 남편 평균 이상의 가정적 성향을 보이며

많은 주변 엄마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는 것을 아니까.

거기에 난 남들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해보면서

내 내면아이를 더욱 합리화시켰으니까.

어줍짢은 내면아이 찾기와 우리 사회전반에 만연한 분위기가 나를 더욱 가두어버린 것이다.


이번엔 아내의 입장으로 가보자.

똑같이 사관학교를 졸업해서 똑같이 군생활을 하면서 정확히 똑같은 돈을 벌어 가정에 기여한다.

그러나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아내는 엄마로서 부수적인 업무까지 해야 한다.

아침 요리, 저녁 요리, 집안 청소까지.


왜?

대한민국 여자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교육되었고 대부분이 그렇게 하니까.

착한 남편, 부러움을 사는 남편이 있어서 가사를 잘 도와줘서 좋긴한데

왜 나한테 고마워하거나 미안해하지 않을까?

적어도 감사함이라도 알고 있다면 내가 덜 억울할 텐데..

이건 뭐 당연한 거고. 거기에 더 요구한다.

회식을 할 때도 난 왜 일찍 들어가야 하지?

왜 남편은 으레 늦게 들어와도 되고

나는 애들 밥 준비 다 해놓고 나가면서도 남편한테 미안해하고 남편은 선심 쓰듯 나를 보내주는 거지?

화가 난다. 차라리 혼자 살지. 난 이미 충분히 부모로서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어느 수준까지 맞춰야 하는 거지?

부담된다. 싫다.

이런 것조차 남편이 원망스럽다.


다시 나로 돌아온다.

어쩌면 나의 ‘완벽한 부모' 콤플렉스 때문에

대한민국에 널리 퍼진 남성위주의 사회때문에

아내의 '평범한 삶' 조차도 '일에 미친 삶'으로 치부한 건 아닌가?

어쩌면 그것이 더 답에 가까울 수 있다.


내려놓자. 내면아이를 알았다면 치유하고 보내주자.

대한민국의 이런 분위기도 당당히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