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기-원인찾기-정리하기-공유하기
내가 느낀 감정을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단순히 “화가 난다”로는 이 복잡한 감정이 정리되지 않았고,
정리하지 않고서는 왜 화가 나는지 모르니 더 비참해지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감정을 해부해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드는 마음은 섭섭함이었다.
공개된 자리에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말해주지 않았음에 대한 실망스러움이다.
다음으로 밀려오는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평소 주변 동기들에게 아내와의 사랑을 자랑해온 나로서는
주변 동기들에게 마치 나만 아내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존재로 비친 것 같아 부끄러웠다.
아내가 나에게 종속되어 있음을 알리고 싶었는데 그렇지 않아 더욱 그러했다.
그다음 감정의 폭발은, 배신감이었다.
비록 자신의 입장이 그러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해야 하는데 부부 혹은 가족에 대한 것이 메인 주제가 되지 않았음에 배신감이 들었다.
적어도 나는 인생의 목표를 가족에게 세웠는데 아내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에 배신감이 들었다.
그 다음의 감정은 보복심리였다.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나’일 텐데 그런 나는 ‘나’를 일정 부분 포기하면서 ‘너’를 품고 ‘가족’을 위해 희생(?)할 준비를 하는데 아내는 자신만 생각하는 것 같아 손해 보는 기분이 들었고 나도 하기 싫어지니, 어디 한번
나도 그렇게 해보자 하는 심리가 내 안에서 스믈스믈 오른다.
이제, 이렇게 든 감정들에 대해 원인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내는 사관학교 생활 간 주변 동기들로부터 나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고,
늘 밝게 웃었으며 학업성과도 좋아 늘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늘 동기들로부터 정치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사진을 찍을 때 웃는 얼굴은 어색하기 그지없었으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도 성적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나에게 아내는 동기지만 동기라고 하기엔 너무 멀게 느껴졌다.
졸업 후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아내에게 열등감이 있다고 느끼진 못했다.
졸업을 한 후엔 사관학교의 평가잣대보다 다른 많은 사회적 잣대가 있었고,
나는 그 사회적 잣대 중 적어도 몇 가지는 아내보다 나은 것이 있었다.
부모의 사회적 위치와 부, 남매의 학벌과 직장이 사회적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었기에
내 열등감은 이내 감춰졌다. 나 스스로도 느끼지 못할 만큼.
하지만 그 열등감은 온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 내 가슴 깊이 숨어버렸고
부부생활을 하는 동안 간간히 고개를 드러냈다.
열등감은 아내가 나보다 높은 위치에 가게 될까봐 항상 저변의 두려움으로 깔려있었고,
이런 내 감정이 스스로에게도 떳떳하지 못하기에 애써 부정하였고 이내 다른 감정으로 두려움을 바꿔버린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아내가 군인으로 성공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계속 다른 길을 택하라며 강요한다.
왠지 아내에겐 운전도 시키면 내 영역을 빼앗기는 것 같은 위협감도 든다.
분리수거, 이삿짐 옮기기 등 남자의 일로 여겨지는 많은 부분들이 아내가 스스로 해낼 때
'고맙다' , ‘편하다’는 생각보다 능력 있는 아내가 내 자리를 빼앗아가는 두려움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아무리 피곤해도 내 영역을 끝까지 지키려 들었다.
내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여전히 이거다라고 답하긴 어렵지만 내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확신한다.
이러한 나의 아킬레스 건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숨기기에 급급했다.
이러한 감정들 중에서 분명 감정의 왜곡에서 온 것들이 있을 것이고 당시 상황에 당황하여 생긴 새로운 감정들도 있을 것이기에 감정들에 대해 정리하고 왜곡된 감정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내 감정에 대한 답을 찾아보면
부끄러운 감정 그 자체는 어쩔 수 없음. 특히 군의 경쟁적 구조에서는 더욱 그럴것임.
이런 감정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함
걱정은 내 자존감과 연계됨. 내 자존감이 강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음.
미래의 불확실한 일을 지금 걱정하는 것은 바보. 진급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임.
아내가 똑똑한 것에 매력을 느꼈기에 결혼을 했는데, 그것에 불만을 느낀다는 건 말이 안 됨.
가장으로서의 입지 문제는 아내가 남편을 얼마나 존중해주느냐의 문제이지 대중앞에서의 발언으로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공부를 했는데,, 더 이상 어떤 양보를 더 원하는 거지? 아내가 나에게 희생을 강요한 적도 없고 각자가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한 것에 대한 결과임.
열등감이고 나보다 능력이 앞선 아내에 대해 감당해야 할 내 몫.
남의 시선으로부터 극복하고 나와 여보와의 관계에 더 포커스를 맞추어야 할 문제이다.
그 결과 섭섭함과 부끄러움은 진실로 느낀 감정이었지만 그 이후에 느낀 배신감과 보복감은 섭섭함과 부끄러움이 해소되지 않고 증폭되었음을 느꼈다.
아내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이번 일이 더욱 힘들었던 것이다.
아내에 대한 섭섭함도 친구들 앞에서 겪은 부끄러움도 모두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열등감 때문에 아내를 내 곁에 종속시키려 했고
나만 바라보기를 바랐기에 아내가 자립하는 모습에 심한 분노를 느꼈을 것이고
등기생들의 비아냥에 내 열등감이 드러나는 것 같아 더욱 분노를 느낀 것이다.
내가 느낀 이 감정을 온전히 아내와 공유하였다.
나로서는 굉장히 부끄러웠고, 내 그릇이 이것밖에 안된다는 것을 아내에게 알리는 것 같아 더 힘든 과정이었다. 그러나 아내와의 공유가 무엇보다도 중요하였고
문제의 해답은 나와 아내에게 있었기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그리고 아내로부터 이해받고 공감받는 과정에서 조금씩 그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