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메탈 외길인생

어쩌다보니 10년이 넘어버렸네

by 핵보컬

나는 2007~2008년도쯤에 첫 밴드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몸담았던 밴드 중 세 개가 해체되었고 현재 하고 있는 팀이 네 번째이다. 보통 보컬의 경우에는 어느 한 부분에만 특화되어 있지 않은 이상 팀을 바꿀 경우에는 랩메탈을 하던 사람이 어느 새인가 펑크를 하고 있고, 메탈을 하던 사람이 팝 밴드를 하고 있는 경우도 드물지는 않은데, 나는 지금껏 항상 뉴메탈이라는 한 장르만 팠다. 고등학교 때 린킨파크와 콘, 림프 비즈킷 같은 팀을 많이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그린데이, Blink-182도 좋아했고 너바나, 크리드, 더 콜링이나 라이프하우스도 좋아했다. 어쩌다가 밴드를 시작한 이래 약 15년간 나는 뉴메탈 외길인생을 살게 된 것일까?


대학교 밴드부 시절에 나의 주 레퍼토리는 더 콜링이나 니클백, 후바스탱크 같은 밴드들의 곡들이었다. 심지어 본 조비나 벨벳 리볼버, 미스터 빅도 커버했다. 이따금 System of a Down의 Chop Suey나 린킨 파크의 곡들도 섞여있기는 했지만 일단 동아리의 연주 멤버들이 대부분 선호하지를 않았고, 뉴메탈 곡들의 상당수가 기타 튜닝도 다른 일반적인 곡들과 다르다 보니 공연 때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당시에 뉴메틀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공연 때 쉽게 올리지 못했던 곡들을 동아리가 아닌 나의 밴드를 결성한 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니(초반에는 우리 밴드의 오리지널 곡보다 림프 비즈킷, 콘,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등의 밴드 카피를 많이 했다) 마냥 신이 났던 것 같다.


첫 밴드, 첫 공연


시간이 지나 정작 카피를 벗어나서 우리 곡들을 만들기 시작하니 마냥 랩 하고 소리 지르는 것만 하기보다는 멜로디컬한 요소를 많이 도입하고 싶었지만, 이미 뉴메탈 스타일 곡 만들기의 타성에 젖어버린 우리 팀은 그 틀을 잘 벗어나지 못했고, 점차적으로 창작 활동이 부진해지다가 자연스레 멤버 개개인의 사정으로 해체의 수순을 밟았다. 이후에는 다른 팀들을 하면서 뉴메탈이라는 장르를 좀 벗어나 볼까 했지만,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팀 모두 린킨파크/트러스트컴퍼니 류의 뉴메탈, 세븐더스트 류의 뉴메탈, 야심 차게 이거 저거 다 시도는 하지만 결국 뉴메탈 이런 식으로 귀결된 것 같다.


일단 내가 노래를 만들 때에 욕심 및 불안으로 이것저것 때려 넣다 보니 그렇게 되는 부분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노래만 하고 있다 보면 왠지 이 부분에선 소리도 지르고 싶고, 계속 같은 것만 하고 있으면 좀 단조로우니까 이 부분에선 랩도 좀 해야 할 것 같고 어느 순간 하고 싶은 대로 다 때려 넣으면 모든 곡이 애초에 어떤 것을 의도했든 간에 뉴메탈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나의 이런 패턴에 멤버들이 익숙해지면 어느 순간부터 내가 자제하고 싶어도 그들이 유도하는 경우도 많다. '아 이 부분에서는 좀 심플하게 가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음 여기가 좀 심심한데 그로울링 좀 넣어봐 줄래?" "여기 왜 랩 안 해?" 이런 식으로 흘러가서 결국 또 항례의 패턴대로 곡이 완성된다.


첫 밴드를 하던 시기, 대한민국 인디씬의 뉴메탈 크루였던 신철단


다른 장르라면 무슨 장인마냥 내가 15년간 변치 않고 한 길을 걸어온 거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좀 자랑도 하고 부심도 부리기 마련인데, 이제껏 나도 마찬가지였고 상당수의 뮤지션들이 본인의 메인 장르가 뉴메탈인 경우에는 이상하게 겸손해지고 작아지거나, 아예 정체성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해외의 유명 밴드들조차 '뉴메탈'이라는 용어가 인터뷰 때 떠오르면 "우리 뉴메탈 아닌데?!"라고 알러지마냥 거부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도 15년간 뉴메탈 밴드를 하면서도 은근히 그 틀에 스스로를 집어넣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처음 뉴클리어 이디엇츠를 시작하고 한 동안은 "우리는 뉴메탈 밴드가 아닙니다."라고 여기저기 어필했던 것 같다.


과연 뉴메탈 밴드들은 왜 이렇게 락/메탈의 다른 종사자들만 만나면 스스로 작아지는 걸까? 아무래도 짧고 굵은 유행의 시기(한 동안 액션/호러/SF/코메디를 가리지 않고 모든 장르의 영화에 뉴메탈 곡들이 들어갔고 심지어 국내 CF, 드라마에도 뉴메탈 곡이 삽입되고 국내 인디밴드가 출연하던 시기가 있었다)를 지난 후에 거의 1년 내에 모든 미디어에서 뉴메탈 밴드들이 거짓말처럼 싹 쓸려나갔기에 뉴메탈은 철 지난 장르라는 인상이 다른 락/메탈 서브장르들보다 훨씬 강한 것 같다. 게다가 시기적으로 힙했던 과거의 문화(즉, 뉴트로로 팔기에 적합한 컨텐츠)로 인지되기에는 애매하게 덜 오래된 느낌이고 무난하게 어디에 융화되기에는 그 자체적인 향기(혹은 악취)가 강하기에 마치 2004~2007년의 국내 패션이 패션의 암흑기처럼 인지되는 것처럼 뉴메탈 역시 락음악을 죽여버린 암덩어리처럼 치부되는 것이다. "나 림프비즈킷 좋아해."라는 말을 하는 순간 락알못, 음알못으로 취급되는 건 순식간이었고 주변으로부터 "그런 쓰레기 같은 걸 좋아한다고?"라는 소리라도 안 들으면 다행이고 좋게 봐줘도 "아니 나도 예전엔 좀 듣긴 했는데 그런 걸 아직까지 듣는 건 좀 그렇지 않냐?"라는 에둘러하는 핀잔을 듣기 마련이었다.


상대를 잔인하게 살해하기 전 데드풀의 대사


하물며 리스너가 핀잔을 들을 정도라면 종사자라면 그 이상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화려한 기타 솔로나 7분짜리 대곡, 드럼의 트윈 페달 묘기, 장대한 컨셉앨범 메이킹 등의 테크니션으로 인정받을 만한 요소와는 거리가 먼 음악이다 보니 뉴메탈은 유행할 당시에도 '실력 없는 놈들이 적당히 되는 대로 쉽게 하는 음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뉴메탈이 몰락하기 직전에 많은 기획사들이 돈벌이를 위해 애초에 뉴메탈이 아니었던 밴드들의 음악에 간섭해서 억지로 랩메탈 요소를 욱여넣어 어정쩡한 섞어찌개를 만들어 내보내거나, 정말 실력이 없는 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적당히 츄리닝이나 스냅백 걸치고 나와서 엉터리 랩으로 후진 연주를 커버해보려는 경우들이 실제로 꽤 있었기에 이미지를 구긴 것도 사실이다. 즉, 한 동안 "저는 뉴메탈을 합니다."라는 말은 "연주/노래 잘 못해요." "우리 음악은 촌스러워요."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기에 뉴메탈 뮤지션들은 자체적인 방역과 이미지 세탁에 적극적이었던 것이다.


음악 매거진계의 동네북 뉴메탈


물론 내가 그동안 뉴메탈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은 단순히 주변 의견에 휩쓸리고 눈치가 보여서는 아니었다. 그런 요소가 무의식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끼쳤을지는 모르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 역시 취향이 한 동안 바뀌어서 뉴메탈이 아닌 다른 장르를 더 많이 듣게 됐기 때문이었다. 여러 장르를 섞는 하이브리드한 음악에 대한 선호도는 여전했지만, 단순히 힙합과 메탈을 섞은 원초적 뉴메탈보다는 Twenty One Pilots나 Thirty Seconds to Mars, Crossfaith 같은 팀의 음악에 끌리고 있었고 그런 시도를 내가 하는 밴드에서도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간 고정되어버린 창법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연주 멤버들도 뉴메탈을 하던 습관적 연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인지 그 어떤 시도를 해도 뉴메탈이라는 꼬리표가 늘 내가 하는 밴드를 따라다니는 듯해서 의도적으로 더 그것을 벗어나려고 했던 것 같다. 우리 음악을 규정하는 새로운 용어를 막 찾아서 갖다 붙여 보기도 하고 웹진 인터뷰 등에서도 항상 '우리는 뉴메탈 밴드가 아니다.'라는 것을 늘 강조했다.


다들 청소년기에 잘 들어놓고 왜 이래?


강박적으로 뉴메탈에게서 도망 다니다가 결국 그 뜻을 접게 된 시기는 정규 1집을 내고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였던 것 같다. 러시아의 몇몇 리스너들에게서 "이런 뉴메탈이 너무 좋다"라는 응원의 메시지가 오기도 했고, 당시 수록곡 중 가장 뉴메탈스러웠던 곡인 'No System'이 팟캐스트에 추천으로 오르기도 하면서 '결국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것은 이런 것이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전에 언급한 도쿄 공연 두 번째 날, 공연을 마친 후에 다른 밴드 멤버로부터 '당신들의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밴드인 Drowning Pool의 음악이 떠올라서 마음껏 뛰어놀았다.'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에 드디어 '그래. 이래서 좋다는데 굳이 내가 피해 다닐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동시에 사실 내가 어릴 때 그렇게 좋아했던 장르인 뉴메탈 자체에, 함께 크루까지 만들면서 예전에 장르의 영광을 부활시켜보세 외쳤던 동료들에게, 그리고 쉬는 시간 귀에 이어폰 꼽고 콘이나 림프비즈킷을 들으면서 '나도 나중에 이런 음악을 진짜로 할 거야!'라고 마음먹었던 어릴 적 스스로에게 그간 뉴메탈을 홀대했던 것에 대해 좀 미안해졌다.


초창기 공연 직후


첫 문단에서 나는 사실 뉴메탈만 좋아했던 것이 아닌데 왜 뉴메탈 외길인생을 걸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적었으나, 지금 되돌아보면 사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는 뉴메탈을 제일 좋아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좋아하는 뉴메탈 밴드들의 곡을 들으면서 '내가 뮤직비디오 감독이라면 이 곡에선 장면을 이런 식으로 어레인지 할 거야.'라든지 '내가 나중에 보컬이 된다면 이런 부분에선 이런 식으로 퍼포먼스를 해야지.'라는 공상에 빠졌고, 노래방에서는 항상 체스터 베닝턴처럼 목을 긁는 창법, 조나단 데이비스처럼 재수 없게 읊조리는 방법, 프레드 더스트처럼 경박하게 랩 하는 법을 마스터해보려고 기를 쓰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 스스로 이 기억들을 저 뒤로 젖혀두고 '아닌데? 나 뉴메탈 그렇게 안 좋아했는데?'라고 스스로를 기만했던 것일까.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음악이 뉴메탈에 가깝다면 일단 나 스스로가 다시 솔직하게 뉴메탈을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끄럽지만 이런 시기도 있었는데 뭘...


매번 글을 쓰는 데에 일정한 패턴이나 틀을 정하지는 않으려고 하지만, 앞으로 한 동안은 뉴메탈 이야기를 좀 풀어보려고 한다. 다른 블로거나 글쓴이들처럼 일일이 장르 밴드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역사를 살핀다거나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여 '뉴메탈이 하루아침에 몰락한 원인' 같은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그냥 내 관점에서 왜 이 음악이 여전히 매력적인지, 어릴 때의 나는 왜 이 음악에 사로잡혔는지 등에 대해 철저히 개인적인 시점으로 편하게 쓰고 싶다. 꽤나 긴 시기 동안 마치 친하지만 어디 내놓기엔 좀 부끄러운 친구처럼 내 안팎에서 홀대받았던 뉴메탈에 대해 이제는 좀 칭찬 타임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리고 뉴메탈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뉴메탈 외길인생을 걸어온 나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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