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쓰 호러 컨셉 바 Trick or Treat
시작은 어느 한 여행 책자였다. 흔하디 흔한 여행 코스에 질린 이들을 위해서 독특한 곳만 소개하는 한 트래블 가이드 시리즈, 컨셉은 해당 지역에 사는 예술가들이 자신의 단골집이나 여행객에게 개인적으로 추천하고픈 장소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 책에서 유독 한 장소가 눈에 띄었다. 얼핏 봐도 일반인의 눈으로 봤을 땐 절대 방문하고 싶지 않은 비주얼과 분위기를 자랑하는 호러 컨셉의 바 Trick or Treat이었다.
독특한 이들만을 단골로 타겟팅한 듯한 바 Trick or Treat은 어울리지 않게 도쿄의 부자동네로 이름난 롯폰기에 위치해 있다. 물론 롯폰기의 번화가 한복판의 가운데, 큰 길가에서는 다소 벗어난, 구글 맵이나 타 지도 앱을 켜서 주소를 찍고 가야 겨우 찾아갈 수 있는 골목 안쪽의 위치이다. 건물 외벽에 간판이 있는 게 아니라면 절대 장사를 하고 있을 것 같지 않은, 마치 겉보기에는 다세대 주택의 2층인듯한 곳에 바의 입구가 있다.
밖에도 분명 해가 진 이후 2~3시간이 경과한 저녁과 밤 사이의 시간대였는데, 내부는 그보다도 더 어두운 구석 한 복판에 시간이 멈추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각종 호러 아이콘들이 테이블 좌석 한 군데를 장식하고 있다. 엑소시스트의 리건, 사탄의 인형의 쳐키 등의 캐릭터 인형 및 마네킹들이 섬뜩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손님을 맞는다. 혼자 온 주제에 테이블에 앉을 용기는 들지 않아 바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으면 그 어느 호러 아이콘 못지않은 비주얼의 바텐더와 마주하게 된다. 산만한 덩치와 얼굴을 가득 채우는 스모키 화장 및 분장을 한 바텐더는 별다른 말을 첨부하지 않고 조용히 메뉴판을 건넨다.
예전에 세계의 공포 특급 이야기 류의 책에서 식인을 컨셉으로 하거나(물론 컨셉으로만, 실제로는 사람 신체부위를 모양만 흉내 낸 닭고기 혹은 돼지고기라고 한다), 눈알이 들어간 칵테일(이 역시 실제로는 젤리나 사탕) 등의 엽기 메뉴를 선보이는 식당들이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아쉬울 일인지 다행인지 이 가게의 메뉴는 굉장히 멀쩡하고 번듯하다. 우리가 이름을 익히 들어본 통상적인 칵테일과, 안주 및 식사 메뉴에는 명란 파스타 같은 나름 고급 메뉴까지 있다. 점심을 늦게 먹었다는 이유로 저녁을 건너뛰어서 약간 배가 고팠던 시점이라 잭앤콕과 명란 파스타를 시켰다.
그나저나 칵테일은 바텐더가 만든다고 치고, 뒤편 안 보이는 공간에 요리사와 부엌이 따로 있나 생각이 든 찰나, 공포 비주얼의 ‘그 바텐더’가 앞치마를 둘러메고 조용히 바 구석에서 가스레인지를 켜고 파스타를 볶기 시작한다. 과연 제대로 된 것이 나올까 걱정부터 들기 시작할 무렵 다른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점잖은 옷차림의 중년 아주머니인데 들어오자마자 바텐더와 살갑게 대화를 나누는 걸로 봐서는 단골손님인 듯하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주변 인테리어를 둘러보니 한 편으로는 재미있고 다른 한 편으로는 가게 주인의 집념에 가까운 호러 사랑이 느껴진다. 13일의 금요일이나 나이트메어, 헬레이저 같은 잘 알려진 호러 시리즈부터 다소 매니악한 작품까지 방대한 양의 DVD 컬렉션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고딕 풍의 인형들이 테이블뿐만 아니라 바의 한 켠에도 자리하고 있다.
드디어 요리를 끝낸 바텐더가 파스타를 조용히 내 온다. 의외로 멀쩡한 비주얼에 맛도 준수하다. 단, 거슬리는 점이 있다면 눈 앞의 비디오 화면에 펼쳐지는 영상이 Final Destination 시리즈의 잔인한 죽음 장면만을 골라서 편집해놓은 액기스 영상이라는 점과 뒤에 깔린 배경음악이 호러 영화 OST도 아니고 괴물의 괴성과 사람 비명소리만 모아놓은 것 같은 귀곡성이라는 것, 이것이야말로 어찌 보면 가게 주인의 진정한 집념이자 악취미의 진수인 것 같다.
바텐더와의 대화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단골손님인 중년 아주머니는 나에게도 말을 걸어온다. 한국에서 왔다고 말했더니 굉장히 흥미로워하는데 바텐더는 이 가게는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고 묻는다. 여행 책자를 보고 왔다고 대답했더니 굉장히 깜짝 놀라며 대체 이런 미친 가게를 소개하는 책이 어디 있냐고 되묻는다. 증거물로 마침 가방에 있던 책을 보여주었더니 단골손님과 바텐더가 신기해하면서 여러 번 책을 덮었다가 다시 펴보았다가 한다.
식사와 술을 다 마치고 가방을 들고 나서니 바텐더(인지 주인인지 이제는 잘 모르겠지만)가 비주얼에 어울리지 않는 친절이 넘치는 자세와 말투로 문 앞까지 배웅해준다. 이만하면 굳이 이 가게만을 찾기 위해서 롯폰기까지 다시 오지는 않겠지만, 다음에 이 근처로 올 다른 이유가 생긴다면 다시 방문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