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과 락의 세련된 조합이 유독 땡기는 날에 듣고 싶은 음악들
나는 정말로 사랑하는 장르이지만 솔직히 그런 입장에서 봐도 세련되었다고 보기는 힘든 음악이 뉴메탈이라고 생각한다. 뉴메탈/랩메탈은 대부분 저속하고 쌈마이 느낌이 가득하면서도 음침하고 묵직하다. 그렇기에 대중의 사랑도 받을 수 있었지만 몇몇 음악 매니아들에게는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이 때문에 락과 힙합의 조합이라는 키워드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락과 랩을 조합하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뮤지션들도 존재하기에, 두 장르의 혼합은 여전히 땡기지만 뉴메탈은 조금 물릴 때, 햄버거와 피자, 맥주의 조합보다는 오픈 샌드위치와 살라미 & 치즈 플래터와 와인이 구미를 당기는 날에 들을 만한 밴드와 뮤지션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Gym Class Heroes
1997년 결성하여 2011년까지 전성기를 누린 랩+록 밴드로, Fall Out Boy로 대표되는 레이블 Fueled By Ramen의 나름 간판 밴드 중 하나였다. 이모와 팝펑크 위주의 라인업으로 구성됐던 레이블 밴드들 중 유독 특이한 면모를 보였던 팀인데, 랩과 락을 화려한 기교 없이 꽤나 심플하게 조합하면서도 단 한 번도 팝펑크나 뉴메탈 느낌을 내지 않은 팀이다.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랩 자체가 꽤나 탄탄하며, 멜로디 센스도 좋은 데다가 적재적소에 Fall Out Boy의 Patrick Stump, Maroon5의 Adam Levine, OneRepublic의 Ryan Tedder 등의 좋은 보컬리스트들을 피처링으로 배치해서 퀄리티 면에서 기복이 없는, 그러면서도 가볍게 듣기 좋은 음악을 선보이는 팀이다. 2011년의 Papercut Chronicles II 앨범을 끝으로 긴 휴지기를 갖다가 얼마 전에 페스티벌에서 재결성 공연을 했으니 추후 활동 및 재기를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추천곡: Taxi Driver, Clothes Off (feat. Patrick Stump), 7 Weeks (feat. William Beckett), Stereo Hearts (feat. Adam Levine), The Fighter (feat. Ryan Tedder)
twenty one pilots
드러머 Josh Dun과 그 외 나머지 모든 파트(...)를 담당하는 멤버 Tyler Joseph로 구성된 2인조 밴드로, 힙합과 락, 일렉트로닉부터 레게와 포크까지 모든 장르의 음악을 융합하는 다재다능한 팀이다. 본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음악을 Schizophrenic Pop(정신분열증 팝)으로 칭할 정도로 어디로 전개가 튈지 모르는 재기 발랄한 곡 진행과 장르의 조합이 매력이다. 마치 에미넴의 조금 너드스러운 동생과도 같은 느낌의 보컬 타일러의 속사포 래핑이 실제 밴드 사운드에 어우러지면서 날카로운 공격성도 띄지만, 세련된 팝 센스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곡들의 기승전결을 능숙하게 컨트롤하며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지만 누구도 무시할 수는 없는 훌륭한 퀄리티의 음악을 선보이는 팀이다. 국내에도 내한한 바가 있으며, 독특하게도 라이브할 때 이따금 곡의 시작에 "안!녕!하세요!"를 외치며 스타트를 끊을 때가 있다. 적당히 공격적이고 특이하면서도 팝적인 센스를 놓치지 않는 음악을 듣고 싶을 때 틀면 좋다.
추천곡: Guns for Hands, Car Radio, Heavydirtysoul, Tear in My Heart, Chlorine, Holding On To You
Kasabian
브리티쉬 록밴드들이나 개러지 밴드들과 종종 함께 묶여 분류되는 팀이지만, 카사비안의 음악에는 생각보다 꽤 자주 랩과 힙합의 요소들이 치고 나올 때가 있다. 'L.S.F.' 같은 초기 곡부터 'SCRIPTVRE' 같은 최근 곡까지 대놓고 랩을 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Cypress Hill의 'Insane in the Brain'을 커버한 적도 있다. 밴드의 팬의 입장에서 들으면 신성모독(?)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때 'Days are Forgotten'이나 'Switchblade Smiles'를 듣고 평행우주의 브리티쉬 림프 비즈킷 같다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센스 있는 비주얼의 뮤직비디오가 돋보이고(개인적으로는 'Days are Forgotten'의 뮤비를 특히 좋아한다), 끊임없이 뿜어대는 루즈하면서도 날카로운 영국 나쁜 남자의 매력을 보여주는 팀으로 드라이브용 BGM으로도, 술 한 잔 들이켤 때 듣는 음악으로도 잘 어울린다.
추천곡: L.S.F., Club Foot, Fire, Days are Forgotten, Switchblade Smiles, Shoot the Runner
King Gnu
현재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밴드 중 하나로, 얼터너티브 록과 재즈와 힙합에 J-Pop까지 다양한 장르를 섞는 음악을 선보이는 '도쿄 뉴 믹스쳐 스타일'의 선봉에 서 있는 팀이다. 얼핏 들어서는 "이게 락과 랩의 조화라고?"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는 음악이기도 하고, 일본풍의 멜로디가 은근히 강하게 치고 나오기 때문에 듣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좀 갈릴 수 있는 점이 있다. 서정성이 진하게 묻어나는 '白日' 같은 곡이 이들의 대표적 히트곡이지만 'Stardom'이나 '一途' 같이 살짝 날이 서 있는 느낌의 곡들을 이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개인적으로는 더 선호하는 편이다. 현재 일본의 음악 씬을 주도하는 팀의 사운드가 궁금하다면 필히 들어봐야 할 밴드들 중 하나이다.
추천곡: どろん, 一途, Stardom, Flash!!!, 飛行艇
Kroi
훵키한 그루브와 랩을 전면에 내세운 일본 밴드로,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유행했던 애시드 재즈 연주에 힙합 보컬을 섞은 느낌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들의 곡들 중에 디스토션이 들어간 기타 사운드와 쫄깃하면서도 질러대는 랩 보컬의 비중이 높은 트랙들을 좋아하는데, 세련된 그루브의 팝 보컬 위주의 곡들도 꽤 괜찮기는 하지만 그 부분에선 이미 일본 음악 씬에서 Nulbarich 등의 팀이 두각을 드러낸 바 있기에 이들이 본인들만의 차별화된 강점을 계속 키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추천곡: Fire Brain, Small World, Balmy Life, Drippin' Desert, Monster Play
TOIL, Gist
대한민국의 힙합 프로듀서 TOIL과 래퍼 Gist는 둘의 이름을 합친 'TOAST'라는 앨범을 내기도 했고, 최근에는 '몇 번의 여름'이라는 싱글을 발매하는 등 꽤나 긴밀하게 합동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의 조합이 꽤 괜찮다. TOIL은 꽤 오래전부터 Gist와의 작업 이전에도 토카브라운 프로젝트의 'Highteen Rockstars' 앨범과 본인이 참여한 Ash Island의 곡들에서 락 기타와 사운드를 꽤나 내세운 편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둘의 조합의 시너지가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세련된 듯하면서도 이따금씩 예전 2000년대 중반의 싸이월드 감성이 느껴지는 멜로디와 사운드가 들리는 부분도 있어서 묘하게 정겨운 음악들이다.
추천곡: 몇 번의 여름, 처음 마주쳤을 때처럼, Friends With Benefi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