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를 제치고 닌텐도 넘버원으로

애정과 애증의 프랜차이즈, 포켓몬스터

by 핵보컬

포켓몬스터에 대한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대략 중학생일 무렵에 처음 접했는데, 일본 어린이들을 집단으로 발작시킨(실제로 당시에 뉴스에 보도되었고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대단한 애니메이션이라길래 건담과 에반게리온을 넘어서는 대단한 무언가를 기대했는데 실상은 그냥 귀여운 캐릭터에 기댄 평범 이하의 퀄리티의 어린이용 만화로 보였기에 당시에 굉장히 크게 실망했다. 이후 친구나 아는 동생들이 게임보이를 들고 다니면서 열광적으로 포켓몬 게임을 할 때도, 사촌동생들이 노래방에서 포켓몬 주제가를 부른답시고 "언제 언제까지나~"를 무한 반복했을 때에도(정말 '언제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노래였다) '아, 궁금하다'라는 생각보다는 '아, 제발 그만'이라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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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그만해...

닌텐도 스위치를 나에게 흔쾌히 빌려준 우리 밴드 베이시스트 낙현이가 "야, 오랜만에 마리오카트 하니까 역시 재밌던데?"라는 나의 말에 "형, 그런 것만 하지 말고 기왕 빌린 김에 포켓몬도 한 번 해보세요."라고 대답했을 때에도 '그런 걸 대체 왜 하는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권유 끝에 '잠깐 하다 관두더라도 시작이나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게임기에 설치되어 있던 '레츠고 피카츄'를 켰다. 초반에는 '아, 역시 지루하고 더럽게 재미없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나씩 주어진 과제를 완수하다 보니 어느새 몇 시간이 지나있었다. 그리고 그 경과된 시간만큼 포켓몬스터라는 프랜차이즈는 어느 순간 나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와 버렸다. 일단은 피카츄를 비롯한 몬스터들이 너무 귀여웠고, 당시에 RPG라는 장르 자체가 처음이었기에 다른 게이머들에게 익숙할 법한 캐릭터 육성이나 배틀 및 모든 요소들이 나에게는 신세계였기에 마리오나 소닉, 둠 같은 심플한 게임 포맷에만 길들여져 있던 나에게는 너무나도 신선했다. 함께 모험한 시간이 길 수록 올라가는 친밀도에 의해 각각의 몬스터들의 행동이 조금씩 변하는 점도 재미있었고, 몬스터들 뿐만 아니라 각 체육관의 관장들이나 기타 NPC들과의 상호작용도 즐거움을 더하는 요소였다. 결국 게임의 엔딩을 볼 무렵에는 나도 어느새 포켓몬스터라는 프랜차이즈의 팬이 되어있었다.

looping-video.jpg 치명적인...귀여움!!

사실 포켓몬스터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긴 것이 꼭 닌텐도 스위치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본의 국민밴드라 할 수 있는 Bump of Chicken의 곡 'Acacia'가 2020년에 포켓몬스터를 테마로 뮤직비디오를 발표하였는데, 수준급의 애니메이션과 연출로 보는 이로 하여금 빠져들 수밖에 없게 하는, 너무나도 잘 만든 영상이었다. 단순히 '아, 잘 만들었네'를 넘어 뭔가 뭉클함까지 주는 뮤비를 보고, 내가 포켓몬 세대는 아니었지만 이 프랜차이즈와 함께 자라온 팬들에게는 너무나도 훌륭한 선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히 궁금함이 생기게 되었다. 어쨌든 게임을 처음 접해 본 이후로 나는 '레츠고 이브이', '포켓몬스터 소드/실드', '포켓몬스터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샤이닝 펄', '포켓몬 스냅', '포켓몬스터 레전드 아르세우스',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 등 스위치로 할 수 있는 포켓몬스터 관련된 모든 게임들을 해보게 되었고, 대부분 꽤 재미있게 했다. 특히 바깥에 나갈 수 없는 코로나 판데믹 기간에 플레이타임이 겹쳤기에 그렇게까지 뛰어난 그래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여행하는 기분까지 들어 더욱 즐거워하며 플레이했던 것 같다. 처음으로 마을 바깥을 벗어났을 때 마주한 거대한 디그다 유적을 보며 감탄도 하고, 포켓몬들과 캠핑하면서 카레도 만들고 사진관에서 다양한 포즈로 사진들도 남기면서 정말로 게임 속 세계를 친구들, 애완동물들과 함께 탐험하는 기분이 들었기에 어떠한 의미에서는 이런 것들이 오랫동안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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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를 너무 잘 만들어버렸다...

긴 시간이 지나 이제 다른 게임들도 꽤 플레이해보고 나서 되돌아보면 내가 그렇게까지 즐겁게 했던 이 포켓몬스터 게임들이 객관적으로 잘 만든 명작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명확한 장점들을 갖고 있고, 다른 면에서는 비판할 수 있어도 순수한 재미나 매력 면에서는 모두 기본 이상은 하는 준수한 퀄리티라고 생각은 하지만 무조건 치켜세울 수는 없게 만드는 치명적인 단점들이 존재한다. 물론 이제는 각국의 어른들과 아이들이 혼재하는 폭넓은 팬층을 모두 만족시킬 만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애초에 포켓몬스터를 만들고 있는 회사 게임프리크 자체가 AAA급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초대형 기업이 아니라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정상참작을 해줄 수 있는 부분은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영세한 인디 게임 회사에서 만든 상품보다도 훨씬 못한 점들이 있기에 어느 정도의 비판은 피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평균 이하의 그래픽은 그렇다 치더라도 잔디밭의 풀만 좀 흔들려도 모든 캐릭터들이 슬로 모션으로 움직이면서 버벅대는 수준의 최적화 문제나 유치하고 개연성 없는 스토리, 운영 상에서의 이해가 안 될 정도로 팬들이 원하는 점들을 무시하는 안하무인의 태도 등 현재 포켓몬 프랜차이즈 전체의 운영방식은 문제가 많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단점이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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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제대로 끝까지 엔딩을 보고, 나로 하여금 스위치 기기를 결국 구매하게 만든 첫 게임이 포켓몬스터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프랜차이즈가 계속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것은 단순히 '피카츄가 귀엽다'라는 사실 외에도 부정할 수 없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귀여운 몬스터들을 키우고 함께 모험하고, 각종 NPC 및 캐릭터들과 만나며 우리는 어린 시절 늘 함께 했지만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에서 희미한 옛날 친구,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애완동물, 실제로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인지 나의 머릿속에서 조작인 건지조차 애매한 먼 옛날의 추억 등을 떠올리며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평범한 RPG와 턴제 배틀로 이루어지는 뻔한 게임에 귀여운 애완동물 같은 몬스터와 이들을 육성하는 요소, 아기자기한 요소들이 넘쳐나는 세계관과 캐릭터들의 따뜻한 대사 등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비록 단점이 많을지언정 플레이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핵심적인 요소들이 너무나도 강하게 작용하기에 이 프랜차이즈가 지금까지 오래 버텨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포켓몬.png 안 사고 그냥 가려구...?

많은 팬들이 '현재 게임프리크가 개판으로 운영해도 게임이 팔리니까 안일한 마음을 갖는 것이기에 보이콧해야 한다'라고 외치지만 실제로 '개판으로 만들어도' 현재도 포켓몬스터 상품들은 너무나도 잘 팔리고 있고, 그것이 시들해질 기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코어 팬이라면 이에 대한 시각이 비관적일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떨어져 나가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 최근작인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을 플레이하면서 주인공의 집에 초반에 벽에 갇혀서 30분 동안 못 나오는 버그를 겪고 "와, 이건 진짜 아니다."라고 생각했으니, 지금 이 거대한 프랜차이즈의 소소한(?) 운영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작에서도 분명히 빛나는 요소들은 있다. 꾸준히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 작에 비해 눈에 띄게 발전하는 부분들과 동시에 오래전에 나온 게임보다도 퇴보하는 부분들까지 동시에 가져가는 희한한 프랜차이즈, 불완전하기에 애정과 애증의 대상이 되는 포켓몬스터의 차기작이 나온다면? 그래도 아마 욕하면서 아직까지는 계속 플레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나에게는 게임의 재미를 새로이 일깨워준 고마운 친구 같은 존재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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