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Men's Circle
키안은 손목에 묵주 같은 팔찌를 하고 있었다.
"키안, 그 팔찌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죠?"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이 팔찌 말하는 거야?"
키안은 자신의 팔목을 들어 올리면 나에게 확인을 시켜 주었다.
"사물의 뜻이란 자신이 그 물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그럼 그 팔찌에는 아무 뜻이 없다는 것인가요?"
"뜻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
"엥?"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말하는 것인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명가명 비상명: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한 동안 나는 키안이 했던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꽃말에도 의미가 없는 것일까? 아니 그건 좀 다른 것 같다. 꽃말은 보통 그 꽃의 성질을 표현해서 만들어진다. 카네이션이 향이 약한 대신 잘 시들지 않는 것이 부모님의 사랑을 표현하고, 빨간 장미가 향과 색이 강렬한 대신 빨리 시드는 것은 남녀 간의 사랑을 상징한다.
하지만 우리가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위로 뻗치고 'V' 모양을 만들면서 "피스"라고 말하는 것은 꽃말과는 다르다. 사람들이 다 같이 그 제스처에 평화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외계인의 입장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나는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키안이 한 말을 곱씹어 보았다.
솔박카에서는 여러 가지 의식을 진행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종종 그 의식에 참여했다. 어떤 의식의 아주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고 어떤 것은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솔박카를 방문한 첫해에는 Men's Circle이라는 의식을 진행했다. 솔박카에 있던 남자들만 찰리의 유르트에 모였다. 유르트에 들어갈 때 향으로 온몸을 정화했다. 향은 허브를 모아서 뭉친 후 실로 감아서 막대기처럼 만든 것에 불을 지펴서 연기가 나게 했다. 남자들은 둥글게 자리를 잡았다. 막대기가 하나 있었는데, 막대기를 들고 있는 사람만 말할 자격이 주어졌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경청하고 침묵을 지켜야 한다. 한 사람이 말을 마치면 막대를 옆으로 전달하고 그러면 막대기를 받은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했다. 말할 때는 정해진 시간은 없었고 아무 이야기나 털어놓아도 된다. 처음 보는 사람들도 많이 섞여 있었는데 모두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하다가 울기도 했다. 위로의 말이나 조언을 하려고 해도 막대기가 자신에게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유르트 안에는 시계가 없어서 정확하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는데 너무 집중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진행되었다.
막대기는 처음 두 번은 매우 느리게 전달되었는데, 세 번째와 할 말이 많이 줄어서 빨리 전달되었다. 네 바퀴 째는 대부분 할 말이 없었는지 막대기가 다들 "시간을 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 외에 특별한 발언이 없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면 의식을 마치겠다는 선언과 함께 의식이 끝났다. 의식을 마친 후 남자들 사이의 관계가 훨씬 끈끈해졌다. 남에게 털어놓기 힘든 속 마음을 내비치었을 때 처음의 부끄럽고 불편한 감정은 서로를 연결해 주는 끈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