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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 Jul 06. 2020

026. 유르트와 꿈

26. The dream in the yurt

26. 유르트와 꿈 이야기


내가 솔박카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오두막에 머물렀다. 비록 전기나 물도 없고 변변한 가구도 없었지만, 꽤나 아득했다. 하루는 밤사이 비가 좀 많이 왔다. 다음 날 아침 라몬과 리카르도가 무척 난감해했다. 그들은 텐트에 머물고 있었는데, 텐트에서 물이 샜고, 비가 많이 내리자 결국 텐트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잠시 찰리의 집에 대피를 하고 있었다. 그날부터 라몬과 리카르도는 찰리의 교회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비록 실내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외부는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비바람을 막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문제는 비바람에서 멈추지 않았다. 리카르도가 교회에서 자는 것을 너무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교회는 내부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집 같은 아늑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가구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무척 넓게 느껴지기도 했다. 리카르도는 키는 크지 않았지만 덩치가 큰 편이었고, 털도 많고 수염도 기르고 있어서 나이가 무척 들어 보였다. 게다가 힘도 세고 목소리도 굵었기 때문에 두려움을 모르는 강철 같은 사나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겁을 먹는다는 사실에 모두 놀랐다. 

사실 리카르도는 자원봉사자 중에 나이가 가장 적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곧 솔박카를 떠났다. 그다음에는 라몬이 문제였다. 아무도 없는 집에 라카르도도 없이 도저히 혼자서 잘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도와주기로 했고, 나와 라몬은 유르트에서 같이 자기로 했다. 솔박카에는 4개의 유르트가 있었다. 키안의 가족은 매우 커다란 유르트를 사용하고 있었다. 여름에 잠시 와서 집을 지었기 때문에, 키안이 독일로 돌아갈 때는 유르트를 해체해놓았다. 쉽게 조립과 해체가 가능한 중앙아시아의 천막인 유르트는 유목민족에 딱 맞는 주거공간이었다. 루크가 머물고 있는 유르트는 매우 작았다. 안나도 작은 유르트를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집이 완성되기 전까지 임시로 사용하고 있었다. 나와 라몬이 사용한 유르트는 솔박카에서 특별한 의식을 가질 때 사용하는 것이어서 무척 컸다. 유르트의 벽에는 여러 가지 악기가 매달려 있었고, 유르트의 크기에 맞게 커다란 난로도 있었다. 하지만 커다란 난로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난로가 큰 만큼 연통도 굵어서 그만큼 장작이 빨리 타버렸다. 아무리 불을 약하게 해도 난로는 3시간 이상을 버티지 못했다. 


일부 자원봉사자는 아메리카 원주민식의 티피에 머물렀다. 대부분의 티피는 높은 대신 내부는 좁았다. 빗물을 막기 위해 티피 위에 방수천을 덧대었는데 그것 때문에 내부는 무척 어두웠다. 솔박카에 있는 유르트는 나무 바닥을 제대로 만든 후 그 위에 세웠기 때문에 임시 천막이라는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단 천막의 천이 바닥에 고정되어있지 않아서 밤에는 찬 바람이 바닥으로 솔솔 들어왔다. 

8월 중순이 되자 가을 날씨가 다가왔다. 8월 말에는 새벽 기온이 섭씨 3도까지 내려갔다. 루크에 의하면 영하의 온도에서는 공기 중의 수증기가 얼어서 바닥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습도가 낮아진다고 했다. 반면 영상 3도는 공기 중에 수증기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더 춥게 느껴진다고 했다. 8월 후반부터 장작을 가지고 와서 난로에 불을 지폈다. 라이터가 있다고 해도 장작에 불을 붙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루크는 촛농을 이용하면 좀 더 쉽게 불을 붙일 수 있다고 가르쳐 주었지만 여전히 쉽지 않았다. 부엌에서 물을 끓일 때도 장작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솔박카에 와서 장작에 불을 붙이는 연습은 아주 흔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유르트에 있는 난로가 3시간 만에 불이 꺼진다는 사실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11시쯤 잠을 자면 새벽 2시에 불이 꺼지는 것이다. 새벽 2시에 다시 장작을 넣어도 새벽 5시에 불이 또 꺼진다. 그때가 제일 추울 시간인데 난로에 불이 없으면 견디기 힘들었다. 게다가 한번 불이 완전히 꺼지면 다시 불을 붙여야 하는 게 그게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전기도 없는 곳에서 자다가 깨서 비몽사몽간에 촛불에 의지해서 장작에 불을 붙이는 일은 너무나도 귀찮았다. 

내가 솔박카를 떠나는 마지막 밤에 나는 욕심을 좀 부려서 난로에 장작을 꽉꽉 채워 넣었다. 밤에 장작을 다시 넣기가 너무 귀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벽 2시경 유르트 안에는 연기가 가득 찼다. 나와 라몬은 문을 열고 연기가 다 빠질 때까지 유르트 밖에서 덜덜 떨면서 기다렸다. 연기가 거의 다 빠져나갔을 즈음 우리는 다시 난로에 장작을 넣고 잠을 잤다. 

"다니! 다니! 일어나 봐!"

라몬이 새벽에 나를 흔들면서 소리를 쳤다. 

"무슨 일아야?"

"여기서 빨리 나가야 해."

유르트 안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연기로 가득 찼는데 아까 보다 좀 더 심각해 보였다. 

"졸려 죽겠어. 아까처럼 연기만 좀 빼고 다시 자자."

"안돼! 우리는 여기서 꼭 나가야만 해. 죽을지도 몰라."

"하얀 연기는 유해 연기가 아니라 괜찮을 거야. 게다가 단순한 장작에서 나는 연기일 뿐이잖아."

"아니야. 나 이상한 꿈을 꾸었어."

"무슨 꿈인데?"

"지금은 말할 수 없어.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해줄게. 혹시 우리가 피신할 데 있어?"

라몬은 무척 당황하면서 말했다. 그의 말투에서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나는 귀찮았지만 일단 라몬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음. 일단 내가 머물던 오두막으로 가자."

라몬과 나는 일단 문을 열어 연기를 조금 빼면서 짐을 챙겼다. 유르트 안의 연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연기가 조금 빠지자 우리는 짐을 가지고 내가 있던 오두막으로 가서 짧게나마 눈을 붙였다.  

아침이 되자 라몬과 나는 유르트에서 생긴 일을 솔박카 호스트에게 이야기했다. 그들은 유르트로 가서 난로를 확인했지만 특이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무슨 꿈을 꾸었는데?"

나는 라몬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지금은 말할 수 없어. 나중에 이야기할게."

라몬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도대체 무슨 꿈이길래? 나는 오늘 떠난단 말이야.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어."

"조금만 진정 좀 하고. 아주 충격적이 꿈이야. 다른 사람한테는 몰라도 너한테 말하기는 조금 두려워."


몇 시간이 지났다. 나는 솔바카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 나는 다시 라몬에게 꿈에 관해 물어봤다. 그러자 라몬은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꿈에서 우리 유르트에 연기가 가득 찼어. 실제로 그랬던 것 같이 말이야. 그래서 나는 놀라서 밖으로 나갔어. 밖에는 경찰을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어. 그런데 네가 안 보이는 거야. 나는 걱정이 돼서 경찰에게 다니를 못 보았냐고 물어봤지. 그러자 경찰이 하는 말이 '다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라고 대답하는 거야. 그때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깨어났어. 그런데 네가 눈을 감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았어. 나는 그때 네가 죽었는 줄 알았어. 그래서 놀라서 소리를 친 거야. 무섭지 않아?"

"으음."

"나는 유르트에 머물기가 두려웠어. 그래서 빨리 자리를 옮기자고 한 거야."

라몬의 꿈 이야기를 들어도 나는 별로 동요되지 않았지만 라몬은 여전히 겁에 잔뜩 질린 표정이었다. 나는 다 잘 해결되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로 라몬을 진정시켰다. 

라몬은 핀란드의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핀란드어 공부를 하면서 겨울을 솔박카에서 보냈다. 찰리의 집에 머물렀다고 하는데, 화덕 오븐 위의 작은 공간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겨울에 화덕 오븐에 불을 붙이면 너무 더워서 잠을 잘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듬해에도 라몬은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고 결국 내가 다시 솔박카에 돌아가기 전에 스페인의 집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때 유르트에 있던 난로가 너무 뜨거워져서 밑에 있던 나무 마룻바닥이 타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난로를 옮기고 바닥을 다시 마무리 한 다음 더 강력한 단열재를 깔았다고 했다. 내가 이듬해에 돌아갔을 때 나는 안나의 유르트에 머물었는데, 같은 사고가 날까 봐 안나는 나에게 벽돌 몇 장을 더 주고 난로의 다리 밑에 깔라고 했다. 하지만 안나의 유르트에서 난로를 사용하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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