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Finding your animal (1/2)
"안녕. 내 이름은 앤써니 야. 그냥 토니라고 불러도 돼."
앤써니가 미국에서 솔박카로 찾아왔다. 그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의식을 전문적으로 치르는 사람이다. 일 년 전 샨타렐버섯을 채취할 때 보았던 검은색 움막이 토니의 의식에 사용되는 성스러운 장소였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의식은 아주 오랜 준비가 필요했다.
토니는 먼저 화방인(火防人: Fire Keeper)의 역할을 할 사람을 구했다.
"화방인은 불을 관리하는 사람이야. 아주아주 중요하지. 이 사람이 역할을 제대로 안 하면 이 의식은 실패할 수밖에 없어."
솔박카 호스트의 친구 중 한 명이 자원을 했다. 의식 전 날부터 토니는 나무 장작과 돌을 모았다. 꽤나 커다란 돌들과 엄청나게 많은 양의 장작을 쌓아두었다. 의식 당일 새벽부터 토니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장작을 지피고 돌을 불타는 장작더미 속에 넣었다. 움막 앞에는 작은 제단을 마련했다. 돌멩이를 둥글게 나열한 후에 의식에 쓰이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가운데 놓았다. 꽃도 있었고 사슴으로 보이는 동물의 두개골도 있었다. 움막의 입구에서부터 제단까지 꽃으로 길을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의식이 시작하기까지는 더 오래 기다려야 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 때 토니가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의식이 곧 시작하니 움막으로 오세요."
움막 근처로 가니 이미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임시로 작은 문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문을 통과할 때는 몸을 정화해야만 했다. 허브를 묶어서 만든 향으로 온몸을 정화하고 발바닥까지 꼼꼼하게 향의 연기를 지폈다.
"가능하면 옷은 모두 벗으세요. 하지만 정 벗고 싶지 않다면 안 벗으셔도 됩니다."
며칠 전 비가 와서 땅이 젖었기 때문에 옷을 놓을 곳이 마땅하지 않았지만 마른 바위를 찾아서 옷을 올려놓았다.
분위기는 무척 엄숙했다.
"제단 주변에 둘러앉으세요. 단 제단과 움막을 연결하는 탯줄 위로는 아무도 건너가면 안 됩니다. 그것은 아주 성스러운 연결고리예요."
사람들이 하나둘씩 제단 앞으로 모여들었다. 모두 발가벗고 제단 앞에 둥글게 모여 앉았다. 날씨가 흐렸기 때문에 살짝 쌀쌀하게 느껴졌다. 돌을 달구고 있는 장작불은 3미터도 넘게 떨어져 있었지만 열기가 대단했기 때문에 등은 뜨거웠다. 데이비드의 여자 친구는 속옷을 벗지 않았다. 그리고 토니가 의식에 대해 설명했다.
"먼저 의식을 시작하기 전에 이 모임을 가능하게 해 준 화방인에게 감사를 드립시다."
사람들은 봉사를 해 준 화방인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화방인은 저 돌을 10시간 동안 뜨거운 불 속에 달구었어 주었어요. 무척 고단한 작업이죠. 그가 없었으면 이 의식은 불가능했을 거예요. 그리고 이후로도 우리들을 위해 고생을 해 주실 겁니다."
"사실 저는 거의 아무것도 안 했어요. 토니가 다 했죠."
화방인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토니는 이어서 말했다.
"옷을 벗는 이유는 온몸으로 마더 어스(Mother Earth)를 느끼기 위해서예요. 여러분 앞에 보이는 검은색 움막은 자궁을 의미합니다. 검은 천을 겹겹으로 쌓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빛이 전혀 들어가지 않아요. 마치 자궁 속과 같이요. 그래서 움막은 여자들의 손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수고해주신 여성분들께 감사해요."
토니는 작은 허브 덩어리를 나누어 주면서 말했다.
"이것은 담뱃잎이에요. 담뱃잎은 오래전부터 의식의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씩 나누어 가지세요."
사람들이 모두 담뱃잎을 나누어 갖자 토니가 설명을 했다.
"자신이 들고 있는 담뱃잎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걱정거리를 담아서 불에 던지세요. 의식을 하는데 방해가 되는 불안감, 의심, 질투, 미움 등 모두 불태우십시오."
사람들은 모두 담뱃잎을 뜨거운 장작불 속으로 던졌다. 불이 셌기 때문에 조그만 담뱃잎 뭉치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담배 연기도 올라왔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담배 냄새는 살짝 코 끝을 스치고 사라졌다.
토니는 이어서 움막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설명했다.
"우리는 움막 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탯줄은 건드리면 안 되고 그 위를 지나가서도 절대로 안 됩니다. 저를 따라오시되 제가 밟은 발자국을 따라오세요. 옆으로 가도 안되고 꼭 제가 걷는 길로 오셔야 합니다. 움막으로 들어가면 가운데 구덩이가 있으니 조심하세요. 저는 구덩이를 돌아서 문 앞까지 가서 자리를 잡을 것이고 나머지 분들은 제 옆으로 한 명씩 앉으시면 됩니다."
토니가 그렇게 해야만 했던 이유는 탯줄을 밟지 않기 위해서였다. 꽃과 허브로 만들어진 탯줄은 움막의 중앙으로부터 밖으로 나와있었다. 토니는 탯줄을 피해서 움막의 왼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움막의 가운데 있는 구덩이를 시계방향으로 돌아서 다시 움막의 오른쪽 입구까지 가서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그를 따라 들어갔는데, 움막이 좁아서 마지막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자 사람들은 옆 사람과의 간격을 더 좁혀야만 했다. 모든 참가자가 다 들어오긴 했지만 움막이 작아서 옆에 있는 사람과 꼭 붙어있어야 했다.
"그러면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화방인은 돌을 가지고 들어오세요."
그러자 화방인이 핸드볼 크기 만한 돌덩어리를 삽에 담아왔다. 토니는 검은 천으로 된 움막의 문을 손으로 잡고 있었고 뜨겁게 달구어진 시뻘건 돌은 움막 안의 구덩이 속으로 던져졌다.
"이 돌은 아주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화방인이 그렇게 몇 번에 걸쳐 돌을 날아왔다. 토니가 움막의 문을 닫자 움막 안은 앞을 전혀 볼 수 없을 만큼 컴컴해졌다. 돌덩이에서 나오는 붉은빛 만이 구덜이 안을 밝히고 있었다. 토니는 허브 덩어리를 돌 위에 던졌다. 허브가 타오르면서 연기가 났고 움막 안은 허브 냄새로 가득했다. 토니는 손에 물을 적신 후 물방울을 돌 위로 뿌렸다. 움막에 수증기가 차면서 움막 안은 마치 사우나실 같이 더워졌다. 땀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 제가 방금 던진 허브 덩어리에는 무엇 무엇이 들어있습니다."
노티가 허브와 나뭇가지에 대해 설명을 했다. 하지만 정확하게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것들은 모두 봄에 나는 풀들입니다. 지금은 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머니의 자궁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을 상상해 보십시오."
땀이 몸을 흐르면서 옆에 붙어 앉은 사람의 땀과 섞이는 것이 느껴졌다.
"여러분은 지금 태어났습니다. 자신이 갓난아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갓난아기 시절을 기억할리가 만무하지만 내가 갓난아이라면 걱정거리도 없고 참 좋을 것 같았다. 배고프면 울고 기저귀 갈아달라고 울고 이 외에 다른 고지서나 입시 취직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여러분 유년기를 상상해 보십시오."
2살 때 노란색 플라스틱 세발자전거가 나에게 너무 커서 발이 페달에 닿지 않았다. 발을 땅에 대고 끌고 다녔다. 2층에서 자전거를 끌고 다니다가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아래층에 계시던 아버지가 한 팔에 나를 끼우고 다른 팔로는 자전거를 들어서 2층에 다시 올려다 놓았다. 그때 아버지는 참 힘이 세다고 생각했다.
"봄이 끝났습니다. 아까 들어온 그대로 움막 밖으로 나가십시오."
사람들은 아까 들어온 반대 순서로 앞에 있는 구덩이를 기준으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서 나갔다. 밖의 하늘은 여전히 구름이 가득하고 우중충한 날씨였다. 아까는 조금 쌀쌀했지만 지금은 몸이 덥혀져서 그다지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땀이 식자 다시 추워졌다.
"이제 처음과 같이 움막 안으로 들어갑니다."
사람들은 다시 토니를 따라서 아까 같이 움막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자리를 잡자 토니가 다시 소리를 쳤다.
"화방인, 돌을 가지고 들어오세요."
토니가 문을 잡고 있는 동안 화방인이 축구공 만한 돌을 삽에 담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아까와 같이 가운에 있는 구덩이에 넣었다. 몇 번을 그렇게 돌을 옮긴 후 토니는 문을 닫았다. 움막 안은 다시 칠흑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토니는 작은 허브 덩어리를 돌무더기 가운데 던지고 물을 뿌렸다.
"지금 태운 허브는 무엇 무엇입니다. 여름에 나는 허브입니다. 지금은 여름입니다. 여러분들의 소년기를 상상하십시오."
비좁은 움막은 다시 더워지고 땀이 났다. 봄의 열기에 여름의 열기가 더해져서 아까 보다 더욱 더웠다.
유치원에 다닐 때 동네 누나가 우산으로 나를 때렸다. 나는 복수하려고 집에 가서 우산을 들고 밖으로 뛰어나가려는데, 부모님이 맑은 하늘에 왜 우산을 가지고 나가는지 물었다. 나는 복수를 한다고 말했다가 오히려 혼 만났다. 우산으로 맞은 것도 억울한데, 복수를 못하는 건 더 억울했다.
"여러분의 청년기를 생각하십시오."
고등학교 다닐 때 나는 미국으로 갔다. 영어성적을 항상 좋았는데, 막상 미국에 오니 말이 안 통했다. 그 때문에 무척 우울해졌고 성격이 더욱 내성적으로 변했다.
"여름이 끝났습니다. 다시 밖으로 나가세요. 아까와 같은 방법으로요."
그렇게 밖으로 나오니 쌀쌀한 날씨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데이비드의 여자 친구는 더 이상 의식에 참여하지 못하겠다고 선언하고 옷을 챙겨 입고 가버렸다. 이런 경험은 돈 주고 하기도 쉽지 않은 것인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묵묵히 떠나가는 그녀를 바라만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