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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 Jul 03. 2020

023. 다른 호스트 방문

23. Visiting other Host

23. 다른 WWOOF 호스트 방문


하루는 안나는 라몬, 키라와 나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다른 WWOOF 호스트 농장에 놀러 갔다. 안나의 친구인 농부의 이름은 유리라고 하는 것 같았다. 차를 주차한 후 언덕을 조금 내려가니 솔박카에 있는 것과 비슷한 야외 부엌이 있었다. 유리는 우리들을 야외 부엌에서 맞이해 주었다. 유리는 아내와 3살 난 아들과 같이 살고 있었다. 아들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아서 마치 여자아이 같았다. 유리는 무채색의 헐렁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여기저기 많이 헤져있었다. 

안나는 마트에서 사 온 커피를 선물로 주었다. 유리는 어제 만들어 놓았던 과자와 작은 초록색 사과를 내어 놓았다. 

"손님들에게 대접할 것이 별로 없어서 죄송해요."

유리의 부인은 사과 먼저 했다. 

"괜찮아요."

안나가 대답했다.

"사과가 안 익어서 맛이 없을 거야."

유리는 미리 경고를 했다. 유리의 목소리는 약간 쉰 것 같기도 하고 살짝 걸걸하기도 했는데, 그것이 원래 목소리였다. 

초록색 사과는 맛있어 보였는데 한 입 베어 물어보니 시기만 하고 단맛이 거의 없었다. 도저히 마저 먹을 수 없었다.

"맛없으면 버려도 돼."

우리들의 표정을 본 유리가 말했다.

농장에는 WWOOF를 통해 온 자원봉사자 두 명이 일하고 있었다. 여자 자원봉사자는 일주일 넘게 일했고, 남자 자원봉사자는 어제 도착했다고 한다.

"자원봉사자 구하기 힘들다고 하더니 두 명이나 구했네."

안나가 말했다.

"사실 저도 솔박카에 오기 전에 핀란드의 여러 WWOOF 호스트를 찾았는데, 여기도 그중 하나였어요. 하지만 연락이 안 와서 솔박카로 간 거예요."

라몬이 말했다.

"미안."

유리가 사과를 하고 이어서 설명을 했다.

"집에 인터넷이 없어. 아내의 전화기는 인터넷이 안 되고, 내 전화만 인터넷이 돼. 하지만 농장에서는 통신사 신호가 잘 안 잡히기 때문에 인터넷을 하기가 곤란해. 가끔 시내에 나가서 도서관에서 인터넷을 확인하는데, 그러다 보니 이메일 답장하는데 일주일이 걸리기도 해. 자원봉사자를 구하기 어려운 것이 그런 이유야."

"게다가 WWOOF에 있는 호스트 정보도 조금 수정하셔야겠어요."

"맞아. 정보가 조금 오래되기도 했지. 하지만 내가 인터넷을 그다지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서 지금 있는 것도 겨우 만든 거야."

자원봉사자를 구하는 상황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자원봉사자를 두 명이나 구했다는 사실에 기립박수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유리는 우리들을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농장을 구경시켜 주었다. 유리의 집과 농장은 야외 부엌에서 내리막길을 좀 더 내려가서 있었다.

"이 땅을 산지는 일 년 정도 되었어. 싸게 샀지만 그만큼 손이 많이 가는 곳이었지."

집의 일부는 부서져 있었다. 여러 가지 연장들이 널브러져 있고 페인트 통과 붓이 있었다. 당장 그 공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 집을 급하게 고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일단 우리가 잘 수 있는 공간만 확보해 놓았어. 돈이 있으면 쉽게 고쳤겠지만, 없는 돈으로 고치려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려."

유리의 설명을 듣다 보니 안나가 커피를 사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유리에게는 커피를 살 돈 조차 사치였던 것이다. 핀란드는 겨울이 길다 보니 추운 날씨에 몸을 녹이기 위해 커피를 많이 마신다고 안나가 전에 말했다. 그래서 일인당 커피 소비량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여름에 오히려 커피 소비가 증가하는 세계 유일의 특이한 국가가 있는데, 그건 바로 대한민국이다. 한국에서 커피란 뜨거운 음료가 아니라 얼음에 타서 마시는 시원한 음료인 것이다.

농장 부지는 무척 넓었지만 언덕이 많이 있고 길이 있어서 사용하지 못하는 땅이 많았다.

집 옆에는 지하 동굴 같은 창고가 있었다. 반 정도 땅에 파 묻혀 있고 통풍이 잘 되기 때문에 여름에도 시원한 온도가 유지가 된다고 한다. 그곳에는 음식을 보관하고 있었다. 창고 옆에는 원하지 않는 풀들이 많이 자라고 있어서 그것을 정리하는 일도 하고 있었다. 밭에는 여러 채소를 기르고 있었다. 땅 전체의 크기에 비해 밭은 무척 작았다. 

집 뒤쪽으로 풀로 덮인 넓은 평지가 있었고 집에서 약 50미터 떨어진 곳에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시냇가로 가는 길에 텐트 하나가 있었는데, 남자 자원봉사자가 사용한다고 했다. 시냇물 앞에는 영화에서나 보던 다리가 달린 하얀색 욕조 하나가 푸른 풀밭 위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저건 뭐죠?"

나는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뭐긴 뭐야. 욕조니까 저기서 목욕을 하는 거지."

여자 자원봉사자가 대답을 했다.

"저 넓은 평원 한가운데서 목욕을 한다고?"

"괜찮아 어차피 볼 사람도 없으니까."

"잠은 어디서 자?"

집에 자원봉사자의 방이 없었기 때문에 물어보았다.

"동물과 같이 자."

"뭐라고?"

"농담이야. 하하. 동물이 살고 있는 헛간이 둘로 나뉘어있는데, 하나는 동물이 사용하고, 나는 옆 방의 이층에 지푸라기 더미에서 자."

"불편하지 않아?"

"아침에 동물들이 소리를 질러서 잠을 깨긴 하지만 그것만 빼면 나름 아늑하다고."

라몬과 나는 그 자리에서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이곳의 자원봉사자들 숙박시설은 거의 최악이라는 암묵의 눈빛을 서로 교환했다. 

"일하는 건 어때?"

"주로 하는 일은 동물들을 돌보아 주는 거야. 동물과 같이 노는 시간이 너무 재미있어."

여자 자원봉사자는 무척 쾌활한 성격에 긍정적인 사고로 무장을 했다.

농장에는 닭, 오리, 염소, 양 등이 있었다. 동물은 낮에는 밖에서 놀다가 밤에 헛간으로 돌아가서 잠을 잤다. 

나중에 솔박카로 돌아와서 우리가 얼마나 호사로운 자원봉사 생활을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머무는 오두막은 비록 물과 전기는 없지만 비바람을 잘 막아주는 데다가 조용하고 침대와 난로까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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