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때 고생한 분들 앞에 명함도 못 내밀지만 어쨌든 나에게도 좋지 않은 파장은 있었다. 다니던 광고회사에서 다행히 잘리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 무급휴직기간을 가져야 했다.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결국 광고 관련 아르바이트로 연명해야 했는데 일이 정기적인 것도 아니고 금액도 크지 않아서 생활 자체가 힘들었다.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퇴사한 선후배 동료도 부지기수였다.
월급을 받아 알아서 생활하던 내가 고향집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손을 벌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집에는 그냥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잘 지내니 안심하시라고만 전했다. 결국 반찬이 떨어졌는데 살 돈이 부족하여 사지 못했고, 급기야 쌀도 떨어졌다. 보다 못한 유니텔 광고동 후배 동순이가 쌀 반 가마니, 친구 병욱이는 고향에서 잡은 문어 한 마리를 건네줬다.
문어는 순식간에 맛있게 잘 먹었지만 남은 쌀은 보관을 잘 못 하는 바람에 구더기가 생겼다. 바가지로 쌀을 퍼 올린 후 그것들을 하나하나 젓가락으로 집어냈다. 그러다가 실수로 바닥에 쏟았는데 바닥에 흩뿌려진 쌀 사이로 구더기들이 꼬물꼬물 기어 다녔다. 그럼에도 나는 낱알 하나하나를 주워 담았다. 그렇게라도 해야 정말 필요한 돈을 아끼고 생활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더 이상 공과금도 내지 못할 상황에까지 왔다. 그때 갑자기 집 밖으로 나가면 누군가가 나를 도와줄 것만 같은 생각이 머리를 휙 스쳤다. 왜 그런 생각이 났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알 수 없다. 나는 주저 없이 길을 나서 자양동 잠실대교 언저리를 정처 없이 거닐었다.
이게 웬일인가? 저쪽에서 알고 지내던 광고동 후배 하나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오는 게 아닌가. “성자야!” 그녀는 내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눈을 살짝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머리를 안 감아서 모자를 쓴 와중에 나를 보고 부끄러웠다는 것이다. 어디 가냐고 물어보니 이럴 수가. 건너편 제일은행에 돈 찾으러 간다는 거였다.
하늘의 도움이라 생각하고 그녀에게 돈 몇십만 원을 빌릴 수 있었다. 그녀의 대출(?) 덕에 나는 남은 무급휴직기간을 겨우나마 버틸 수 있었고 다행히도 회사의 복직 통보까지 받게 되었다. 돈은 월급을 받는 대로 바로 갚았지만 지금도 미안한 게 이자 한 푼 줄 생각을 못 했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녀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어디선가 행운을 주는 여신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고마웠다. 넌 나의 진정한 성자였어.
-김작카-
한 번만 딱 한 번만 마주친다면
꼭 이 말 전해줄 거야
태어나 너를 만나 고마웠다고
잘살라고 꼭 행복하라고
-포맨 <살다가 한 번쯤> 중에서-
*세상이 뒤숭숭하다 보니 여성지인들의 이름은 대부분 이니셜로 처리했습니다. 그럼에도 성자만큼은 그대로 둔 이유는 너무도 많은 이름인데다 찾을 수도 없고 제 동선에 있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전국에 있는 성자 여러분! 이 글에 해당하시는 이성자 님, 꼭 연락주세요. 김작카가 이자를 갚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