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카 사연] 눈 오는 날의 수채화가 되어준 사람

사연 제공 : 김작카

by 김작카

눈 오는 날의 수채화가 되어준 사람

차로 가면 가깝지만 자전거로는 먼 길이었습니다. 밤새 내린 함박눈이 겨우 그친 새벽. 서울 은마아파트에서 쌍용아파트로 이어지는 그 길을 자전거 한 대가 달렸습니다. 뒤에는 지금의 제 아들 녀석 앉은키 만한 높이의 신문을 싣고서.


고팠습니다. 배도 고팠지만 광고가 더 고팠습니다. 광고인이 되겠다는 목표로 서울로 올라온 저에겐 먹여주고 재워줄 아르바이트가 간절했지요. 그렇게 시작한 신문배달... 오토바이 면허가 없던 제게는 자전거가 유일한 배달 수단이었습니다.


그날도 빨리 배달을 마치고 추위를 피하자는 생각에 페달을 밟고 있는데 돌연 길바닥이 얼굴로 직진해왔습니다. 신문 무게로 육중해진 자전거가 밤새 언 눈에 미끄러지면서 저도 어깨와 엉덩이를 썰매 삼아 미끄러졌습니다. 저보다 신문이 더 걱정되었습니다. 가지런히 묶여있던 신문 또한 더 세게 더 멀리 마치 힘 조절 잘 못한 컬링처럼 흐트러졌으니까요.

bicycle-1869176_1280.jpg 내 마음도 쿵


지금이야 드물지만 당시만 해도 새벽에 일찍 깨서 배달되는 신문을 읽고 출근하는 분들이 많을 정도로 종이신문의 중요성은 대단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 자체는 보기엔 하찮을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소중한 정보를 전달하는 최전방에서 일한다는 사명감으로 일했으니 사방팔방 나가떨어진 신문이 어찌 걱정되지 않았을까요. 더 걱정되는 건 어두운 새벽에 차들이 달린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엉덩이의 아픔도 잊고 부랴부랴 신문을 줍는데 어디선가 차 한 대가 깜빡이를 켜며 스르르 멈춰 섰습니다. 그러더니 두 남녀가 내렸습니다. “뭐 하러 이런 거 도와줘?”하는 여성분의 푸념을 뒤로한 채, 남성분이 묵묵히 신문들을 주워주셨습니다. 못마땅해하던 여성분도 결국 동참하셨습니다. 뒤에서 언제 차가 덮칠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아마 여성분도 그런 것까지 걱정하고 하신 말씀이었을 겁니다. 도와줘봐야 고맙다는 표현도 안 하는 밉상들을 많이 겪은 상처가 있었을 수도 있고. 어쨌든 저와 함께 마지막 한 부까지 다 주워 주신 후, 고맙다는 인사도 뒤로 한 채 유유히 사라지셨습니다.

winter-2522720_960_720.jpg 그리움만 쌓이네, 눈처럼

눈이 올 때면 그분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낙서의 한 장면처럼 넘어지고 구겨진 저를 아름다운 정경의 수채화 속으로 함께 이끌어주신 그분들... 제가 남의 어려움을 쉽게 지나치기 힘들어하는 이유도 아마 당신들의 선한 영향력 또한 보태졌으리라 믿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이제는 그 거리에 있을 법한 카페에서 눈이 소복이 내린 듯한 커피 한잔 사드리고 싶습니다. 수채화가 그려졌던 그 거리를 함께 바라보며. 혹시 이 글 보고 계신가요? :)

-김작카-


따뜻한 겨울이 다시 돌아왔어

코트에 목도리 스웨터 벙어리장갑

그런 게 없어도 사실 난 전혀 안 추워

내 곁엔 항상 너, 항상 너 곁에 있으니...♪

-종현 <따뜻한 겨울> 중에서-


coffee-690422_1280.jpg 한잔 해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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