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고마웠던 단 한 명이 누구냐는 질문을 난데없이 받았을 때 나는 웃음으로 그런 사람 없다는 말을 대신했다. 고마운 사람이 꼭 한 명으로 압축되어 떠올라야 할까? 고맙다는 표현으로는 턱없이 모자란 부모님은 제외하고.
대신 크고 작은 인연을 통해 고마운 기억으로 남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 한 사람과의 사연도 스토리지만 내 인생이라는 하나의 스토리를 고마움이라는 단어로 엮을 수도 있다. 여러 소소한 고마움들이 모여 지금의 내 인생을 만든 거니까. 그 사람들 모두를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어렸을 때 누나를 따라 유치원에 갔을 때 같이 다니게 해 달라며 행패(?)를 부린 나를 달래고 어른 뒤 유치원복까지 입혀 입학을 허락해준 유치원 선생님. (그 덕에 내 유치원 사진들 친구들은 전부 초등학교 1년 선배들이다.)
초등학교 때 인기도 많고 키도 나보다 컸는데 날 좋아해 주기까지 한 같은 반 여학생. (정말 이건 너무나 감사하다.)
운동장에서 공개적으로 치고받고 싸운 친구도 기억난다. 처음엔 내가 밀렸지만, 운 좋게도 같은 타이밍에 코피가 터지는 바람에 비긴 걸로 회자되었다. 그 친구는 곧 초등학교에서 싸움으로 날리기 시작했는데, 덕분에 나는 싸움 좀 하는 아이로 인식되어 친구들이 함부로 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는 아침잠이 많아서 매일 늦게 일어났는데 지각을 안 하려, 매일같이 강제 조깅을 했다. 그 덕분에 체력 약한 내가 오래 달리기 만점을 받도록 뛰어도 힘이 남아돌 체력이 생겼다. 사람은 아니지만 다소 멀고 험했던 등굣길이 고맙다.
나를 괴롭혀온 천식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7년이나 돌봐준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모 의사 선생님, 첫 미국 여행 갈 때 경유했던 나리타공항에서 일본인 스튜어디스의 말을 전혀 못 알아듣는 나를 구원해준 뉴욕 여성분...
고등학교 때 NIRVANA를 알게 해 주고 얼터너티브 록 같은 새로운 음악에 마음을 열게 해 준 친구. 매주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CD를 카세트테이프에 담아준 친구 덕에 대학에 들어가면서 음악 동아리에까지 가입하며 기타를 치고 공연도 해보았다.
끝으로 오늘날 나의 직업을 있게 해 준 선배들... 쉬는 시간 복도를 걷다 우연히 미술 부실 신입부원 모집공고를 보던 중 뒤에서 나타난 선배들이 어깨동무를 하며 내 친구와 나를 미술 부실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신입 들어왔습니다!” 전리품 획득 신고식이나 다름없었다. 탈퇴하면 어떻게 될지 우린 잘 알기에 나와 친구는 두렵고도 재미있게 이젤 앞에서 붓을 놀리기 시작했고 그 영향으로 미대까지 진학.. 지금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있으니.. 그렇게 시작된 전공이 지금 내가 너무 사랑하고 자부심을 갖게 하는 일이고 나와 내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있으니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선배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