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님 사연]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여인

사연 제공 : 곽건(곽랑주) 님

by 김작카


어렸을 때부터 작가가 꿈이었습니다. 대학에서도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어요.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국어국문학 수업과 작가가 되는 길과는 그다지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작가의 꿈 또한 일찌감치 접었습니다. 더 많은 책을 볼수록 더 많은 글을 쓸수록 고수들의 세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격차 또한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뼈를 깎는 마음으로도 안 되는 게 있더라"


돌이켜 보니 졸업 후 같은 과 동기들 중에 책을 낸 사람은 있지만, 전업 작가가 되어 있는 사람은 없네요. ‘학교 선생님’은 많은 편입니다. 학창시절부터 교직을 꿈꾸는 동기들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나라도 빠져줘야 한 명이라도 더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겠다.'는 매우 이타(?)적인 생각을 품었습니다. 아버지께 자랑스럽게 말씀 드렸죠.“아버지, 저는 교직으로 나아갈 마음이 추호도 없습니다. 쓸 일도 없을 교직 이수하려다, 친구가 간절히 원하는 자리, 하나를 빼앗고 싶지 않습니다."라고요.


저희 집안이 교육자 집안이라서인지, 아버지도 어머니도 저의 교직 이수를 원하고 계셨지만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그래라” 승낙해주셨습니다. 아들이 성인이 되어 심사숙고해서 내렸을 결정을 존중해 주셨던 겁니다. 돌이켜보니 심사숙고는 아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저를 불러 앉히셨습니다. "건이야, 나 죽기 전에 유언하면, 너 들어줄 건이?"라고 물어보셨습니다.^^ 당연하다고 말씀드렸죠. 그러자 어머니는 "그러면 그 유언, 좀 당겨쓰자. 교직 이수해라."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버지가 저에게 두말 않고 답을 주셨듯 저는 어머니께 두 말 없이 “네”라고 답해드렸습니다. 그날은 접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마감시간이 되기 전 가까스로 신청했습니다. 전 당시 집안이 어려웠고, 3학년 때부터 장학금을 받았는데요. 교직 신청자격에도 딱 맞아 신청만 하면, 과정을 들을 수 있는 상황이었죠.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어느 날, 교직 과정을 듣던 그 학생은 KT 직원들 앞에서 강의를 하게 됩니다. 리더십·생존학 강사로서의 첫발을 떼는 자리가 강사들이 선망하는 곳 중 하나인 그곳이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무척 벅찼죠. 대학 때 따둔 ‘2급 정교사 자격증’ 티켓이 없었다면 서기 어려운 자리였습니다. 아들의 섣부른 판단에 거부감 없는 브레이크를 걸어준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내 맘 잘 아는 MOM

역시 '어머니'는 저보다 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오늘 집에 들어갈 때,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빵을 사들고 가야겠습니다. 그리고 여쭤봐야겠습니다. “어머니, 그때 제가 만약 고집을 피웠으면 지금쯤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요?”

-곽건(곽랑주)-



“우연한 기회에 어머님이신 황인숙 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처음이라는 벽을 허물어버리는 36.5℃ 미소에 365도 무장 해제!

시각장애인을 위한 낭독봉사를 수십년째 해 오셨다는 아름다운 경력에 4차원 무장 해제!

모르는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사람, 그것도 꾸준히 할 줄 아는 사람에게서는

그를 향한 고마운 마음들이 모여 아우라가 되나 봅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입니다.” :)

-김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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