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압박, 살인

3화 월요일

by 건포도

익숙한 퇴근길, 차창에 지는 햇살이 수평하게 드리우며 선바이저 밑으로 내 눈을 관통한다. 저절로 찡그러지는 눈을 옆으로 돌리자 옆창에는 우연하게도 사건의 시발점인 동면산이 있다. 익숙한 풍경임에도 오늘만큼은 새롭게 보인다.


'동면산' 혹은 '대암산'이라고 주민들에게 불리는 이 동네 뒷산은, 정말 작다. 근처의 도솔산이나 대우산같이 크거나 이름이 정식으로 있는 산도 아니다. 지도상에도 산으로 나와있지 않고 관사를 삼면으로 둘러싼 산책로처럼 길만 표시되어 있는 게 전부다. 한여름에는 울창한 나무들로 자기 모습을 가꾸어 많은 동식물의 서식지 역할을 하지만 12월 초겨울인 지금에선 나뭇잎 하나 없어 뾰족한 가지들과 그 돌벽이 노골적으로 노출돼 있다. 그 풍경을 보다 보니 자연스레 어제의 일들이 빛을 반사하는 유리파편처럼 반짝이며 제 존재감을 과시한다.


검은 돌 절벽에 진득한 핏자국. 다리가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여 있는 형체. 신음과 생의 마지막 숨결. 굳어지는 팔다리와 애써 움직이게 하려고 만졌을 때의 그 차디찬 감촉.


멍하니 되새김질하다 정신을 차리니 창문 밖 풍경은 이미 달라져있다. 관사. 부대에서 운전으로 10분 거리에 갈림길이라곤 회전교차로 하나뿐이라 무의식적으로도 눈길을 건너왔나 보다.


'이젠 진짜 눈 감고도 왔다 갔다 할 수 있겠네'


실없는 생각으로 애써 웃어보려 했지만 곧 있을 대면에 긴장된 내 얼굴 근육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시간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확인하고 시동을 끈다.


[오후 5시 49분]


하필 또 공교로운 시간이다. 어제의 사건의 시작부터 정확히 24시간이 흘렀다니. 일주일도 더 넘은 옛날 일 같기도 하고, 불과 1~2시간 전의 일 같게도 느껴진다. 단지 이 우연이 불길한 징조가 아니길 애써 호흡과 긴장된 근육을 가다듬고 발길을 옮긴다.


동면아파트. 페인트마저 다 벗겨진 이 관사는 1970년대 그 시절에 지어져서 이제는 다 삭아가는 오래된 건물이다. 그 입구엔 CCTV 한대가 쌓여있는 택배 박스들을 바라보고 있다. 노후한 배선, 흐릿한 렌즈, 점멸하지 않는 전원 등. 처음 입주했을 때보다도 훨씬 전 작동을 중지한, 사실상 존재만 하는 기기다. 다시 생각은 과거로 도약한다.


처음 이 관사로 전입 오던 당시, 읍내의 마트에서도 충당하지 못한 생필품들을 배달시켰던 적이 있다. 로켓 배송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는 곳이라, 주문한 지 며칠이 걸려 배달품들은 도착했었다. 퇴근 후 내가 미처 택배를 집으로 넣어두기도 전에, 도착했다던 택배 물품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21세기에 택배 도둑이라니, 얼마나 황당했던지. 심지어 cctv가 그 외눈을 뜬 채 버젓이 바로 앞에서 찍고 있는데! 그 도둑은 이게 안 걸릴 거라고 생각했나? 그리고 안 걸렸다. 그때 처음 관리실을 통해 저 폐쇄회로는 장님의 외눈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이곳에 내 편은 아무도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뭐? 택배 도난? 겨우 그런 걸로 내 시간을 뺏어? 응? 네가 아직 사회물이 덜 빠졌구나 쯧'


대대장의 목소리가 관사의 유리문을 여닫으며 나를 따라 들어오는 바람을 타고 내 기억 속을 스쳐간다. 이젠 다신 들을 리 없는 목소리. 그 생각에 약간이나마 얼굴에 웃음이 지어지고 긴장이 풀린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싫어하고 기피하던 대대장. 그랬던 사람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니,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바뀐다는 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가 보다. 그래, 죽을 때여서 죽었나 보지. 내 탓이 아니다.


계단을 반층 오르자 우측에 곧바로 내 집이 보인다.


<206호>


허름한 나무 팻말. 그보다도 낡아 보이는 철제 문과 비밀번호 대신 열쇠로 열어야 하는 문고리. 당장이라도 들어가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애써 발걸음을 옮겨 한 층 더 올라간다.


<306호>


팻말부터가 황금빛으로 복도의 조명등을 받아 빛을 내며 신식 철제문에 박혀 있다. 비밀번호를 입력한 디지털 도어록이 눈에 담긴다. 비밀번호. 거진 주에 한 번씩은 술자리를 가진 후 고주망태가 되어 관사에 들어와서 난리를 치던걸 내가 몇 번 집에 집어넣으며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당시에는 날 억지로 술자리에 데리고 가지 않았던 것만으로도 만족하느라 미처 생각을 못했었는데, 도대체 누구와 그렇게 자주 술자리를 가졌던 걸까?'

문득 든 생각에 잠시 고민을 하다가 핸드폰을 꺼내 조작을 해둔 뒤 초인종을 누른다.


...

2초

3초

...


안에 아무도 없나? 싶은 순간 도어록이 소리를 내며 잠금이 해제된다.


"군의관님, 빨리 오셨네요? 들어오시죠"


방 형사는 어제와 똑같은 인상착의에 똑같이 담배를 한대 물고 있다. 대대장의 방은 사망한 이후 누구도 들린 적 없는지 너저분했고 거실에 있는 책상 위에는 반쯤 빈 더원 임팩트 담뱃갑과 재떨이에 끄다만 담배가 연기를 내고 있다.

순간 어제 느꼈던 데자뷔가 기억난다. 본능, 싸함, 직감, 육감 어떠한 표현으로도 불릴 수 있는 심장이 잠시 멈추는 기분. 다시금 담뱃갑을 본다. 쨍한 푸른빛에 둥그런 흰 원, 그 안에 로고.


'쯧 이거 이제 단종돼서 돈주고도 못 피는 귀한 거를 내가 권하는 데도 거절을 해? 응? 완전 샌님이구만'


어제의 형사가 피던 담배도 분명히 같은 담배였다. 공교로운 우연일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정리해 놨던 퍼즐들과 딱 들어맞는 단서다. 급격히 빨라지는 심장박동과 그 혈류의 여파로 머리가 뜨거워지기 전에 주위를 둘러본다.

하나 있는 낡은 소파 위에도 생전에 썼을 옷가지나 짐들이 많아, 앉을 곳도 마땅하지 않다. 아무리 봐도 정식으로 사건 접수가 되어서 조사관들이나 누가 와서 제대로 조사를 한 기색이 아니다. 더더욱 확신이 선다. 방 형사는 형사로서 날 조사하려고 부른 게 아니다. 고인이 된 대대장과 어떤 사적인 관계를 가진 사람으로서 날 대면하고 싶어서 부른 거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아내야 한다.


"별 일은 없으셨나요? 부대에서"

"... 아무래도 어제 일 때문에 정신없긴 했습니다"

"따로 누가 뭐 묻지는 않았고요?"

"군 검찰 측이랑 대대장 대리 맡은 정작과장님한테는 어제 형사님께 말씀드린 그대로만 말했습니다"


방 형사는 음 하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난 다른 사람들에게도 당신에게 말한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고 시인한 셈이다.

졸지에 좁은 관사 거실에서 성인 남자 두 명이 서서 마주 보고 있게 됐다. 불편한 장소, 불편한 상대와 불편한 상황. 몸이 굳어지고 무의식적으로 자꾸 내 몸이 뒤척거리려고 한다. 억지로 붙잡아놓기 위해 뒷짐을 지자 군인 같은 자세가 저절로 잡힌다. 그 모습에 방 형사가 피식 웃는다.


"너무 긴장하진 마세요, 그냥 확인 절차일 뿐이라서"


당연히 그 말에 내 긴장이 풀리진 않는다. 더불어서 날 거실 중간에 두고 포식자가 먹잇감을 탐색하듯 돌기 시작한 형사의 움직임은 되려 긴장을 가중시킨다.

확인 절차. 무슨 확인 절차일까? 그냥 경찰의 확인 절차와는 다른 의미일 것이다. 그럼 난 어떤 것을 확인시켜야 할까? 어제 상황에 대해선 뭐라고 답해야 정답일까. 우선 말을 아끼고 들으며 판단하기로 결정했다.


"제가 어제오늘 97부대 분들을 몇 분 조사를 했어요. 생전에 고인이 어떤 분이었는지, 원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 있는지..."


하고는 내 주위로 돌다 말고 날 쳐다본다.


"그리고 군의관님이랑은 어떻게 지냈는지. 뭐라 답을 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단도직입적으로 본론부터 묻진 않고 잔가지 질문을 먼저 던지는 방 형사. 말 그래도 어떤 확인 절차를 밟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대답하기 쉬운, 거짓을 섞을 필요가 없는 질문을 받았다. 오전에 미리 조사를 해두길 잘했군. 약간 맘이 놓이지만 티를 내지 않고 잠시 말을 고른 후 대답한다.


"생전에 좋은 분이셨다고...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원한 관계는 크고 작게 많았을 거고요. 그리고"


숨을 한번 고르고


"저와는 매일 붙어 다녔다고 들으셨을 것 같네요. 친하다, 가깝다 이런 말요"

"그래요... 맞아요. 그래서 군의관님 입장도 듣고 싶더라고요, 생전에 피해자와는 어떤 관계였죠?"


아마도 이것이 확인절차의 종지부일거란 예감이 든다. 답을 하기 전에 상황을 마지막으로 정리해 본다.


1. 방 형사는 대대장과 어떠한 접점이 있다.

2. 방 형사는 내가 거짓 진술한 것을 안다.

3. 그럼에도 난 서에 소환되어 정식으로 조사받고 있지 않다.


이로 유추해 받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결정한다.


"... 저흰, 파트너였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앉을 곳이 없어서 참, 그래도 얘기가 길진 않을 테니까. 아 말은 편하게 해도 되지?"


자연스레 소파 위의 물품들을 대충 바닥에 떨어트리고 앉으며 형사가 말을 이었다. 분명 같은 인상착의인데 방금과 전혀 다른 분위기에 말투가 신경 쓰인다.


"똑똑한 사람일 테니 대충 상황 파악 됐을 거라 생각해? 내가 누군지는 전해 들었나?"


전혀 모르겠다. 일단 당장 나에게 적의를 가진 것 같지 않다. 내가 누구에게 본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도박을 해야 하고 이럴 때 답은 빨라야 한다.


"생전에 이야기 들었습니다만, 이렇게 뵐 줄은 몰랐네요"

"그러게... 나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방 씨는 한숨과 함께 담배연기를 깊게 내쉬며 말했다.

일단 통과다. 내 가설이 들어맞았다. 대대장은 부대 외에 사적으로 만나는 사람 혹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대대장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나에 대해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다. 오해를 하는 이유는 어제 나와 대대장의 조우를 어떤 방식으로든 알기 때문이며, 나 이전에 부대 사람들을 조사했고, 내가 대대장과 파트너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모르는 것투성이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잠시의 침묵. 너무 서둘렀나? 가설이 맞으니까 마음이 더 급해져 실수한 기분이다.


"... 그게 이제 와서 뭐가 중요하겠어, 앞으로 우리 일이 더 중요한 거지 안 그래?"


이번에도 통과. 그렇지만 대답을 통해 얻은 정보는 거의 없다. 회피 반응, 뭔갈 숨기고 싶다라. 내가 방 씨의 입장이라면 뭘 숨기고 싶을까. 또 다른 가설이 하나 떠오르지만 아직 심증뿐이다. 일단 '일'이란 단어를 통해 말을 이어간다.


"일에 차질이 생길까 봐 그렇죠. 저희 부대 분위기상 상황이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아십니까?"


내 말에 대꾸하지 못하고 시선도 돌린 채 담배 한 대를 더 꺼내 불 붙인다. 또다시 회피. 적어도 갑을 관계로 따진다면 내가 을은 아니다. 좀 더 몰아붙여도 되겠다.


"뭐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어느 장단에 맞춰서 춤을 춥니까? 일을 같이 하려면 서로에겐 비밀이 없어야지 않겠어요?"


회심의 도박수를 던졌다. 어제오늘 쌓였던 피로와 스트레스 덕에 말투는 어색하지 않게 짜증이 잔뜩 묻어나고 언성도 절로 높아진다. 바로 손을 뻗어 조용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방 씨.


...


잠시 둘 다 조용히 있어도 위아래층에서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는다.

나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아무도 대대장이 있는 동에는 같이 살고 싶어 하지 않아 내가 사는 206호와 이곳, 306호 외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이걸 모르고 조심하는 기색을 보인다는 건, 적어도 대대장에 대해 방 씨도 모르는 점이 있다는 점과 '일'이란 것이 주위 사람들에게 들켜선 안될 예민한 주제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냥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일 얘기를 하다가 그 형님이 발을 헛디딘 거지"


발을 헛디뎠다. 말 그대로 실족사한 걸 의미하는 건지 혹은 어떤 비유적 표현인지를 잠시 고민해 봤지만 답이 나오진 않는다. 전자의 의미라면 하나 확실한 건 적어도 방 씨도 어제 그 현장 근처에 있었단 거다. 그리고 날 보았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불안감이 스멀스멀 흥분을 밀어내고 머리를 잠식하려 든다. 그 때문에 잠시 대화 사이에 마가 뜬다.


"... 그게 말이 됩니까?"

"사실이 그런 걸 뭐 어쩌겠어. 그보다 나도 그쪽한테 궁금한 게 아주 많아"


하며 씩 웃는다. 기세를 잃었다. 공수 전환, 이제 내가 맞받아칠 때가 됐다. 무슨 질문이 들어오든 단서를 조금이라도 덜 주기 위해 식탁에 기대앉는다. 아까의 열중쉬어 자세랑 다르게 내가 긴장했다는 티도 덜 나되 손과 자세는 고정되어 표정과 시선 그리고 말만 신경 쓰면 된다.


"일단, 어제 형님이랑은 무슨 대화를 그렇게 길게 했을까?"


이제야 가장 우려했던 질문이 나왔다.

대화라. 내가 신고를 하기 전까지 빈 2시간, 그동안 대화를 나눈 줄 알고 있다. 내용은 모르는 모양새고. 어떤 대화를 했다고 해야 자연스러울까.

생각은 어제로 되감긴다. 5시 49분. 대대장은 신음을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절벽에서 떨어졌는지 두피는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고 다리는 양쪽 다 꺾여있었다. 옷에 가려져 확실하진 않지만 개방 골절의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아무리 낮은 동네 뒷산이라지만 그래도 절벽은 10m가 넘는 높이와 70도 이상의 각도로 살인적이다. 아마도 눈이 완충 매트 역할을 어느 정도 해서 즉사를 면한 것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즉사가 아니었기에 고통이 더 길게 연장만 될 뿐이었다. 이대로 있으면 추위나 출혈로 몇 시간 내로 사망할 게 뻔하다. 이대로만 있으면...


'으으... 거기 누구... 군의관? 군의관이야?'


생각이 너무 길게 이어지지 않게 끊고 바싹 말라붙어가는 입을 강제로 연다.


"그냥, 일 얘기를 좀 했죠"

"일 얘기를 그렇게 오랫동안? 거의 두 시간 동안 환자랑 나눌 내용이 있나?"

"서로 입장 차이가 있어서 대화가 좀 길어졌죠"

"입장 차이라..."


하곤 씩 웃는다. 애써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본다.


"있을 만 하지, 그 형님이 어디 보통 고집인가"

"그쵸, 고집을 어찌나 부리시던지. 정말 쉬운 양반은 아니었어요. 아마 저희 둘 다 같은 상황 아니었을까..."


일부러 말을 끝맺지 않고 끌었다. 거짓말은 길면 티 난다. 목소리가 떨릴 수도 있고, 말실수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또 이렇게 애매하게 끌면...


"그러니까 말야, 고집만 내려놨어도 좋게 좋게 타협할 걸 굳이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드냐고. 다 자기가 자초한 일이지"


공감을 이끌어 내기가 쉽다. 또 공감을 하다 보면 사람은 친밀감을 느끼고, 친밀감을 느끼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약간의 안심이 찾아온다. 내 감정은 이토록 가볍다. 긴장했다가 흥분했다가 불안했다가 이젠 또 안심이라니. 아직 그럴 때가 아니기에 애써 방심하지 않고 방 씨의 말을 복기한다.

타협. 자초. 확실한 건 어제 대대장과 방 씨는 '일'과 관련된 어떤 타협이 틀어졌다. 그리고 대대장은 절벽으로 떨어졌고, 이를 본인이 자초한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방어기제로 보인다. 심증이 더욱 커진다. 대대장은 방 씨가 죽였다.


"그런 의미에서 군의관은 말이 잘 통하는 상대일까 궁금한데"

"하나 확신드릴 수 있는 건, 대대장님보단 제가 낫을 겁니다. 제가 볼 땐 형사님도 그러실 거 같은데요?"


방 씨는 하하 웃으며 당연하지 하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다 핀 담배를 재떨이에 끄며 한대를 더 꺼내어 불을 붙인다. 후련하고 편안해 보인다.

아무래도 오늘 나를 부른 용건은 '일'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절차와 주위 시선을 피해 날 부른 것을 보면 아마도 불법적인. 대대장과 방 씨는 생전에 어떤 '일'을 같이 했다. 그런데 어제 '일'과 관련된 어떤 합의가 되지 않아 둘은 다툰 후 방 씨가 대대장을 절벽에서 떨어트려 살해. 이후 우연히 내가 휘말린 것으로 심증이 굳어진다.

이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될까? 신고? 하지만 상대가 내 약점을 하나 들고 있다. 그 약점이 나한테 얼마나 치명적으로 작용할지도 미지수다. 더군다나 상대가 경찰이라 불리한 상황이다.

두 가지 방안이 떠오른다. 하나는 현실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변호사와 상의해 법정 싸움으로 끌고 가는 것, 두 번째는 지금 기세를 몰아 상대가 어떤 불법적인 일을 행하고 꾸며왔는지를 알아내 폭로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지금 당장의 대면을 슬슬 마무리하는 게 좋겠는데


"물건은 군의관이 가지고 있지? 수량은 얼마나 있는 거야?"


물건? 그게 뭔지 감도 안 잡히는데 수량은 또 어떻게 알겠는가. 일단 넘겨야 한다.


"내일 확인하고 정확하게 말씀드릴게요"

"본인이 가지고 온 물량을 본인이 몰라?"


위기다. 이럴 때 맘이 급해지면 실수가 나온다. 만약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를 생각해봐야 한다.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은데 누가 나에게 내 '일'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의심까지 한다면?

같잖음. 억울함. 이 감정을 내세운다. 더불어 화제를 전환한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빠질만한 화제로.


"그야 제가 일일이 세고 재진 않으니까요. 정산을 하려면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후에 해야죠"

"그렇지, 내가 실수했네... 정산은 아무래도 이제 형님도 없으니 우리 둘이 반반 하지?"


바로 그러죠 하고 대답을 할 뻔했다. 빨리 이제 이곳을 벗어나야 하니 그러고 싶다. 하지만 그래선 안된다. 내가 정말 '일'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이고, 그에 맞게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 대대장님이 이제 없는데 왜 반반이죠? 제가 더 리스크가 커졌으니 파이가 더 커져야 맞죠"

"흐 그냥 해본 말이야 너무 예민하게 받지 말고, 내일 연락 줘"


역시나 함정, 유도신문이었다. 긍정했으면 원래 정산 비율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었던 게 들통났을 거다. 간담이 서늘해짐과 동시에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에 기쁨 그리고 안 들킨 것에 대한 흥분이 모두 올라온다.

웃으며 방 씨와 악수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던 차였다.


"아 그러고 보니 주사기랑 필요물품들은 언제 줄 거야? 물건 받기 전에 먼저 전달받기로 했는데"


주사기. 약이다. '일'은 약과 관련된 것이다. 약을 의료기관과 무관하게 유통하는 것은 전부 불법이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마약이다. 그중에서도 주사로 투약하는 가장 대표적인 마약, 히로뽕.


"... 그것들도 물건이랑 같이 드리죠, 상황이 상황이라"


생각보다도 '일'이 큰, 중범죄다. 마약 유통도 당연히 중범죄이지만 그 과정에 군인이 가담하고 있다니. 더더욱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윽!"


명치어름에 급작스런 충격. 거의 동시에 등이 바닥에 부딪히는 충격. 폐 안의 모든 호흡이 빠져나가고 횡경막 마비된 기분이 든다. 시야는 갑자기 관사의 낡은 천장 벽지만 가득하다 갑자기 방 씨의 주름진 얼굴이 벽지를 가린다.


"커억..."


내 가슴께에 방 씨가 무릎을 찍어 누르며 앉아있다. 숨조차 제대로 들이마셔지지 않아 어떻게든 팔로 그를 밀어 넘어뜨리려 해 보지만 마른 체구에서 나오리라곤 상상도 안 되는 힘으로 되려 손목마저 잡혀 제압당한다.


"군의관, 대마를 피는데 주사기가 왜 필요하겠어. 엉?"


아 씨발. 당연하게도 대마인지는 알 수 없었다. 대답도 할 수 없이 그저 숨을 조금이라도 마시기 위해 헐떡거린다.


"거 참 이놈 물건이네... 어디서부터 구라를 친 거야? 너 뭐 하는 놈이야?"

"주... 머니... 주머니..."

"주머니?"


날 제압하고 있는 손 말고 다른 한 손으로 내 바지 주머니를 뒤지더니 내 폰을 꺼낸다. 그리곤


"이런 씨발!"

퍽! 콰직


다시금 시야가 반전된다. 이번엔 별이 보인다. 왼뺨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고통과 구강 내의 쇠맛. 한대 얻어맞았군.

그럴 만도 하다. 내 폰엔 전화가 연결되어 있고 녹음 중인 화면이 보일 테니까. 방 씨는 화면을 신경질적으로 누르곤 집어던져 깨트렸지만 이미 늦었다.


"헉... 그건 내 다른 폰이랑 연결된 전화야... 헉... 녹음은 거기에 다 저장됐을 거고... 날 어떻게 해봤자 자수하는 꼴밖에 안 될걸?"

"이런 개새끼가... 내가 그거 하나 못 찾을 거 같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나 보다. 방 씨가 날 보더니 한 대 더 때릴 듯 주먹을 쥔다. 웃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는 건 내 오랜 버릇이라고 아버지가 알려줬었다.


"후... 이봐 이러지 말고 그쪽도 나 약점 하나 가지고 있잖아. 그리고 당신이 형사 아냐? 내가 신고할 일은 없다고"

"..."

"녹음은 그냥 나도 안전장치를 하나 둔 것뿐이야. 어디다 쓸 생각 없다고"


다행히 한대 더 갈기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내 말을 듣는 눈치다. 이럴 때일수록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줘야 한다.


"어차피 내가 입 다물겠다 해도 못 믿을 테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도와줄게. 약에 관해선 내가 대대장보다 나아"

"하 이 새끼가..."

쨍그랑


방씨는 거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소주병 하나를 들고, 내리쳐 깨더니 파편이 뚝뚝 떨어지는 그 병의 잔해를 나에게 겨눈다. 빠르게 입을 놀린다.


"당신 우리 부대에 연줄도 더 없잖아. 나 없으면 지금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 아냐? 좋게좋게 가자고"


쫄면 안된다. 빙글빙글 도는 시야 때문에 쉽지 않지만 겨우 시선을 맞춘다. 천장의 형광등 때문에 생긴 그림자로 방 씨의 표정이 보이진 않는다. 얼굴을 읽을 수 없다. 설령 이제는 보인다 했더라도, 그 머리 안의 생각을 내가 알 수 없었을 거다.


"이길 수 없으면 합류하라. 내가 졌고, 항복하고 도와줄 테니 받아주라고 부탁하는 거야"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다 했고, 그저 하늘의 뜻을 기다릴 뿐이다.


아 내가 죽으면 부검은 아버지가 하실까? 오래전에 물어봤던 것 같은데, 답이 기억이 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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