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토요일
지난주 양구 포병 대대장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기존 부대에서 계획했던 바와는 달리 꽤 성대한 장례로, 사단 본부에서 진행됐다. 생전에 진급을 포기했던 그였지만, 사후에 대령으로 진급되어 장례를, 많은 장병들의 추모를 받으며 치를 수 있었다.
그는 비록 생전에 자신의 부대원들에게 엄격했지만, 스스로에게는 더욱 가혹했고 그렇기에 외로운 사람이었다. 오랜 양구 타지 생활을 하다 보니 양구군에 숨어있는 간악한 무리들을 예감하고 있었고, 그 무리를 일망타진하기 위해 몸소 잠입해 활동했다. 그러던 중 마약과 관련된 사업이 본인의 부대와 양구에 퍼지려고 하자 그는 미친놈과 방 형사라는 악당들을 확인, 직접 제지하려고 한 내용까지 전부 그의 폰에 기록되어 있었으나, 그는 불한당들의 역습에 당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행히 그는 마지막 순간에 마약을 악당들의 손에서 빼돌릴 수 있었고, 이를 회수하기 위해 미친놈과 방 형사는 무리를 하게 됐다. 부대에 수색 영장을 내고 대대장이 숨겨둔 마약을 찾은 후, 대대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던 해부대 군의관이 부검을 진행하고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은 대대장의 사망이 살인이었음을 숨기기 위해 부검 과정을 훼방 놓기 위해 부대의 탄약 창고에서 실탄을 빼돌린 후 군 병원을 습격했다. 그러나 너무 오랜 기간 동안 마약을 복용하지 못했던 미친놈은 너무 오랜만에 손에 들어온 마약을 참지 못하고 과복용하였고, 시신 피 장기 등이 흥건한 부검 환경에 들어서자 흥분을 못 이기고 총을 난사했다. 그 결과 방 형사는 사망, 이후 제압된 미친놈은 마약 과복용으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습격당한 피해자인 군의관과 법의학자는 외상은 없으나 정신적인 충격으로 회복 중에 있는 걸로 밝혀졌다...
라고 자신의 핸드폰으로 기사 내용을 읽어준 정작과장은 날 쳐다봤다.
"... 뭐, 아무튼 다 끝났네"
"그렇습니다"
"뭔가 사실이랑 여러모로 다른 게 보이지만, 뭐 나도 덕분에 특진했으니 지적할만한 건 아닌 거 같고"
"축하드립니다 대대장님"
"어 고마워요 군의관. 뭐 아직은 좀 머쓱하네"
라며 머리를 긁적이는 정작과장, 아니 이제는 대대장은 여전히 피로해 보였다. 그래도 이전과는 달리 근심 걱정이 얼굴에서 덜어져 있었다. 커피 한 잔 따라놓은 종이컵을 홀짝이며 그는 나를 보고 씩 웃어줬다.
"그래서 진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보도된 내용과 거의 동일합니다"
"그래? 요즘은 뭐 딱 한발 발포된 것도 총기난사라고 하나? 하물며 미친놈은 우리 부대 탄약에 한 번도 접근한 적도 없는데 어디서 그걸 구했을까... 게다가 두 개 사라졌다고 보고했다가 사건이 다 끝나고 남은 한 발을 찾는 와중에 이미 창고에 고이 놓여 있었다는 건? 내가 탄약반장을 아주 뭐, 족쳐놔야 하나"
꽤나 예리한 지적이고 심지어 내가 모르던 사실도 있었다. 내가 아는 건, 생뚱맞게 미친놈이 과복용을 했다는 것도, 더 앞부분으로 올라가서 대대장이 암행 경찰처럼 활동했다는 것도 전부.
그럴싸한 근거 하나 없지만 그렇게 보고한 아버지의 명예와 위신과, 부패한 경찰에 대한 불길이 커지지 않게 하기 위해 한 개인의 일탈로 축소시키고 싶은 경찰 측의 입장이 맞아 그렇게 정리가 됐다.
그럼에도 내 눈앞의 대대장 외에는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계급이 올라가더니 지능도 좀 올라간 걸까, 아니지 그런 명제가 성립했더라면 전 대대장이 지금 죽어있진 않았겠지. 나도 모르게 든 생각에 혼자 쿡 웃어버렸다. 그런 나를 보고 대대장이 놀란 듯 그의 작은 눈을 최대한 크게 떴다.
"군의관, 이렇게 웃을 줄도 알았나?"
"하하 이제 다 끝났지 않습니까"
"허, 뭐 그렇긴 하지"
하고 우린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이걸로 됐다. 사람은 원래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사실과 다르게 진실은 사람들이 믿는 것이 진실이다. 끝난 걸 다시 들춰서 사실을 알아내려는 사람도, 그걸 막기 위해 거짓말과 심리전을 교묘하게 꾸미는 사람도 없다.
대대장에게 경례하고 방을 나섰다. 익숙한 복도, 그 위를 그대로 걸어 목적지까지 갈 수 있지만 맘이 내키는 대로 중앙현관을 나서서 밖으로 나왔다.
지난주 까지도 이어진 양구의 폭설은 거짓말이었다는 듯 이젠 또 화창한 날씨다. 겨울 특유의 높고 넓은 하늘엔 작은 구름 몇 점만이 떠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여전히 대기는 겨울의 차가움을 한껏 품고 있었지만 크게 숨을 들이마쉬자, 폐에 가득 차는 공기는 시원했다.
맑고 찬 공기를 즐기며 발걸음을 옮겨 건물의 끝에 있는 출입문으로 다시 들어섰다. 바로 보이는 의무실, 들어가자 좌측에 의무물자창고가 보인다. 이젠 문도 없이 휑하니 뚫려 있는 출입문, 그 안은 어두웠지만 안에 있던 내용물들은 전부 꺼내져 정리됐기에 그 안 또한 텅 비어 있어 보였다.
마저 들어가서 의무실 안, 군의관실에 들어가서 앉았다. 지난 일주일은 그전 주의 일주일과는 다른 결로 정신없게 바빴지만 그럼에도 그때만큼의 감정의 요동은 없었다. 다시 찾아온 권태와 지루함에 절망하진 않았다. 대신 그 감정들에게 조금 더 예쁜 이름을 붙여줬다.
평화.
원래 좋아했던 단어는 아니었지만, 앞으로 평생 즐길 삶의 중간중간에 한 번씩은 꼭 필요함을 깨달은, 하나의 상태다.
잠시간의 평화를 즐기는 와중에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
바로 열리지 않는 문, 의무병이다.
"군의관님 의무병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들어와"
들어온 무병이는 여전히 어벙한 인상이다. 주말이라 활동복 차림이었기에 더욱 허술해 보였다.
"왜 주말인데 안 쉬고"
나를 찾아왔니?라는 뒷 말은 삼켰다. 무병이가 품 안에서 꺼낸 흰색 포장지의 물건을 봤기 때문이었다.
"저... 이거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여쭙고 싶어서 왔습니다"
물건은 뻔하게도 대대장이 빼돌려놨던 마약이다.
지난주, 지금은 고인이 된 방 씨가 부대를 다른 경찰들과 습격하기 전, 무병이는 미리 마약을 꺼내 자신이 보관하고 있었다. 그 후 방 씨가 오해를 사고, 부검 중인 나와 아버지를 잡기 위해 병원으로 떠났을 때 무병이도 마약을 여전히 가지고 그를 뒤따라 나온 것이다.
덕분에 부검실에서의 난동이 끝난 이후 미친놈을 마약 과복용으로 혼수상태로 만들 수 있었으나, 그럼에도 남은 분량에 대해 어찌하면 좋을지 나에게 가지고 온 것이다.
"그래 잘했어, 이번 주에 정신없이 바빠서 얘기를 못 했는데... 안 그래도 우리 할 말이 아주 많지?"
"어... 그렇습니까?"
"언제부터 알고 있었니?"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네 손에 있는 그거, 언제부터 의무 물자 창고에 있는 줄 알았냐고"
그제야 아! 하고 설명하는 무병이, 화두인 물건이 마약만 아니라면 마치 별거 아닌 간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 처음 대대장님이 물자 창고 관리시켰을 때부터 그 안의 품목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몇 주전에 갑자기 쓰레기통에 그게 나와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대대장님께 보고 드리려고 했는데 그게, 대대장님이 돌아가시면서 누구한테 보고를 드려야 하나 고민을 했습니다. 근데 예전에 대대장님이 안에 있는 것들은 절대 누구에게도 언급조차 금지라고 해서... 그, 그래도! 군의관님께는 보고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제가 계속 물자 창고 점검을 여쭤 봤던 겁니다!"
"그렇구나"
라고 말은 했지만 당연히 곧이곧대로 믿는 건 아니었다. 무해한 인상과 허술하고 어눌한 말투와 다르게 그의 지난 행적들은 충분히 의심을 살 만했기에, 난 더 캐물었다.
"그럼 그건 언제 왜 방 씨가 찾기 전에 빼돌렸니?"
"어... 그건 말입니다"
"그리고 탄약 창고에서 실탄 챙긴 건 어떻게 설명하려고"
"아앗! 그건 탄약 반장님한테 끌려가서 물자 확인하다가 실수로 그런 거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딱 두발. 필요한 만큼만 우연히 네 품 안에 들어갔다고?"
원래 무병이는 미친놈과 방 씨에게 각각 한 발씩 단 두발을 발포할 생각으로 챙긴 것이다. 그러나 미친놈은 총을 쏠 필요도 없이 제압이 완료가 됐기에 무병이는 남은 한 발을 다시 몰래 반납했고, 성공했다.
도난되고 발포된 한 발은 미친놈이 미친 짓을 하기 위해 아무도 모르는 어떤 미친 기행을 통해 빼돌린 것 혹은 방 씨가 계획적으로 훔쳐온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 됐다.
나도 그렇게 끝인 줄 알았다가 방금 전 대대장과의 조우를 통해 깨달았었다. 애초에 시작부터 나를 돕는 조력자가 있었음을. 그것도 정말 가까이.
"어어..."
"아직도 연기할 거야?"
나의 질문에 대답하거나 반응하는 대신 무병이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생각해 보면 무병이는 늘 사람 눈을 잘 못 쳐다봤기에, 이렇게 눈을 마주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잠깐보다 짧은, 찰나의 눈빛 교환이 스쳐 지나가고 무병이는 다시 평소의 무병이처럼 당황했다. 횡설수설하며 어떻게든 변명을 하는 그의 모습은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그에 나는 또 한 번 웃음을 참지 않고 터뜨렸다.
"... 도 두 개나 있었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냥 군의관님을 돕고 싶어서 했던 건데, 다 끝나고 나서 보니까 한 개 더 있어서 저도 당황했는데, 이미 부대는 난리 나있고 해서 그게, 저도 무서워서 새벽에 몰래 그렇게 할 겁니다! 진짜 믿어주십시오"
"그래그래,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리고 다 끝났으니까, 괜찮아"
한 번 터진 웃음은 잔불처럼 쉽게 그치진 않았지만 겨우 수습하면서 무병이를 달랬다.
"그건 두고 가. 내가 처리할게"
"... 정말입니까?"
"그럼, 싫으면 네가 알아서 해도 되고"
"아아 아닙니다!"
"그래 이제 주말인데, 잘 쉬고. 들어가 봐"
"넵 알겠습니다!"
책상에 마약 봉지를 두고 잽싸게 나가려는 무병이를 내가 마지막으로 붙잡았다.
"맞다 무병아"
"넵 군의관님"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다가 중간에 끊기면은, 거짓말을 계속 이어가려고만 하더라"
"어어... 예? 잘못 들었습니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를 얘기할 땐, 중간에 끊기면, 끊은 원인에 대한 반응을 먼저 하고 이어간다고. 다 잘하는데 이거 하나 티 나길래"
알려줬어.라는 뒷말은 다시 한번 마주친 우리 둘의 눈 때문에 삼켰다. 무병이는 이번엔 잠시에 가깝게 날 쳐다보고는, 못지않게 잠깐이었던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새겨듣겠습니다"
무병이가 나간 뒤 난 의자에 몸을 뉘었다. 이제 정말 끝이다. 더 놓친 건 없겠지 오랜만에 점검하려는데, 책상 위의 마약이 눈에 밟혔다. 아 저게 남았지. 저건 또 어찌한담. 이번엔 그에 대해 고민을 하려는데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내 핸드폰. 화면을 보니 익숙한 번호, 아버지다.
"... 네 아버지"
[그래, 다 정리됐니?]
무엇에 대해 정리됐는지를 묻는 걸까, 너무 많은 후보군에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대답은 할 수 있었다.
"네, 다 정리됐어요"
[그래 잘했다]
하고 수화기는 잠깐 조용했다. 그에 의아함을 느끼자 그제야 내가 방금 아버지께 칭찬 혹은 인정을 받았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나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못 했고, 침묵은 몇 초 더 이어졌다. 그러다 누가 먼 저랄 거 없이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는 부검 이후 정신적 신체적 충격을 핑계로 군 병원에 하루간 입원을 하며 조사를 미루다가, 자신의 연줄을 통해 서울로 서울 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다음날에 이동했다.
이후에 조사나 언론 인터뷰 전부 서울에서 진행을 했고, 한국에 몇 없는 법의학자가 강원도 외진 곳에서 살해당할 뻔했단 이야기에 관심이 끌린 여론 덕으로 그 내용의 진위여부를 따져야 한다는 의견들은 묻히게 됐다.
나도 양구에서 받은 조사들과 인터뷰들에서, 아버지가 말했던 내용들과 일치하기 위해 바쁘게 그의 의중을 묻지 않고 읽어야 했고, 이게 사건 종결 이후 첫 통화였기에 나눌 이야기들은 많았다. 그러다 아버지가 잠시 뜸을 들였고, 난 그 순간부터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예상이 됐다.
[그것도 처리했니?]
"네, 없앴어요"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먼저 툭하고 나왔다. 아버지에게 했음에도 떨리지 않았다. 남들에게 했듯 아무렇지 않은 느낌. 내 심장 박동마저 평소와 같이 일정하다.
"무병이 와도 잘 얘기했어요"
[... 그러니?]
"네"
방금 내가 말했기에 아버지도 그제야 무병이에 대해서 파악을 했으리라. 내가 먼저 어떤 사실을 파악하고 아버지께 알려주다니, 생경한 기분이 든다. 자신감. 아버지와의 대화에서는 처음 느껴본다. 내 몸을 점검해 보았으나, 전과 같다. 무료하고 권태로운 신체 반응들, 아무렇지 않다. 마치 당연한 것처럼.
[그럼 내년에 부대 옮기는 건 어떻게 하고 싶니]
"옮기려고요"
아버지가 더 묻기 전에 내가 먼저 답을 냈다.
"서울로요"
[... 그래 잘 생각했다. 그럼, ]
이번에도 질문보다 대답이 더 빨랐다.
"해야죠, 법의학"
[... 그래?]
"약속했으니까요"
지난 한 주 동안 아버지의 생각을 읽기 위해 노력했던 덕일까 혹은 그전 주에 내가 겪었던 좌충우돌한 경험 덕일까, 더 이상 아버지가 어렵지 않았다. 읽기 어려운 사람이 더 이상 아니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 피하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았기에 쉽게 결정 내릴 수 있었다.
몇 분의 대화 이후 전화가 끊기고나서야 비로소 나 홀로 남겨질 수 있었다.
토요일, 근무 날도 아니기에 찾아올 환자도 없고 부대에서 나에게 더 남아있는 용건도 없다. 피차 마찬가지로 나도 이곳에 용건도 미련도 없다. 떠날 때가 됐다.
방 안을 둘러보고 다시 포장된 마약을 보고 챙기기로 결정했다.
언젠간 또 제 역할을 찾아 쓸 수 있겠지.
언제나 남들이 모르는 내 패 하나 더 있는 건, 필요할 때 우위에 설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이니까.
난, 지금의 평화와 고요를 버텨내며 다가올 폭풍들을 기대했다.
그제야 지금,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