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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24. 2017

두 통의 전화가 나를 춤추게 한다

2009년 국토종단 19 -  4월 28일(화)

몸을 제대로 지졌다. 열탕과 사우나를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며 찜질했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서 걷기에 거북한 탓에 제대로 걸을 수 없었고, 그런 상태로 계속 걸어야 하니 골반 쪽도 무리가 왔는지 결리더라. 그래서 몸을 최대한 뜨거운 열기에 노출하여 풀려고 했던 것이다. 

몸이 어느 정도 풀리자 물집을 치료하기에 바빴다. 1주일간 걷다 보니 물집이 잡힌 곳에 다시 물집이 잡히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 물집 속의 물집이라고나 할까. 물집이 처음에 잡힌 곳은 바늘에 실을 꿰어 통과시켜 물을 빼낸다. 그래야 이물감도 없어지고 발바닥이 바닥과 닿을 때 찌릿찌릿 아려오는 기운도 가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을 뺀 곳에 다시 물집이 잡히니, 바늘을 찌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서 뜨거운 물로 최대한 발바닥의 살을 불려서 바늘을 찌르기도 했다. 여기저기 실을 관통시켜 다양한 색의 실이 발바닥 이곳저곳을 수놓았다. 여태껏 본 적도 없고 다시는 볼 수 없는 장관이라 할 수 있다. 그 상태로 잠을 잤다. 당연히 다 자고 나면 물이 다 빠져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아침에 확인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더라. 일어나서 걸어보니 여전히 아팠고, 물도 다 빠지지 않아 이물감도 상당했다. 아직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이런 자잘한 실수를 한다.                



▲ 여행은 한 순간도 정해진 게 없다. 그저 세상에 나를 던진 것이니 말이다. 그 우연을 타고 간다.




행복이란 멀리 있지 않다 

   

오늘은 좀 여유를 부렸다. 엊그제 무리를 한 탓에 아직까지 몸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제에 이어 오늘도 무리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만큼만 걸으며 여행하기로 했다. 

7시 30분까지 뜨거운 물에 몸을 풀고 다시 ‘물집 관리’를 했다. 다시 촘촘하게 실을 관통시켰고 꾹꾹 눌러 물을 다 빼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이렇게 잘 처리하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낫더라. 그리고 이게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었는지 막상 찜질방에서 맨발로 왔다 갔다 할 때는 아프더니, 신발을 신고 걸을 때는 오히려 괜찮더라. 어제 절뚝거리며 걸었었는데, 하루 만에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되니 기분이 좋아졌다. 발걸음도 리듬을 타는 듯 경쾌해졌고 기분도 새벽 공기를 마시며 가는 냥 상쾌해졌다. 지금 시간은 8시 40분이니 한껏 여유를 부리며 가면 된다. 

세상에나 발바닥 통증이 사라졌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확실히 건강할 땐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지 못하다가, 그게 사라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알게 된다. 발바닥의 물집은 매우 작은 것이지만, 그게 생기는 순간부터 도보여행은 자칫 지옥과도 같은 것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작다가 무시해서도 안 되며, 있을 때 당연하게 느껴진다 해서 함부로 대해서도 안 된다. 바로 그 작은 것, 당연한 것 속에 일상의 행복이, 삶의 기쁨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 2011년에 떠났던 사람여행에서도 여전히 발은 소중하고도 귀한 존재였다. 늘 스쳐 지낸 것에 행복이 숨어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것들엔 관심을 가지지 않고 더 큰 이상, 더 큰 꿈, 더 많은 돈만을 좇느라 분주하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나에게 있는 것은 폄하하고 남에게 있는 것만을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일상의 행복은 사라지고 내 것의 풍요로움은 증발되어 내 것이 아닌 것, 지금 가지고 있는 이상의 것만으로 찾아다니며 허덕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의 무덤을 파고, 스스로를 궁지로 모는 꼴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걸 자승자박이라 한다. 

세상이 아무리 그런 것을 좋아보이게 하고, 그렇게 나를 몰아간다 할지라도 거기에 말려들지 않도록 태연할 필요가 있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고 그걸 즐기며 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니 말이다. 지금의 나처럼 그저 발바닥의 통증이 없어진 것만으로도 저절로 행복하고 즐거운 것처럼 일상의 행복을 되찾고, 당연함으로 묻어둔 기쁨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여행의 모토는 ‘천천히 즐기며 걷자’다. 연기군까지 가려 하지만 목적지는 딱히 정하지 않고 그저 걸을 수 있는 만큼 걷고 쉴 만큼 쉬다가 저녁이 되면 잘 곳을 찾으려 한다. 더욱이 오늘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민가에 잠자리를 요청해볼 생각이다. 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용기도 없고, 여행 자체도 어색하여 감히 해보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은 나름대로 익숙해지고 제법 용기를 낼 수도 있을 거 같으니, 해보려는 것이다. 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물이 부딪혀 휘돌아가듯이 상황을 품으며 방법을 강구해볼 것이다. 오늘은 과연 어떤 여행기가 펼쳐질까?               



▲ 논산에선 그다지 추억이 없다. 부딪히지 않으니, 남은 게 없다.




행복을 깃다

     

김밥집이 보이면 김밥을 사서 아침으로 먹으려 했지만 보이지 않아서 그냥 출발했다. 영광에서 출발할 때도 딱 이랬었는데 그 때의 ‘악몽’이 잠시 스치더라. 그 때는 목적지 자체가 있었고 웬만큼 먼 곳이었기에 부리나케 걸어야 했지만, 지금은 목표지점도 없을뿐더러 많이 걸을 생각도 없다는 거다. 

논산 시내 인접지역은 대로여서 차들도 많이 다녀서 천천히 걸어서 지나가야 했다. 그러다 691번 지방도로 접어드니 좀 한산해지더라. 그쯤에선 아침밥을 먹어도 될 거 같아서 도로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침은 생라면과 찜질방 카운터를 대신 봐주고 받은 음료수, 그리고 육포 2조각이 전부다. 언젠가 먹으려고 놔둔 비상식량을 오늘 말끔히 다 처리하게 되는 셈이다. 분명히 초라한 아침이지만 그늘에 앉아 한갓진 길에서 먹는 아침은 여느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았다. 거기에 날씨까지 좋아 바람은 시원했고 정적인 분위기로 나름의 운치까지 더해지니 군침이 돌 정도였다. 

그러고 보면 아침을 먹은 장소는 별 볼일 없었을 뿐만 아니라, 최악이라고 할만도 하다. 옆에 고물상이 있어서 폐지와 온갖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아침밥 치고는 매우 부실하고 그저 때우기 위해 먹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이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이 행복했다고 하니, 의아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건 과장법도 아니고, 반어법도 아닌 사실 그대로를 말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행복이란 외부 환경의 좋고 나쁨과는 그다지 상관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은 ‘너 때문에 행복해’, ‘가정환경이 불우해서 불행해’하는 말들을 곧잘 하며 환경과 감정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나 또한 여태껏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여행을 하다 보니 환경 또한 하나의 가능성일 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저 마음이 얼마나 여유가 있고 즐기려는 마음이 있느냐에 따라 환경은 최악일지라도 최상의 시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로 지금이야말로 나는 도보여행을 하며 제대로 쉬고 있는 셈이다. 그건 돈을 지불하고서 얻은 가상의 휴식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낸 진정한 휴식이라 할 수 있다.                



▲ 화살표로 표시된 곳쯤에서 아침을 먹었다. 장소 자체는 좋지 않지만, 그 어느 때 느끼지 못한 느낌을 받았다.




뜻밖의 전화 1- 궁금할 때 전화를 걸 수 있다는 것

     

오늘은 이상하게도 격려 전화가 두 통이나 걸려 왔다.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그런 전화를 받으니 생기가 샘솟더라. 아무리 혼자 다니는 게 좋다 해도 많이 외롭고 많이 쓸쓸했었나보다. 그 전화에 마음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고 누군가 나를 응원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울컥했으니 말이다. 

혼자 있어보니 같이 있는 것의 의미도 남다르게 느껴진다. 그건 다른 게 아니었다. 그저 내 옆에 그렇게 있다는 존재감이 아니었을까? 단지 같이 있다는 느낌.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말을 ‘쌈빡’하고 ‘유머’있게 하지 않아도 좋은 그런 것 말이다. 

처음으로 온 전화는 동아리 후배에게 온 것이다. 함열에서 교회에서 잘 수 있도록 주선해준 후배가 동아리 게시판에 내 이야기를 올렸나 보더라. 그걸 본 한 후배가 연락을 해온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이야기를 하는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각자의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이렇게 생각날 때, 궁금할 때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 삶은 얼마나 멋진 삶인가. 

그러고 보면 ‘좋은 선물’이란 게 값진 선물을 말하는 건 아닌 거 같다. 그저 그 사람이 생각나면 이렇게 전화해서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것, 특별하진 않지만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 그것 자체가 좋은 선물이기 때문이다.        



▲ 크로스선교합창단 19기 아이들이다. 보람이 결혼식으로 뭉쳤다. 이 중에 이때 전화해준 후배가 있다.



        

뜻밖의 전화 – 전화는 감정을 나누는 것   

  

두 번째로 걸려온 전화는 정말 특별한 전화였다. 한참 걷고 있는데 이번에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 것이다. 한참 전주에선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진행되고 있어서 후보자를 PR하기 위한 전화이려니 하며 받았었다. 

그런데 막상 받아 보니 그게 아니었다. 대뜸 “선배님!”이라고 외치는 것이다. 요즘 나에게 선배님이라 부르며 전화할 사람은 없었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한 소개도 없이 다짜고짜 힘내라고 격려해주는 게 아닌가? 너무나 황당해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윤교수님이 강의시간에 내가 도보여행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에 감명 받아 나에게 넉살 좋게 전화를 했다는 거였다. 그런 자초지종이 있음에도 다 빼놓고 대뜸 선배님이라 부른 후 “힘내세요”라고 외쳤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도 감사하다고 말을 건네며 마음을 전달했다. 



▲ 대학생 때 많은 영향을 주고, 도보여행 중에도 가장 많은 응원을 해준 교수님이다. 이 교수님이 나를 소개해준 것이다.



말을 나눈다. 하지만 그 말이란 게 단순히 에너지의 파동에 그치지 않는다. 파동은 에너지이기에 곧 사라지지만, 사람의 귀로 들어온 파동은 하나의 정감으로 머릿속에 자리 잡기 때문이다. 정감은 가슴 속에 남아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에너지가 되어 발산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감정과 감정의 어우러짐은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이 되는 힘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린 그냥 단순한 전화 통화를 한 것이지만, 그 전화로 난 힘을 얻었고 더 재밌게 여행을 해보겠다는 기대를 품었다. 두 통이나 걸려온 뜻밖의 전화는 긍정의 기운을 한껏 실어 나에게 전달됐다. 선순환은 선순환을 낳고, 긍정적인 기운은 긍정의 기운을 더욱 팽창시킨다. 그렇게 전해주고 전달받으며 우린 함께 이 길을 걸어간다. 고맙고도 고마운 일이다. 



▲ 뜻밖의 전화에 걸음걸이에도 힘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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