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May 01. 2017

생거진천에서 고추를 심다

2009년 국토종단 30 -  5월 2일(토)

낯선 사람이 집에 들어온다는 건, 도시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에겐 경악스런 일이다. 집이 비싸면 비싸질수록, 가전제품이 고급스러워지면 고급스러워질수록 그 공간은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간이기보다 나만을 위한 공간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요즘엔 아파트의 브랜드명으로 계급을 나눠 “임대아파트 아이들과는 어울리지마”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며 편 나누기를 하고, 나의 집에 약속되지 않은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 아파트에 당연한 듯 설치되고 있는 비밀번호 입력기. 그렇게 완벽히 차단된 공간이 되어 간다.



            

민폐를 끼치고 함께 엮이라     


나 또한 그런 도시문화에 젖어 있었고, 여태껏 그렇게만 살아왔으니 지금과 같은 상황들이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물론 호기롭게 ‘낯선 사람 집에서 잠도 자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고 생각하며 도보여행을 떠난 것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사람들의 마음이 열려 있을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세상이 삭막해서, 사람이 무서워서 문제였다기보다, 꽁꽁 맘의 문을 닫고 한껏 두려움을 키워온 내 자신이 문제였다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도시문화의 악습에서 벗어나는 일은 꽁꽁 닫고 있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어떤 선입견도 없이 그 현장 속에 파묻혀 보는 일일 터다. 

어제 저녁에 이장님 댁에서 저녁을 먹는데 얼핏 ‘내일 고추를 심는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들었다. 그 당시만 해도 여독이 풀리지 않아 쉬고 싶다는 생각에 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더욱이 다음 주 월요일까지 여주에 가야 한다고 계획해놨으니,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해선 안 된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막상 마을회관에 와서 몸을 누이며 생각해보니, 이건 둘도 없는 좋은 기회라는 거다. 농사일도 체험해보고 덩달아 마을 사람들도 사귈 수 있으니 말이다. 월요일에 친구와 보기로 했지만, 그런 약속 또한 도보여행의 일정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 있을 테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려고 하지 않아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것이지, 하려고만 하면 어떻게든 해결책은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고 나니, 맘은 한결 가벼워졌다. 과연 이장님은 같이 일할 수 있도록 해주실까?

그래서 아침을 먹다가 이장님에게 “오늘 일을 같이 해도 되나요?”라고 물었다. 나도 이런 경험이 처음이지만, 이장님도 이런 경험은 처음일 것이다. 짧은 정적이 흘렀지만, 나에겐 꽤나 길게 느껴지던 순간이다. 그런데 이장님은 ‘뭐 대수냐’라는 듯이 그렇게 하라고 말씀해주셨다. 어제 저녁에 교회에서 받아주지 않아 경찰서를 찾아갔고, 그 덕으로 이장님을 소개 받아 이곳에서 자게 됐으니, 참 인생이란 ‘한시 앞도 알 수 없다’는 표현이 적확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야 나의 도보여행이 이처럼 짜임새를 갖춰가기 시작하는 것이니 말이다. 



▲ 무작정 걷고 싶어 출발한 여행이 이렇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생거진천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6시 30분에 눈을 떴고 바로 거실로 들어섰다. 그곳에선 이미 왁자지껄 식구들이 아침을 먹고 있더라. 낯선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았는데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보거나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나도 자연스럽게 앉아 맛있게 아침을 먹으면 될 뿐이다. 

아참! 어제와 오늘 공통의 이야기 화제는 진천군 초평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들이 고등학생 때 아버지를 죽여 마당에 묻었는데 그게 3년여가 지난 지금에서야 들통 난 사건이었다. 이장님네도 그 가족을 알고 지냈기에 남일 같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막상 어제 뉴스에서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충격이 크셨을까? 그래서 오늘 아침까지도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으며, 그 이야기를 계속해서 나누었던 것이다.                



▲ 초평 저수지의 해질녘 풍경.




체험 삶의 현장이장님네 고추 심기 

    

이미 밭은 다 갈려 있었고 두둑엔 비닐이 씌워진 상태였다. 아마도 고추를 심기 위해선 그게 기초작업이었던 듯싶다. 

고추심기는 ‘두둑에 적당 거리를 띄어서 구멍을 파고 물을 준다→모판에서 어린 고추싹을 떼어 물을 준 곳에 푹 박아 넣는다→흙을 퍼서 고추싹 근처에 뿌려준다→뿌린 흙으로 고추싹을 세워준다’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말뚝을 어떻게 쓰는 건지는 모르지만 각 고랑에 잘 옮겨 놓았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니 막상 하겠다고 큰 소리를 쳤음에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더욱이 육체노동이니 겁부터 났던 것 같다. 처음으로 하게 된 일은 모판에서 고추를 떼어 홈 파인 곳에 박아 넣는 일이었다. 예전엔 일일이 고랑을 파고 물을 준 후에 고추싹을 심어야 했을 테지만, 지금은 기구들이 좋아져서 구멍을 팔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구에서 아예 물까지 나오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러니 한 번 그 기구를 두둑에 찔렀다 빼면 구멍이 빠짐과 동시에 물까지 흠뻑 적셔지는 것이다. 참 멋진 발명품이다. 

이장님네 가족뿐만 아니라 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니 절로 신이 났고 일의 진행속도로 엄청 빨랐다. 어느 정도를 하다 보니 일이 손에 익어 자동으로 척척 손발이 맞더라. 단순 반복 노동이니 그렇게 머리를 굴려야 한다거나, 요령을 부려야 한다거나 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저 성실히 흐름에 따라서 해나가기만 하면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힘들어졌지만, 그만큼 오히려 정신은 맑아져 가는 걸 느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건 정직한 노동이기에, 그런 정서들이 안정감을 주는 것만 같았다. 



▲ 그때 찍은 사진이 지금은 없어서 아쉽다. 그래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으로 대신 그 광경을 전한다.



앞엔 저수지가 있고 주위엔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풍경은 흡사 『웰컴 투 동막골』에서 나오는 마을의 모습과도 같아 보였다. 더욱이 지금처럼 평온한 마음으로 고추를 심으며 사람들과 오순도순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으니, 그 영화에서 감자를 캐던 장면과 정확히 오버랩이 된다고나 할까. 그 장면을 봤을 때도 ‘몸은 힘들 테지만, 마음만은 편하겠네’라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지금 이 순간, 나도 산기운과 밭기운을 동시에 받으며 사람들의 행복한 기운을 온 몸으로 받으며 일을 하고 있으니,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기만 하다. 땀을 흘린 후에 마시는 냉수는 여느 보약 부럽지 않은 생명수 같은 느낌까지 들고 말이다. 

이장님은 고추 심는 일은 고추 따는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해주셨다. 고추는 뙤약볕이 작렬하는 한 여름의 기운을 온 몸에 받으며 따야 한단다. 그러니 땀으로 맥질하게 되는 건 기본이고 한 낮의 볕에 몸이 익을 지경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거기에 고추의 매운 성분은 그대로 눈․코․피부 할 것 없이 전해져서 아프게 한단다. 그것이야말로 어찌 보면 이런 일과는 완전히 다른 진정한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장님네 고추를 심는 일은 11시 정도가 되어서야 끝났다. 하루 종일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빨리 끝난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이제 점심만 먹고 나는 다시 도보여행을 떠나야 하나?’라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더라. 어쨌든 점심을 먹기 전까지 시간이 있으니 난 경로당으로 돌아와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봐야만 했다. 



▲ 오전 내내 열심히 심었더니, 금세 끝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치 앞도 모르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