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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Feb 26. 2018

처절하게 외로워져라

2018 나 홀로 제주 여행 11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그건 바로 낯선 이와 만나는 것과 그 지역의 특산물로 만든 음식을 먹는 것, 그리고 그곳의 역사를 흡입하는 것이다. 여행은 기본적으로 내가 살아왔던 장소를 떠나는 것을 말한다. 그건 자연히 익숙함과의 결별일 수밖에 없고, 친숙함과의 이별일 수밖에 없다. 익숙함은 그곳에서 살아왔기에 내가 어떤 삶의 문법에 갇혀 살아왔는지를 잊게 하며, 친숙함은 늘 알아오던 이를 만나왔기에 어떤 식으로 관계 맺기 했는지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                



▲ 익숙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주에 왔고  지금은 우도까지 기어들어왔다.




떠난 장소에서 전혀 상상도 못했던 것을 해보라  

   

그런 상황에 오래 있다 보면 생활은 몸에 습관처럼 달라붙어 어떠한 긴장도 사라지게 하며, 사람은 내 생각과 딱 맞아떨어져(물론 이건 착각이다) 감흥도 증발되게 한다. 그게 바로 무료함이고 단조로움으로, ‘내 삶이 쳇 바퀴를 굴리고 있는 햄스터와 다를 게 없다’는 자책으로 이어지게 한다. 

바로 이럴 때 우리는 떠나야 한다. 익숙함과 친숙함의 공간과 관계에서 떠나 전혀 새로운 문법의 공간과 관계로 들어가야 한다. 그럴 때 희미하게 꺼져 가던 의욕도 되살아나고, 잃었던 열정도 활활 타오르게 된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그저 떠났다고 해서 그런 것들이 느껴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군가는 가족끼리 몇 박 며칠 동안 여행을 다녀왔지만, 그저 일상에서 느끼던 감정만을 반복적으로 느낀 채 대판 싸우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으며, 누군가는 업무 차 떠난 해외여행에서 일만 하느라 평소보다도 더 많이 피곤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즉, 장소만 벗어났다고 해서 새로운 감정이 드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장소를 떠나는 건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렇다면 정말 어떤 게 필요한 걸까? 그건 떠난 장소에서 일상에선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던 것을 하는 것이다. 늘 남의 이목이 신경 쓰여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하던 것들, ‘난 ~~한 사람이야’라는 자기규정 탓에 미처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하면 된다. 춤을 춰본 적이 없는 사람이 춤을 춘다던지, 새로운 사람 앞에선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이 낯선 이와 한껏 어우러져 대화를 나눈다던지 하는 행동 말이다. 나의 경우엔 카자흐스탄 여행 중에 결혼식에 참여하여 밤늦도록 이야기했던 경험이나, 작년 재즈 콘서트 때 아이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음악에 몸을 맡겼던 경험이 그러한 예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났다면 전혀 모르는 사람과 만나야 하고, 전혀 맛본 적이 음식을 먹어야 하고, 한 번도 관심 가져보지 못한 그곳의 역사에 빠져봐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여행이 된다.                



▲ 카자흐스탄 결혼식은  밤새도록 진행된다. 그 축제의 장에 함께 어우러졌다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영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외로움을 느끼다

     

무작정 제주로 여행을 떠난 지 3일 만에 마침내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음식을 주문하게 됐다. 그간 중화요리나 해장국만 먹었으니 이순간이야말로 여행다운 여행의 순간이라 할 수 있다. 

해물짬뽕부터 나와서 얼른 국물부터 떠먹어봤다. 요즘 들어 짬뽕에 푹 빠져 정말 깊은 맛이나 감칠맛 나는 짬뽕을 찾아다니곤 하는데 강릉에서 먹어본 교동반점의 짬뽕은 후추맛이 너무 강하고 국물은 밍밍하여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과연 이곳의 맛은 어떨까? 약간 매콤하며 불맛도 나긴 했는데, 해물의 깊은 맛이 배어 있지 않아 실망했다. 그래도 꽃게도 들어 있고 낙지도 한 마리가 떡 하니 들어 있어 먹을 게 많아서 행복하다고나 할까. 

조금 기다리니 스테이크와 전복이 구워져 나왔다. ‘과연 이건 무슨 맛일까?’ 너무도 궁금하여 스테이크부터 조금 떼어서 먹어봤는데, 어디서나 흔히 먹을 수 있는 함박스테이크 맛이더라. 전복도 별 다른 소스가 발라져 있지 않아 그저 구운 전복맛이었다. 두 음식 모두 실패!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이 실패의 불운을 상쇄시켜줄 것인가? 마침내 한라산볶음밥이 나왔다. 가운데엔 김치볶음밥이 있고 곁엔 치즈와 계란이 둘러져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을 자극한다. 그래서 김치볶음밥부터 먹어보니 좀 매운 맛이 나더라. 아마도 곁에 있는 치즈와 계란과 함께 먹으라는 뜻에서 김치볶음밥엔 간을 좀 세게 한 듯했다. 그래서 둘을 섞어서 먹어보니 맛이 꽤 괜찮더라. 원래 뷔페에선 맛을 기약할 수 없듯, 세 가지 음식에서 깊이 있는 맛을 원했다니 이것이야말로 날강도 같은 심보겠지. 그저 여긴 세 가지 메뉴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정도로 의미를 둬야한다. 



▲ 세 가지 음식을 다 맛볼 수 있으니, 그것도 배불리 먹을 수 있으니 좋다.



세 가지 음식이 적당량만 나왔음에도 한 사람이 먹기엔 부담이 되는 양이었다. 나처럼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게 아니라면 두 가지 음식만 시켜서 그 맛을 음미하며 먹는 게 낫다. 하지만 어차피 이걸 먹은 이후론 제주로 돌아가 내내 달릴 예정이니, 양이 많다는 건 나에겐 다행이다. 천천히 바다를 보며 조금씩 조금씩 먹어야지. 볶음밥 한 잎 먹고, 스테이크 한 잎 씹고, 짬뽕 국물로 입가심하면서. 

바다를 맘껏 보며 이렇게 먹고 있으니 참 팔자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 올 때만해도 이런 여행을 꿈꿨었다. 그저 바다가 보이는 커피숍에 앉아 커피 마시며 글을 쓰다가, 써지지 않으면 책도 봤다가, 책도 안 들어오면 그저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봐도 행복하겠거니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그런 바람이 이 순간엔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이니, 더 이상 무얼 바라랴. 



▲ 땅콩아이스크림이 우도에서 유명하던데, 예상 가능한 맛이었다.



음식을 천천히 먹었음에도 30분 만에 다 먹었다. 누군가와 얘기를 하면서 먹으면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아무래도 혼자서 먹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음식을 먹는 속도가 빨라졌나 보다. 이곳은 특이하게 현금으로 계산하면 땅콩아이스크림을 서비스로 주기에, 계좌이체로 결제를 했다. 땅콩아이스크림은 그저 흔히 맛볼 수 있는 샤베트의 맛에 땅콩의 맛이 함께 곁들여진 맛이랄까. 어찌 되었든 17.000원에 네 가지 음식을 먹었으니 그것도 바다를 보며 배불리 먹었으니 그걸로 됐다. 

그런데 말이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데도 외로워지는 건 무얼까? 실컷 외로워지자는 마음으로 떠난 여행인데도 멋진 풍경을 볼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무작정 달릴 때 사무치게 외로움이 밀려오며 내 몸은, 나의 감정은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 외로워지고 싶었지만 막상 외로움이 밀려드니, 그 감정을 주체하질 못하겠다. 이래서 사람인 거겠지.                



▲ 내가 앉은 자리에선  제주의 넘실거리는 바다가 한 눈에 보인다.




외로움에 사무치는 이에게 주는 선물

     

그래도 때론 외로워질 필요도 있다는 걸 느낀다. 그래야만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와 관계 맺은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외로워져야만 좀 더 내가 처한 상황이 명확하게 보이고 내 자신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 

나란 사람은 참으로 누군가의 평판이나 기대에 한없이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좋은 평판을 받기 위해 늘 눈치를 봤었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정작 하고 싶던 일들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좋은 평판을 들으면 행복해했고, 나쁜 평판을 들으면 하루 종일 우울해했다. 하지만 최근에 『맹자』란 책을 다시 읽다 보니, 이런 나를 준엄하게 꾸짖는 글이 있더라. 아래에 인용한 글을 읽어보자.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나를 기리는 경우도 있고, 완전하려 노력했으나 그럼에도 나를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고 맹자가 말했다. 

孟子曰:“有不虞之譽, 有求全之毁.”      


(이하는 주희가 쓴 주석) 여씨가 “행동이 부족하여 기릴 거리는 없으나 우연히 기림을 받는 경우를 일컬어, ‘불우지예(不虞之譽)’라고 말한다. 헐뜯음을 면하려 노력했으나 도리어 헐뜯음을 당하는 경우를 일컬어 ‘구전지훼(求全之毁)’라고 말한다. 기림을 받거나 헐뜯음을 받는다는 말은 모두 다 제대로 된 평가라고 할 수는 없으니, 수신하는 자라면 이것(평판)으로 갑자기 기뻐하거나 슬퍼해선 안 되며, 남을 판단하는 자라면 이것(평판)으로 가벼이 (판단 받는 이를) 등용하거나 내쳐선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虞, 度也. 呂氏曰:“行不足以致譽而偶得譽, 是謂不虞之譽. 求免於毁而反致毁, 是謂求全之毁. 言毁譽之言, 未必皆實, 修己者不可以是遽爲憂喜. 觀人者不可以是輕爲進退.” 『離婁章句上』 21    


      

노력과 상관없이 칭찬을 받는 상황이나 애썼지만 비난을 받는 상황이나 결국은 도긴개긴이란 말이다. 대충 대충했음에도 누군가는 그런 나를 한껏 치켜세우며 “정말 멋있다”라고 말하기도 하며, 무진장 애썼지만 주위에서 비난의 소리가 들려오며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점은 ‘생각지도 못한 칭찬’에 대해선 오히려 자신의 공으로 치켜세우며 ‘나를 제대로 평가해주는구나’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대한 좋은 평가는 기쁘게 받아 넘긴다. 하지만 누군가의 헐뜯음은, 특히나 애썼는데도 그걸 철저히 무시하고 헐뜯는 경우엔 얼굴을 울그락불그락하고 솟아오르는 감정을 어쩔 줄 몰라 한다. 물론 이건 누군가의 얘기가 아니라 나의 얘기다. 이런 나이기에 늘 행동은 소시민적으로 했고, 감정은 소극적으로 표현했으니 말이다. 



▲ 타인의 한 마디에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할 때가 많다. 난 더욱이 그런 것에 쉽게 휩쓸린다.



하지만 맹자는 예리하게도 ‘뜻하지 않은 칭찬’이든 ‘애썼음에도 받은 헐뜯음’이든 결국엔 같기에, 휘둘려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그건 어차피 나와는 다른 누군가의 평판에 심히 휘둘린다는 뜻이고, 그 누군가가 나에게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그를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한껏 외로워지고 나니 여태껏 읽어왔지만 그다지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던 이 말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에게 해주는 말인 걸 알겠더라. 그리고 이 말이 나에게 해주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그가 애써 외친 것처럼 좀 더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판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사실 또한 알겠더라. 그래야만 내 행동에 대해 당당해질 수 있고, 내 생각에 대해 떳떳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야 맹자가 그렇게 외쳤던 호연지기浩然之氣 가득한 대장부로서 한 세상 호령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만큼 여행을 떠나온 이곳에서 이 순간을 맘껏 누리며 신나게 앞을 향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 이제 서서히 우도를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잘 있어.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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