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Jun 21. 2018

사찰시의 특징과 내소사란 시의 독특함에 빠져

임용고시생의 내소사&관음봉 여행기 5

어느 정도 내려오니 계곡이 보였다. 물이 그렇게 많진 않아도 발을 충분히 담그고 있을 만했고, 물이 어찌나 차가운지 발을 계속 담그고 있으면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함께 앉을 정도의 평평하고 큰 바위는 없어서 어떻게든 각자 앉았고 주전부리들을 세팅하기 시작했으며, 팩으로 사온 소주를 분배하기 시작했다.                



▲ 어서 마셔, 팩 소주는 처음이지~




내소산 계곡에서 시회가 열리다

     

그리고 더욱 재밌었던 점은 교수님이 한시를 전공한 사람답게 “여기에 왔으니, 내소사에 관련된 시는 한 편 봐야지”라고 했다는 점이다. 지식인들의 이런 식의 고상한 놀이가 때론 싫게도 느껴졌다. 현실의 문제는 더욱 꼬여만 가는데 거기엔 지식인들의 무관심과 이와 같은 지적 유희가 한몫을 하는 면도 분명히 있기에, 마치 책임회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면서 이런 식의 유희는 해볼 수도 있고, 아니 해볼 만한 것이라 생각하게 됐다. 지식인들이라고 누가 이런 식으로 시를 품위 있게 논단 말인가. 누군가는 일반인들이 술을 마시고 노는 것보다 훨씬 더 진탕하게 부어라마셔라 하며, 거기에 룸까지 빌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더럽게 놀기도 하니, 그것에 비하면 차라리 이런 식의 풍류가 천배는 낫다고 생각한다. 



▲ 계곡이 좋다. 시회가 좋다. 그냥 좋다.



교수님은 “그렇지 않아도 어제 미리 시를 뽑아 놓으려 했는데, 어제 수업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하질 못했어요. 그래서 아까 잠깐 내소사 관련시들을 살펴보니, 다른 시는 고만고만한데 딱 이 시가 좋겠더라고, 이 시는 충분히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눠볼 만한 시이니 이걸 보도록 합시다.”라고 말씀하시며, 단릉 이윤영李胤永의1714~1759)의 「내소사來蘓寺」라는 시를 ‘고전번역원DB’에서 찾아보도록 했다.                               



다시 임용 공부를 시작한 지 3개월 정도밖에 안 됐기 때문에 위의 시가 하나도 해석이 안 됐다. 그래서 교수님의 해석을 하나하나 들으면 머릿속에 새겨 넣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엔 머릿속에 새겨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2주가 흐르고 보니 해석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위의 해석은 최대한 기억들을 짜 맞추고, 단서들을 조합하여 만든 어설픈 해석이다. 다시 교수님과 위의 시를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그땐 좀 더 완벽한 해석을 써놓아야지. 어쨌든 완벽하진 않아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전달될 것이니, 이걸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자.    



▲ 내소사 좋다. 특히 절로 들어오는 길이 정말 좋다.



            

사찰시의 구라

     

교수님은 이 시는 내소사를 그린 다른 시들과는 매우 다르다고 하셨다. 우리야 한시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으니, 그게 보일 턱이 없다. 이럴 땐 한시 연구에 몰두하신 교수님의 어깨에 올라타 그 진면목을 감상하면 된다. 이래서 교학상장이 필요한 거다. 함께 보고 함께 얘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가 성장하게 되니 말이다. 

왜 여타 다른 시와 이 시가 차별화되는지 교수님은 간단명료하게 설명해주시더라.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무릎을 세게 그것도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친 나머지 무릎이 저릿할 정도였다. 그만큼 확 와 닿았고, 묘한 한시의 세계로 저절로 빠져들었다. 

지금까지 사찰에 대한 시를 스터디 시간에 여러 편 봤었다. 그러다 보니 사찰에 대한 시를 볼 때마다 공통점이 보이더라. 사찰을 속세와 격절시키기 위해 엄청난 뻥카를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깎아지른 언덕의 위태위태한 곳에, 구름이 가려져 거의 보이지 않는 곳에, 북두칠성을 손으로 잡을 만한 곳에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이다. 영화 『전우치』에 나오는 전우치의 사당은 누구도 닿을 수 없는 깎아지른 언덕 위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데, 마치 사찰시에서 사찰의 위치를 읽고 있노라면 저절로 전우치의 사당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 영화 [전우치]의 사당. 마치 사찰시를 읽다 보면 이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김지대金之岱의 「유가사에서 짓다題瑜伽寺」라는 시에선 ‘구름 사이로 난 끊어진 돌 비탈 예닐곱 리오, 하늘 끝까지 닿을 듯한 아득한 봉우리는 천만 겹이로구나.雲間絶磴六七里, 天末遙岑千萬峰.’라며 함련頷聯에서 사찰이 들어선 곳의 특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 구절을 거짓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구절로 읽고 있으면 마치 엄청나게 높은 산 속의 콕 처박혀 있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평소엔 구름이 가득 껴서 사찰로 올라가는 길조차 보일 듯 말듯하고, 그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천만 겹의 봉우리만이 아스라이 보인다고 표현했다. 와우~ 이런 곳에 있는 유가사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찾아가고 싶다. 상상만으로도 엄청난 스케일이 느껴지는데 진짜 보면 한 눈에 반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소사를 직접 노래한 시중 가장 유명한 시를 한 번 보도록 하자. 정지상이 지은 「변산 소래사(내소사의 예전 이름)에서 짓다題邊山蘇來寺」라는 시에선 ‘옛길 적막하여 소나무뿌리 얽혀 있고 하늘은 가까워 북두칠성을 멋대로 만질 수 있을 듯하다古徑寂寞縈松根, 天近斗牛聊可捫.’라고 수련首聯에서 쓰고 있다. 1구야 내소사로 들어가는 길의 운치를 제대로 읊은 것이라 이론의 여지가 없겠지만, 2구에선 어찌나 씨게 구라를 쳤던지 놀랄 수밖에 없다. 북두칠성이 만져질 만한 높이라면 적어도 해발 800미터의 산이라야 가능하지 않을까. 지리산 노고단에서 우주가 나에게 임박해 들어오는 경이로움을 경험하긴 했는데, 노고단은 해발 1.500M에 있는 곳이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소사는 전혀 높은 곳에 있질 않아 시에서처럼 북두칠성은커녕 구름조차 만질 수가 없다. 이런 경우 『타짜』라는 영화에선 “어이~ 고광렬이~ 너는 첫 판부터 장난질이냐!”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걸 정지상에게 해주고 싶을 정도다.     



▲ 특히 정지상의 [소래사]라는 시를 읽으니, 이거 이거 고광렬이에게 하는 말을 내가 하고 싶어진다.



            

이윤영의 내소사란 시가 특별한 이유    

 

교수님은 사찰시에선 이런 과장법이 허용된다고 말씀해주신다. 그래서 그런 구라가 씨게 칠수록 사찰의 탈속적인 이미지가 강화된다는 것이다. 그건 달리 말하면 굳이 그 절을 찾아가지 않더라도 누구나 사찰시를 지을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그저 세상과 완벽히 떨어진 사찰의 풍경을 묘사하면 되니 말이다. 그래서 사찰시엔 ‘주지의 인품, 청정공간으로써의 사찰 묘사, 그에 대비되는 속세인으로서의 욕망덩어리인 자신 묘사’가 꼭 들어간다고 알려주셨다. 

이런 사찰시의 기본적인 특성을 알고 이 시를 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어디에도 사찰이나 주지스님에 대한 묘사가 없을 뿐 아니라, 3구의 직소폭포에 대한 묘사는 정말 폭포를 본 사람만이 쓸 수 있을 정도로 잘 묘사해놨기 때문이다. 사찰시이지만 사찰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우리가 등산하며 봤던 모습들을 아주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5구에선 서서히 오르며 봤던 서해의 장엄한 모습이, 6구의 청제靑齊란 산동의 다른 표현으로 중국의 주인이 明에서 淸으로 바뀐 것에 대해 지식인으로서 느꼈던 무상함, 절망감이 짙게 배어 있다. 그리고 8구에선 아예 어젯밤 변산을 돌아보며 느꼈던 감상을 ‘애달프다’라는 감상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이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내소사 부근의 풍경이 제대로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러니 이 시야말로 상상 속의 사찰을 묘사한 여타 시와는 달리 진짜 이곳에 와서 이곳을 온전히 느낀 자만이 쓸 수 있는 시이고, 그렇기 때문에 단릉과 우리는 400년의 세월이 떨어져 있음에도 바로 옆에서 얘기를 나누듯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시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교수님은 계곡에서 시회를 열자고 제안하셨나 보다. 바로 이게 한문공부를 하는 즐거움이고, 옛 사람을 친구 삼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 오르는 길에 본 서해의 풍경. 아마 이윤영도 이런 광경을 봤나 보다.



         

내려가기 위해 산에 오른다 

    

1시간 30분 정도 시회를 갖고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거기서 조금만 더 내려가니 바로 직소폭포가 보이더라. 여기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강천산의 폭포 정도를 생각했다. 그런데 여긴 아예 스케일이 다르더라. 정말 깎아지른 언덕에 가운데 부분이 약간 파여 그쪽으로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단릉의 시에선 “비취색 언덕이 약간 무너져 내려 용처럼 폭포가 쏟아지고(翠嶽將頹龍瀑瀉)”라고 표현했는데, 직소폭포를 직접 보니 그 시가 더 와 닿더라. 

거기서 더 내려가니 둑을 막아놔서 산 한 가운데 호수처럼 물이 고여 있는 곳이 있다. 직소천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산 중턱에서 호수를 만나니 감회가 남달랐다. 



▲ 직소폭포를 보니 단릉의 시가 더 와 닿는다. 그리고 산 중턱에 물이 고여 있으니 이색적인 느낌이다.



내려오는 길은 무척 수월했고 어느덧 시간은 4시가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여유롭게 내려가 내변산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는데 그때 시간은 4시 33분이었다. 부안으로 나가는 시내버스가 있는데 바로 3분 전에 떠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버스는 6시 25분에 있으니,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만 했다. 거금이 들어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택시를 타고 부안으로 28.000원이란 거금을 내고 나왔다.     



▲  버스 시간을 알아야 거금을 쓰는 불상사가 안 생긴다.


           

한문에 대한 열정을 한가득 품게 한 뒷풀이     


마지막 직행버스는 7시 38분에 있다고 한다. 아직 2시간 정도의 여유가 충분히 있기에 여기서 뒷풀이를 하기로 했다. 

시장상인에게 중국집 중 맛있는 집을 물어보니, 위치를 알려줬다. 그래서 다음 지도를 켜고 그곳을 찾아갔다. 교수님은 공통 메뉴로 팔보채와 잡채를 시켜주셨고 각자 하나씩 자신이 먹을 것을 시켜준 다음에 고량주와 소주까지 원 없이 시켜주셨다. 등산 후에 함께 하는 회식은 뭘 먹어도, 심지어 그냥 맥주 한 잔을 한다 해도 충분한데, 우린 최고의 음식들로 화려한 뒷풀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나눈 주제들도 깊게 생각하고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 간단히 나열해 보자면, ‘실학 VS 성리학’이란 이분법으로 조선시대 학문을 논하는 풍토, ‘예전 방식으로 공부하는 풍토 VS 여러 자료를 참고하며 공부하는 풍토’, 그리고 주희와 성리학을 배격하는 풍토에 대한 반기 등이었다. 맘 같아선 이때 나눈 이야기들도 하나하나 풀어보며 어떤 점들이 문제가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문공부를 하고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지 기술하고 싶지만, 이미 5편이나 쓴 후기에 덧붙이는 것은 너무 과하기에 언젠가로 미뤄두려 한다. 

재미란, 그저 화려하고 색다르며 값비싼 것에만 있지 않다. 이처럼 소소하고 치열하며 일상적인 평범한 하루 속에도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이때처럼 그저 평범한 일상 속에 의미를 찾고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흥분 속에 색다름을 찾으며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산에 올라 시를 배웠고, 술을 마시며 인생을 알아간다. 



▲ 해질녘의 벌판. 오늘 하루 잘 익었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내소사 뒷산인 관음봉에 오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