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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Aug 15. 2018

긴장의 미학

2013년 6월 15일(토)

서바이벌 게임장에서 보는 천산산맥은 과히 일품이었다. 만년설이 그대로 보여 한 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와는 대조되기에 어떤 상상의 세계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광경을 배경삼아 서바이벌 게임을 하니 느낌이 색다르다.               



▲ 저 멀리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보인다. 이국적인 모습에 기분이 절로 좋다.




서바이벌 게임

     

러시아인이 게임 설명을 해줬고 모든 카작인들은 알아들었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카작어와 러시아어를 동시에 자유롭게 구사할 줄 아는 민족이다. 우리나라에선 bilingual(두 언어를 구사하는)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대단한 사람으로 취급하는데, 여긴 그게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더욱이 카작어의 어순은 한국어와 같으며 러시어의 어순은 영어와 같으니, 완전히 다른 언어를 자유롭게 쓰고 있는 셈이다. 그 광경을 직접 보고 있으니, 무척이나 신기했다. 



▲ 룰을 설명해주고 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이해가 되던 순간.



서바이벌 게임은 총 두 번 진행되었다. 페인트 총알이 맞은 사람은 손을 들고 나와야 하며 공격팀과 방어팀으로 나뉘어져 게임이 진행된다. 얼핏 보기엔 방어팀이 고지를 선점해 있기 때문에 유리한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방어팀이 두 번이나 졌다. 아마 방어팀은 참호에서 무작정 총만 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에 반해 공격팀은 지형지물을 활용해 가며 목전까지 날렵하게 이동하여 총을 쏘며 제압했다. 이래서 수성이 창업보다도 어렵다(創業易守成難)는 말이 생긴 걸지도 모르겠다.                



▲ 덥긴 해도 습도가 높지 않으니 할 만했다. 아이들도 재밌게 잘 즐기더라.




캅차가이 호수

     

서바이벌 게임을 마치고 덜컹거리는 어설픈 포장도로를 1시간 가까이 달려 캅차가이에 도착했다. 작은 호수 정도를 생각하고 그곳에 갔지만 우리 앞에 보인 호수는 바다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카자흐스탄의 모든 것은 우리의 상식을 가볍게 비웃는 것들뿐이다. 모든 건 규모에서부터 남달랐기 때문이다. 



▲ 이게 호수야 바다야?



호수의 전체 면적은 1,847㎢, 최대 길이는 22Km, 최대 깊이는 무려 45m나 되어 카자흐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다. 소련시절에 댐을 건설하기 위해 사람들을 동원하여 만든 담수호라고 한다. 카자흐스탄은 내륙지방에 위치해 있어서 바다를 직접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규모의 호수가 있어서 굳이 바다를 보러 다른 나라로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이미 많은 사람들이 피서를 왔다.




캅차가이의 단오행사

     

이국에서 진행되는 단오 행사라 하여 기대하며 찾아갔다. 전주국제영화제 여행기에도 썼듯이, 단오는 한민족 고유의 명절로 월과 일이 겹치는 길일吉日임과 동시에 양기가 가장 센 날이기에 부채를 선물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부채를 선물하지는 않겠지만,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창포물이 아닌 호수에 머리 감으며 널뛰기를 하는 등의 차분히 진행되는 행사를 상상했다. 하지만 그건 ‘상상 속의 그녀’처럼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이곳은 조용히 행사가 진행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캅차가이는 알마티에서 70Km 밖에 떨어지지 않아 여름 피서지로 이용되는 곳이다. 이 때문에 우리가 갔을 때도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모래사장 한 가운데선 사회자가 목청 높여 외치고 있었고 그 외에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즐기고 있었다. 분위기는 여느 축제장처럼 시끌벅적했던 것이다. 



▲ 강남스타일이 이 당시에 유행이라 카자흐스탄 어딜 가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우린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에, 그곳에서 만들어준 정체불명의 요리를 먹었다. 카자흐스탄에 와서 처음으로 먹어보는 현지 음식이었는데, 카작 친구들 말로는 카작 전통음식은 아니라고 한다. 과연 이 음식의 이름은 무얼까?



▲ 처음으로 먹어본 카작의 음식. 과연 이름이 뭘까? 좀 느끼한 요리였다.



5시에 단오행사가 있다고 하기에 그때까지 캅차가이 호수에서 놀았다. 외국인들과 아무렇지 않게 물에 빠져 노는 풍경을 담고 있으니, 서서히 ‘내가 외국에 나와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멀리선 러시아어인지, 카작어인지 알 수 없는 언어가 사방에서 흘러나오니 더욱 실감났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교육원 선생님이 돌아가자고 하셨다. 5시에 하는 행사가 한국의 전통 단오와는 다른 행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단오절의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국에서 ‘단오’라는 이름만이라도 지키려 노력하는 고려인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어 기분은 좋았다. 한국에선 단오가 거의 유명무실해졌으니 말이다.                



▲ 우리들의 신나던 한 때.




미비한 현지 사정과 의견 조율

     

교육원에 돌아와서는 이견호 원장님과 석연치 않은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식사와 일정에 대해 의견을 조율할 부분이 있었다. 원장님은 돈은 준비가 되어 있고 카작 친구(무함메드, 사켄, 카즈벡, 아쌤)들이 알아서 해줄 것이니 걱정 말라는 입장이었고 나는 먹는 것과 이동하는 것 등을 교육원에서 체크하고 챙겨줘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알마티 현지 사정을 아무 것도 모르는데, 돈만 주며 알아서 하라는 게 말이나 되는지 화가 났던 것이다. 한국에 카작 친구들이 왔을 때 먹고 자고 이동하는 모든 것에 신경 쓰지 않도록 했던 것과는, 상황이 너무나 달라 당황했다. 

이 문제에 대해 준규쌤과 통화했는데, 답변을 듣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음을 느꼈다. 최악의 경우, 우리가 돈을 지불할 수도 있다는 얘길 들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돈이 없어서 일정에 차질이 생기진 않을 거라 생각하니, 한결 맘이 편해졌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건 유기적으로 대처하고, 지금은 일단 원장님 말씀처럼 카작 친구들을 믿고 따라가 볼 것이다.                



▲ 저녁으론 근처에서 케밥을 사와 먹었다.




극도의 과 여유의 

      

오늘은 코피가 두 번이나 났다. 시차 적응 문제, 그리고 역할에 대한 부담 때문에 이래저래 힘이 드나 보다. 이젠 좀 더 여유를 부려야지. 

저녁엔 여학생들이 말도 없이 아쌤과 나가서 식사를 하고 왔다. 그리고 11시 30분이 되어서야 들어왔다. 화가 났지만 참고 다음부턴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며 말을 끝냈다. 

이견호 원장님과 대화하던 중 ‘아이들이 집에 잘 들어갔는지 연락하라고 전해주세요’라고 하자, 원장님은 “현지에 왔으니, 현지 사정에 맞게 해도 되요. 여긴 치안문제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전화가 오지 않으면 오히려 잘 도착했다는 뜻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대답해주셨다. 분명히 맞는 얘기다. 하지만 무언가 책임을 지는 자리에 있으면 사람은 더욱 더 ‘안전’, ‘건강’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그건 당연히 새로운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지며, 정해진 일정 외의 새로운 상황에 대해 극도로 꺼려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 마음이야말로 어리석은 것인지도 모른다. 해외에 와서만 느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안전ㆍ건강’이란 이름하에 차단해버리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긴(바짝 신경 씀) & 장(풀어줌)의 시의적절한 사용이다. 긴할 땐 긴하되, 그렇지 않을 땐 장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긴만 해선 나에게도 물론이거니와 학생들과의 관계에도 독이 될 뿐이다. 긴은 원래의 나란 인간의 트레이드 마크였으니, 이젠 장을 어떻게 적절하게 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장을 하려면 부담이나 걱정에서 놓여나야 한다. 그게 얼마만큼 가능한지, 이번 여행을 통해 지켜볼 일이다. 



▲ 저녁엔 잠시 장을 봤는데, 한국 식품들도 보이더라. 그 중 도시락이 한 눈에 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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