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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Aug 26. 2018

카자흐스탄 결혼식에 얼떨결에 참석하다

2013년 6월 22일(토)

6시에 굴심쌤과 저녁을 먹기로 했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 방에서 나왔다. 근처엔 저녁을 먹을 만한 곳이 많았다. 하지만 문제는 어느 음식점이든 영수증을 발급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대통령학교에서 저녁비용을 지원해주는데, 그러기 위해선 영수증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물어봤던 것이다(결국 이후부턴 상황을 얘기해서 영수증 없이도 저녁 식사비를 받도록 했지만^^).                



▲ 결혼식 장 옆에는 음식점과 영화관이 있었다. 그럼에도 음식점을 찾아서 다녔다.




영수증 찾아 결혼식장으로^^

     

그러다가 바로 근처에 있는 결혼식장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굴심쌤은 “저 결혼식장에 한 번 가볼래요? 완전 재밌어요.”라고 제안했고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바로 들어가 양해를 구하게 된 것이다. 이럴 때 보면 굴심쌤은 참 활동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인데, 한국에선 그러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다. 

러시아인들은 결혼식 때 외지인들이 들어오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고 한다. 오죽하면 모스크바에 유색인종이 돌아다니면, 테러를 한다고 하여 카자흐스탄 사람들도 모스크바에 갈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인들의 결혼식은 그렇지 않나 보다. 들어가자마자 신랑 측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에게 굴심쌤이 다가가 샬라샬라 말을 한다. 아마도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이런 문화를 보여주고 싶어서 왔다는 말을 하는 듯 했다. 잠시 어머니의 눈빛이 나에게 머물더니 별로 힘든 일이 아니라는 듯, 승낙을 하시더라. 이미 시간은 7시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아직도 식장은 준비 중이었다. 

결혼식에 빈손으로 갈 수는 없다며 굴심쌤은 꽃집에서 꽃을 사자고 하셔서 한참이나 꽃집을 찾아다녔다. 꽃을 사고 다시 식장에 들어가니, 드디어 시작하려 하고 있더라.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로써 진정한 카자흐스탄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난 ‘한국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 저녁을 먹으러 온 곳이니, ‘한 시간만 결혼식을 보면 맛있는 음식을 맘껏 먹을 수 있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 자체가 ‘한국적인 생각’이었고 한국적인 결혼식의 폐해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말이었다.               



▲ 사람들도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카자흐스탄 결혼식이 던져준 충격

     

아스타나의 굴심쌤 언니네 집에 갔을 때, 조카의 결혼식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상으로 보면 우리네 결혼식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았다.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서 하는 서양식 결혼의 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때 들은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저녁 먹을 시간에 결혼식이 시작되면 새벽 1~2시까지 계속 되요. 그래서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고 맘껏 노는 거죠.” 이 말이 도대체 어떤 말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지만, 적어도 우리네의 ‘밥을 먹기 위해 결혼식에 간다’는 말과는 매우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어서 충격적이었다. 그 말을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같이 놀기 위해 결혼식에 간다’는 말이 맞을 듯했기 때문이다.                



▲ 예식 준비가 한창이다. 내가 합석하게 된 자리의 멤버들.   




과연 새벽까지 뭘 하며 결혼식을 할까?

     

우선 예식장을 보면, 테이블이 예식장에 들어와 있다. 먹을 것을 맘껏 먹으며 결혼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부와 신랑은 앞 쪽에 마련된 단상에 올라 먹을 것을 먹으며 결혼식을 즐긴다. 단상은 전체 테이블을 내려다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결혼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많은 분들이 왔다’는 감사한 마음과 함께, ‘이 자리에 함께 해준 당신들을 위해 이런 다양한 음식을 마련했습니다’라는 자부심어린 마음도 함께 느껴진다. 단상과 테이블 사이엔 춤을 출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확보되어 있다. 이곳에 사람들이 나와 축사를 건네기도 하고 댄스를 추기도 한다. 



▲ 신랑 신부의 단상은 높은 곳에 있다. 이곳에 앉아 결혼식장을 보고 무대 앞에선 사람들이 춤을 춘다.



예식이 시작되기 전, 모든 하객은 자리에 일어나 신랑신부의 입장을 기다린다. 그러면 바람잡이(?)가 등장하여 신랑신부가 오고 있다고 분위기를 한껏 띄운다. 그러면 머지않아 신랑신부가 팔짱을 끼고 등장한다. 신랑이 먼저 등장하고 신부가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나오는 것과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그러고 나선 사회자가 신부의 면사보를 벗기는 의식을 거행한다. 모든 사람에게 신부를 보여주는 의식인 것이다. 그 후 신랑신부가 부모에게 인사를 하고 바로 단상에 올라가면 모든 하객은 정해진 테이블에 앉는다. 



▲ 신랑, 신부의 입장. 한국은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오지만, 여긴 같이 나온다.



그 후엔 저녁을 먹는데, 사회자는 하객 명단을 가지고 한 가족씩 호명하면 그 사람들이 앞에 나와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여기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단어는 단연 ‘감사합니다!Рақмет!(라크몟!)’이었다. 한 가족의 축사가 끝나면, 모든 사람이 함께 춤을 추는 시간이 이어지거나 예식장에서 준비한 축하공연으로 이어진다. 



▲ 신부의 베일이 면사보가 벗겨지는 순간이 결혼식의 하일라이트다.



여긴 모든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고 먹고 마시며 시간을 공유하는 데에 어색함이 없어 보인다. 어려서부터 이와 같은 문화를 즐기며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즐기다 보면, 어느덧 새벽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엔 신랑이 마련한 선물을 모든 사람이 나눠 가지고 예식은 끝이 난다.      



▲ 예식이 끝나고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모두 환대해주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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