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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Aug 29. 2018

문명은 기왓조각과 똥부스러기에 있다

2013년 6월 23일(일)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학교의 첫 일정이 진행되는 날이다. 오늘은 테킬리tekeli라는 곳에 가기로 되어 있다. 원랜 1박 2일의 야영으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일정이 바뀌어 어제는 홈스테이에서 적응할 겸 푹 쉬고, 오늘 산을 오르게 된 것이다. 

학교에 도착하니, 아이들은 이야기꽃이 만발했더라. 누군 인터넷을 맘껏 쓸 수 있게 해줬다면서 오랜만에 컴퓨터를 하는 기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누군 말이 하나도 안 통해 죽는 줄 알았는데 사촌 누나가 와서 영어로라도 대화가 되어 다행이라고 이야기하고, 누군 저녁 식사를 성대히 차려줘서 엄청 호강했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나오니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이향이는 어제 발렌티나 집에서 개에 물렸다고 했다. 그래서 오자마자 바로 굴심쌤과 함께 병원에 갔다가 굴심쌤만 다시 돌아왔다. 병원에서 치료를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발렌티나 어머니가 이향이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향이는 오늘 등산 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                



▲ 올라길은 한적한 시골 같은 느낌이다. 더욱이 똥무더기를 맘껏 볼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순조로운 출발 

    

차를 타고 40분정도를 가니 등산로가 나왔다. 안내를 해주기 위해 온 교수님과 등산로를 잘 알고 있는 두 청년이 같이 동행했다. 밑에서 보기에는 산이라기보다 언덕에 가까웠다. 그래서 한두 시간 정도면 끝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에 화답하듯, 교수님도 “그냥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3시간 정도면 됩니다. 하지만 폭포까지 가면 6시간 정도 걸려요.”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자 학생들은 일제히 “그냥 올라갔다가 내려와요”라고 대답했다. 별다른 대답이 없었기 때문에 3시간만 등산하면 되는 줄 알고 올라갔다.                



▲ 우리가 가는 곳에 쉽게 볼 수 있던 소와 말.




초입길의 똥 더미를 보며 연암을 생각하다

     

올라가는 초입길엔 여기 저기 소똥이 즐비하다. 여긴 짐승들을 방목하며 키우다 보니, 이처럼 도로 한복판에 짐승 오물이 널려 있는 것이고 사람들은 그걸 아무렇지 않게 본다. 심지어 오토바이가 오는데 앞에 똥이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피하지 않고 당연한 듯 밟고 가는 것이다. 왠지 이런 광경을 보고 있으니, 연암 박지원의 ‘똥 예찬론’이 떠올랐다. 

그는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을 통해 똥지게를 날라 생계를 꾸리는 천대 받는 인물 엄행수의 근면성실을 이야기하며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며 허례허식에 찌든 양반을 비판했다.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던 그가 청나라에 간 것이니, 그가 보는 것은 관료들의 시선과는 많은 부분이 달랐던 것이다. 

당시는 바야흐로 한족漢族의 계통을 잇던 명나라가 오랑캐에게 나라를 뺏겨 중국엔 청나라가 들어선 때였다. 임난壬辰倭亂 때 명나라가 보낸 이여송 장군 덕에 일본을 물리쳤다고 생각하는 조선 지배층은 그런 명나라를 물리치고 중국을 차지한 청나라를 ‘정통성이 없는 나라’로 생각했다. 그래서 말만 번지르르한 ‘북벌론北伐論’을 외치게 된 것이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양반들이 청나라에 가면 변발辮髮(머리 뒷부분만 남겨놓고 모두 깎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제도와 문물이 천박하다고 비난하기 바빴던 것이다. 그런 때에 연암이 그런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청나라를 판단했다. 



▲ 명분뿐인 북벌론으로 조선은 한바탕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다.



그의 평가는 “청문명의 핵심은 기왓조각과 똥부스러기에 있다.”는 것이다. 문명의 핵심을 거창한 것에서 찾는 게 일반론인데, 연암은 일상생활 속에서 찾은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들어보자.           



나는 원래 삼류 인사다. 깨진 기와 조각이 장관이며 냄새나는 똥거름이 장관이라고 말하겠다. 무릇 깨진 기와는 천하가 버리는 물건이다. 그러나 동리 집을 둘러싼 담장 어깨노리 위로는 깨진 기왓장을 두 장씩 마주 붙여 놓아 물결무늬가 되고 네 쪽을 붙이면 동그라미 무늬가 되고 네 쪽을 밖으로 등을 대어 모아 붙이면 옛날 엽전의 구멍 모양을 이룬다.

余下士也. 曰壯觀在瓦礫, 曰壯觀在糞壤. 夫斷瓦, 天下之棄物也. 然而民舍繚垣肩以上, 更以斷瓦, 兩兩相配, 爲波濤之紋, 四合而成連環之形, 四背而成古魯錢     


똥오줌이란 세상에서도 가장 더러운 물건이다. 그러나 이것이 거름으로 쓰일 때는 금싸라기 같이 아끼게 된다. 길에는 버린 재가 없고 말똥을 줍는 자는 오쟁이를 둘러메고 말꼬리를 따라다니고 있다. 이렇게 모은 똥은 거름간에다 쌓아두는데 혹은 네모반듯하게 혹은 팔모가 나게 혹은 육모가 나게, 혹은 누각모양으로 만들고 보니 한 번 쌓아올린 똥거름의 맵시를 보아 천하의 문물제도는 벌써 여기 버젓이 서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열하일기』 「일신수필」

糞溷至穢之物也. 爲其糞田也, 則惜之如金. 道無遺灰, 拾馬矢者. 奉畚而尾隨, 積庤方正, 或八角或六楞, 或爲樓臺之形, 觀乎糞壤, 而天下之制度斯立矣. 『熱河日記』 「馹汛隨筆」



▲ [예덕선생전]을 이야기로 꾸민 책. 내 친구 똥퍼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흔히 전복적顚覆的인 사유를 많이 하라고 한다. 그건 당연한 것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모두가 동의하는 관점’이 무엇인지를 꼼꼼히 알고 있어야 한다. 연암에게 그런 의식은 ‘중화주의中華主義’였다. 한족 중심주의를 벗어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다는 거였다. 그런 관념에서 벗어나 똥을 대하는 청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문명의 핵심을 간파한 것이다. 똥의 체계적인 관리, 그러면서도 순환의 묘를 살린 것에서 문명의 핵심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연암은 큰 건물, 완비된 도로 인프라, 정돈된 군사시설을 보며 선진문물의 핵심을 느낀 것이 아니라, 한갓 더러운 것으로 치부되는 것들을 어떻게 제대로 관리하고 운용하는지를 보면서 핵심을 파악했다. 연암과 같이 완벽한 전복적인 사유가 불가능하다해도, 그와 같은 사유를 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똥 무더기를 보면서 생각했다. 



▲  우린 연암이 보았던 문명의 한복판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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