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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Sep 03. 2018

왜 하는지 모르는 일을 묵묵히 하는 아이들

2013년 6월 23일(일)

날은 뜨거운 편인데, 습도가 높지 않아 땀은 나지 않더라. 조금 오르니, 탈디쿠르간의 전경이 보인다. 그리고 저 멀리 만년설도 있다.               



▲  자연 속으로 한 걸음 더 깊숙하게.




중턱의 제방과 정상에서의 전설     


 그 근처에 제방이 눈에 띄었다. ‘왜 산 중턱에 이런 제방을 설치했을까?’ 의아스러웠는데, 예전에 산에 있는 호수가 범람하여 이 일대가 물에 잠긴 적이 있다는 얘길 해주시더라. 그래서 그 때 이런 제방을 만든 거란다.



▲ 산 중턱에 설치된 제방.



정상에 오르니 알마라산 부럽지 않은 광경이 펼쳐지더라. 여긴 자연이 만들어놓은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좋다. 그루터기에 앉아 교수님이 전해주는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흔히 알고 있는 ‘콩쥐팥쥐류의 설화담’이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딸에겐 정해진 신랑감이 있었다. 자라며 이웃에 사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됐지만 딸의 아버지는 그런 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결혼식을 강행했고 딸은 결국 사랑하는 남자와 떠나고 만 것이다. 그들이 말을 타고 도착한 곳이 바로 우리가 앉아 있는 이 곳이며, 그들은 여기서 영원한 사랑을 속삭이며 함께 뛰어내렸다고 한다. 

이런 설화를 광포설화廣布說話라고 한다. 큰 이야기 줄기는 같아 세계 여기저기에 퍼져 있는 이야기다. 왜 이렇게 퍼질 수 있냐면, 인간의 욕망은 똑같으며 어느 곳이나 계급, 억압 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을 오르며 그런 광포설화를 듣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래서 세상은 참 재밌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지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자연환경도 다르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비슷한 점이 많으니 말이다. 

이야기를 듣고 정상을 돌아보니, 기가 막히게 멋졌다. 깎아지른 절벽과 이상한 색깔의 바위들과 밑에서 흐르는 물소리와 창공을 가르는 새의 모습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으니 말이다. 얼핏 ‘이런 곳이라면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곳이긴 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이곳에서 교수님으로부터 광포설화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런 옛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참 신기하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하나요?     


거기서 점심을 먹고 내려가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교수님은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아무도 어떤 식으로 일정이 진행된다고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굴심쌤에게 어떻게 일정이 진행 되냐고 물어봐 달라고 했지만, 교수님은 별 말씀 없이 계속 걷고만 계셨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엄청 답답했다. 학생들도 어떻게 되는 거냐고 자꾸 물었지만, 나 또한 알 수 없으니 대답해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디까지 가는지도 모르고 우린 뒤를 따라서 계속 걸어야만 했다. 

주원이는 등산하기 전부터 새끼발톱이 파고들어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금방 끝날 줄 알고 정상까지 잘 참고 온 것이다. 하지만 계속 걸어야 하니, 더 아프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절뚝거리며 오는 주원이를 후미에서 내가 데리고 갔다. 조금 더 가니, 계곡이 나오더라. 거기서 사람들은 우리가 오는 것을 보고 출발했고, 나와 주원이는 잠시 앉아 있었다. 주원이가 발톱 깎는 것을 도와주고 힘을 내서 다시 걸어가니, 그늘진 곳에서 밥을 먹고 있더라.                



▲  가고 또 가고. 어디까지 간다고 알려주면 좋으련만 그런 건 없다.




준비의 미흡함     


야외활동을 나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일정이 진행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하지만 디나아 선생님이나 아이노르 선생님이나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교수님의 처분만 바라는 눈치였다. 

그리고 점심과 물도 필요했는데 무엇 하나 준비되지 않았다. 학생들 중엔 단재친구들 것까지 싸온 학생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도 있었다. 굴심쌤과 나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식사는 학교에서 챙겨준다고 했으니, 별 생각 없이 그냥 온 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학생들이 싸온 음식이 나눠서 먹어야 했다.                



▲  계곡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내려갔다. 한국엔 거의 모든 등산로가 개발되어 있지만 여긴 자연 그대로여서 더욱 좋다.




단재친구들의 저력을 보다     


카작 친구 중 한 학생은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자신들은 이 캠프를 위해 많은 돈(십만 텡게)을 냈으니 그런 돈을 제대로 쓰며 좋은 곳에 가서 즐겼으면 했는데, 고작 이런 곳에 왔다는 거였다. 난 이 말을 듣고 좀 의아했다. ‘돈을 많이 냈으니, 돈을 맘껏 쓰며 즐길 수 있는 장소에 가자는 소린가?’라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여기에 온 것은 내 입장에선 좋았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기 때문이다. 단지 아쉬웠다고 한다면, 일정에 대해 아무 말도 없다는 것과 준비가 허술했다는 정도였다. 

그에 반해, 단재친구들은 불평하지 않고 잘 따라왔다. 어디까지 가야하는 줄 모르기 때문에 짜증이 날만 한데도, 누구 하나 짜증 내지 않고 열심히 걷고 열심히 얘기하며 갔던 것이다. 난 이 모습에서 단재친구들의 가능성을 봤다. 

납득되지 않는 상황에 화를 내거나, 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얘기가 됐다.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도 아닌, ‘이걸 하면 뭐가 좋다’는 식의 말 밖에 할 것이 없다. 어려서부터 귀에 인이 박히게 들었던 ‘그걸(부모가 생각할 때, 학교 공부와 상관없는 어떤 행동) 하면 쌀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라는 부모의 꾸지람과 최초에 소비주체로 사회와의 관계를 시작했던 아이들의 과거가 모든 경험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단재 친구들도 이와 같은 현실을 그대로 안고 있다. 그래서 ‘왜 하는지 모르는 것’, 이 말을 좀 더 쉽게 풀자면, ‘어떠한 이득이 되는지 모르는 것’을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스트레스라도 풀 수 있는 게임을 하거나, 이득이 될 거라는 기대를 품게 하는 문제집을 푸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등산하던 그 순간에 단재친구들이 그러한 이해타산을 왜 하지 않았겠는가. 분명히 그런 생각으로 머릿속은 복잡했으며 짜증이 솟구쳐 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열심히 활동에 참여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단재친구들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이런 생각 때문에 하산할 때 기분이 좋았다. 



 ▲ 다 내려오니 어느덧 5시가 되었다. 아이들은 지나가는 말을 보자마자 반갑고 신기한지 다가가 어루만지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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