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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Aug 18. 2018

화려함보다 수수하게, 현란함보다 밋밋하게

2013년 6월 18일(화)

아침 일찍 일어났다. 어제 쓰지 못한 기록도 남기고 여유롭게 준비하기 위해서다.                




기록은 특별한 경험이며 가능성을 향한 걸음이다

     

무언가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고 가능성을 향한 성실한 발걸음이다. 기록의 중요함은 다른 데에 있지 않다. 머릿속의 기억은 수많은 상황 중 무의식중에 선택된 것이다. 그걸 다시 기록으로 남기려면 또 다시 선별해야만 한다. 두 번이나(이보다 더 많을 수도 있음) 골라진 기억의 조각이기에 완벽하게 현실을 그려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는 기억의 불명확성이나 기록의 부정확성을 질타하며 말하지도 기록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즉, 진리가 아닐 바에야 침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에, 더욱 말해야 하고 더욱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객관성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자신은 객관적인 이야기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말을 뒤집어 볼 필요가 있다. 그건 단지 주류적인 관점에 관한 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왕은 하늘과 같다’라는 논리는 조선시대만 해도 하나의 주류적인 관점이었다. 그에 반론을 제기하며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王侯將相 寧有種乎)’며 항거하던 정여립이나 녹두장군 정봉준은 사회를 흐린다는 이유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과연 ‘왕은 하늘과 같다’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게 과연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인정되는가? 이처럼 지금 우리 사회에 당연한 듯 흘러 다니는 말, 뉴스에 전문가의 말이라고 나오는 대부분의 말(지금 한 시간 더 공부하면 남편(아내)의 얼굴이 바뀐다)들은 ‘왕은 하늘과 같다’와 같은 말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주관적인 우린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내야 한다. 그런 이야기들이 쌓이고 쌓이면 당연시 되는 것들을 의심해보게 되며,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록을 남기는 건 특별한 경험이며 가능성을 향한 걸음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 기록을 할 때 우린 자신만이 가진 소리의 매력에 빠져든다.   




산이란 자고로 직접 올라야 제 맛? 

    

오늘은 원장님도 우리와 함께 동행 한다. 일정은 알마라산에 있는 호수에 가서 산책을 하고 알마라산을 등산하는 것이다. 알마라산이 어떤 곳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일정을 들었을 땐, 모악산 같이 나지막한 산을 떠올렸다. 그 정도면 오늘 하루 신나게 등산을 할 수 있으며 아이들은 조금 힘들어할 것이라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정말 몰랐다. 산에 차를 타고 올라가는데도 힘들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제 침불락에서 여름의 눈을 경험한 것처럼 계절을 초월하는 경험을 하게 될 거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전혀 상상도 못해본 경험을 많이 해본 사람은 경험의 스케일로 인해 전혀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도. 



▲ 멀리서 이내가 피어오르더니, 더 가다 보니, 설산이 눈앞에 똭 나타났다.



알마라산으로 가는 길은 높고도 험했다. 찻길이 잘 되어 있어 올라가기만 하면 되지만, 경사가 심하고 굴곡진 구간이 많아 멀미가 절로 났다. 그런데 차는 계속 산길을 따라 위로 오르고 또 올랐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뇌로 들어가는 산소의 양이 부족하여 어지럼증이 생긴다던데, 진짜로 그걸 느꼈다. 알마티는 해발 700미터에 건설된 도시여서 이 도시 근교의 산은 당연히 고도가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알마라산은 2000미터가 넘는 산이라고 한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지리산 천왕봉보다 높은 산을 올라가고 있는 셈이다. 차를 타고 가는데 안에 탄 사람들이 낑낑대거나 헉헉댄다고 생각해보라. 뭔가 매우 이상한 일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세상이 얼마나 넓고도 다른지 알려주는 예인 것이다.                



▲ 알마라산에 있는 호수.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겨울을 선물 받았다.




밋밋함 속의 깊이

     

산을 오르다 보니, 녹색과 흰색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어제 내린 눈 때문에 더욱 선명한 두 색의 조화가 빚어낸 산의 자태를 볼 수 있었다. 경치가 좋은 곳이 나오면, 차에서 내려야 했다. 어제의 추위가 생각나서 차에서 내리기 싫었지만 막상 내리고 보니, 고지대임에도 그다지 춥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자연의 경이란 바로 이런 것임을 알겠더라. 

인간이 인공적으로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 해도, 이와 같이 질리지 않는 경이로움을 만들 수는 없다. 여기서 핵심은 질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려한 것은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지만, 곧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인간의 시세포와 감성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현란함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자연은 어찌 보면 밋밋하고 따분하기까지 하다. 어딜 봐도 전혀 다를 게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는 시구처럼 자세히 보아도 전혀 질리지 않고 무언가 매력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속에 깊이를 담고 있기 때문이며 자연스러움을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경이로움, 그 밋밋하면서도 깊이 있음을 나도 닮고 싶다. 



▲ 밋밋함의 소중함을 알려준 알마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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