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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04. 2016

작은 전시회를 기록하는 이유?

15학년도 1학기 작은 전시회 1

아주 상투적이고 진부한 표현으로 시작해보자. ‘2015학년도 1학기가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무리 짓는 시기가 왔다’

이런 상투적인 표현이 담고 있는 내용은 시간이 그만큼 빠르다는 의미이고, 시작과 끝의 인상이 워낙 강렬한 탓에 중간 과정은 별로 생각이 안 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 정말로 그랬다. 2월부터 3월까지 2개월 동안은 검정고시 준비 기간이었기에 정신없이 사회와 역사를 공부한 후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했고, 4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일상을 채워갔다. 학교라는 성격상 수시로 여러 일들이 발생했고 더욱이 대안학교라는 특성상 매우 역동적이기까지 하다보니, 의식적으로 시간을 인식하려 하지 않으면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그래서 ‘벌써 □월이야’, ‘벌써 한 학기가 끝난 거야’라는 푸념이 절로 나왔다.                



▲ 1학기가 순식간에 흘러 버렸다. 흐른 그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그걸 어떤 식으로 남기느냐도 의미가 있다.




기록으로 낚아 챈 시간과 기억으로 남긴 시간

     

그렇다면 그 시간을 낚아채기 위해, 순간의 기억을 남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솔직히 말하면 작년까지는 별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신입교사 때는 적응하기 바빴고, 2년 차엔 카자흐스탄 여행, 지리산 여행 등 다채로운 일이 많았으며, 3년 차엔 학교의 재정비와 학교 이전으로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꼭 정리해야 하나?’라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건 어찌 보면 ‘정리병’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런 거 다 떠나서 귀찮기도 했으니 말이다. 무언가를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부담이 먼저 앞섰고, 그럴수록 새로운 무언가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보면 차일피일 미루게 되고, 이미 시간은 지나버렸으니 자연히 하지 않게 됐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나면 결국 ‘기록을 남긴다고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잖아. 그럴 바에야 힘들 게 기록할 필요 없잖아. 그냥 학교생활에 충실하게 지내는 것이 제일이지’라고 합리화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냥 지금을 잘 살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기억으로 남긴 시간’에 만족하게 됐다. 

여전히 위와 같은 마음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단재학교에서 4년을 지내오면서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다. 그건 위에서도 살짝 언급했듯이 시간을 애써 인식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그저 흘러가 버린다는 것이다. 순식간에 시간은 흘러가고 난 그 현실에 그저 만족하고 만다. 그러다 보니 ‘난 뭘 하고 있지?’하는 알맹이가 빠진 듯한 공허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2012년도엔 단재학교에서 첫 해를 보냈다. 그 때 수많은 갈등이 있었고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기록하지 않았다. 사회 초년생의 어설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감추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나의 2012년도는 암흑 속에 고이 묻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갈등이랄지, 상황에 대한 인식이랄지 그 모든 게 어설프고 서툴렀으며 찌질해 보일지라도 기록으로 남겨놓았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과정들을 지나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며, 그 때의 여러 감정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드는 요소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는 그 당시의 감정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에 현재적인 시각으로 폄하할 수 없는 데도 그 땐 그런 것들을 내보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2012년을 지금은 복구할 방법이 없다. 그저 흐른 시간만큼이나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기록하여 시간을 낚아채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아련한 순간들이 되어간다는 것을 느꼈고 그게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지금은 어설플지라도 지금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자 한것이다. 그게 지금의 나이니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심정으로 말이다(과거에 대한 인식 변화 보기). 

위와 같은 이유로 지금까지는 학습발표회에 대한 소감을 남기지 않고 간단하게 사진에 코멘트를 다는 정도로 정리했다. 하지만 이번엔 처음으로 후기를 쓰고자 한다. 기록함으로 그 때의 뿌듯하고도 즐거웠던 순간을 좀 더 길게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 사진으론 그 당시의 우리의 추억이 아로새겨져 있지만, 그 때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마음이었는지 지금은 알 수가 없다.




작은 전시회는 뭐예요? 

    

단재학교에선 1년에 한 번씩 학습발표회를 한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니고 1학기에 한 번씩 할 때도 있었다. 일반학교에서의 학습 결과물은 시험이란 형식으로 보여줄 수 있지만, 단재학교는 시험을 보지 않기 때문에 학습 결과물을 보여줄 수가 없다. 물론 ‘배움 이후에 가시적인 결과물이 꼭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상당히 유의미한 의문이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다. 학습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우리가 택한 방식은 ‘학습발표회’였고, 그건 어찌 보면 한 학기별로 하는 게 맞다. 학기별로 아이들이 배우는 내용이 다르고, 성장한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표회란 게 아무래도 어설픈 내용보다 좀 더 완성도 높은 내용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보니, 그걸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수업의 결과물이 발표회를 통해 표현되어야 함에도, 어느 순간 발표회 준비로 수업을 하지 못하게 되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발생했다. 이러한 이유로 교육에 더욱 내실을 기하자는 생각으로 2013년도부터는 1년에 한 번씩 발표회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발표회에 대한 부담은 줄이되, 그래도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것이기에 그걸 함께 기릴 수 있는 자리는 필요했다. 그래서 하게 된 게 작은 전시회였다. 미술 시간에 틈틈이 만든 작품들을 전시하고, 부모님들을 초대하여 작품을 함께 보고 한 학기동안 살았던 이야기를 오순도순 나누는 ‘사랑방 이야기’ 같은 느낌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 단재학교는 학습 결과를 발표회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시회를 준비하는 손길들말길들

     

전시회를 하기로 결정되자 규빈이는 ‘1층에선 전시회를 하고 2층에선 카페를 하는 게 어때요?’라는 의견을 냈다.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제안이지만,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었기에 당연히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래서 학생회의에서 각 학생의 의견을 물으니, 처음에는 학부모들에게 간식을 만들고 서빙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 ‘학생회비’로 모으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었다. 하지만 민석이가 이에 대한 반론을 펴기 시작했다. 학부모들이 오랜만에 학교에 왔는데, 돈을 내게 하는 건 너무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도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에 아이들도 동요하며 각 서비스에 대해 돈을 받기보다 모금함을 놓고 학부모들이 자유롭게 돈을 내게 하자는 의견으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모금함에 대한 공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는 것에서 다시 갈렸다. 이향이는 학교 이전식 때를 상기하며 “그 때도 출입구에 ‘방명록을 꼭 기재해주세요’라고 써놨는데 수연(이향이 동생)이 외엔 아무도 쓰지 않았더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서빙을 하는 학생이 모금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어요”라고 말을 했다. 알려주는 정도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의견에 대해 누구도 다른 얘길하지 않았지만, 민석이는 그렇게 알려주는 것이 왠지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나 보다. 그래서 벽에 모금한다는 사실을 붙여 놓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의견을 내놓았고, 한참 논쟁이 오고 간 후에, 결국 돈은 일절 받지 않고 학부모를 대접해주는 형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목차     


1. 작은 전시회를 기록하는 이유?

기록으로 낚아 챈 시간과 기억으로 남긴 시간

작은 전시회는 뭐예요?

전시회를 준비하는 손길들, 말길들     


2. 준비과정을 통해 교육의 가능성을 보다

교육의 핵심은 ‘어떻게 성숙한 인간으로 만드는가?’ 하는 것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른의 시선이 문제일 수 있다     


3. 작은 전시회큰 기쁨

문제없는 내 아이가 문제다

어른의 시선이 아닌, 그 사람의 시선으로

작은 전시회, 큰 기쁨의 전시회

아카펠라 공연, 한 학기의 성장을 그대로 보여준 특급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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