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8일(금)
연극 연습을 2번 마쳤을 때, 다시 연습을 한다고 했기에 모두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무용 선생님이 오더니, 전통옷이 왔다며 갈아입으라는 것이다.
전통옷으로 갈아입고선 학생들과 삼삼오오 모여 한참이나 사진을 찍었다. 카자흐스탄 전통옷을 입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이걸 입고 보니 정말 카자흐스탄에 왔다는 게 실감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강당으로 내려가라는 것이다. 그 땐 ‘드디어 리허설을 하려나 보다’라는 생각을 했고, 시간이 11시 50분 정도가 되어, ‘곧 있음 점심시간인데 좀 급하긴 하네’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강당엔 학생들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고 카메라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그래도 ‘설마 이대로 바로 공연을 하겠어?’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춤의 순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공연 순서도 얘기해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분위기는 묘하게 흘러갔다. 이대로 바로 발표할 것처럼 말이다. 그 순간 하도 한국적인 상식과는 다르게 흘러가니 ‘우리나라만 너무 완벽 완벽 찾는 건가? 카자흐스탄은 어설플지라도 자연스러운 현장성을 중시하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총체적으로 헤매고 있었으며 조금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감으로 ‘지금 바로 발표하게 되겠구나’라고 느낌만 가득할 뿐이었던 거다.
원래는 전통옷을 입고 무대 뒤에 숨어 있다가 일제히 나오는 것으로 전통춤 공연이 시작되도록 계획되어 있었고 그에 맞춰 연습을 했었다. 그런데 이미 학생들에게 우리들의 모습이 노출된 후였기에 숨을 필요도 없이 바로 공연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공연 진행이 어설퍼도 되는 건가?
전통춤을 추면서 발표회는 시작되었다. 이 춤을 추기 위해 가장 많은 시간이 들어간 것이지만, 후반부의 춤동작이 여러 번 바뀌어 전체 멤버들이 헤맸다. 더욱이 내가 앞에서 공연을 하기 때문에 분위기를 리드해야 하지만, 순서를 모르니 자꾸 뒤를 보게 되더라. 솔직히 어색하고 뻣뻣한 동작은 아무래도 좋았다. 내 자체가 몸치에다가 박자감각도 없으니 나름들은 몸으로 웨이브를 만들어낼 때, 나는 꿀렁꿀렁 뭔 동작인지도 모르는 걸 하게 되니 말이다. 어디까지나 나의 춤 실력 없음을 그냥 인정하고 그 시간을 즐기면 그뿐이었다.
하지만 파트너를 보며 춤을 추지 못하고 뒤를 보며 춤을 춰야 하니 그게 죽을 맛이었다. 그래서 ‘시간만 좀 더 넉넉했다면 괜찮은 공연을 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운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카자흐스탄의 전통복장을 입고 춤을 춰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은 대만족이다. 이미 며칠 전에 쓴 여행기에도 밝혔다시피, 춤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자는 복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복 받은 사람’이었다.
다음엔 근호의 발표회 시간이 있었다. 한국을 소개하는 것이었는데 떨지 않고 하더라. 발표회를 하기 전에 이미 종이에 한국발음을 적어놓은 뒤였다. 그걸 보면서 경주, 부산, 서울을 중심으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프리젠테이션을 한 것이다. 이미 2012년 1학기 학습발표회 때 만인의 앞에서 발표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능숙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쉬웠던 것은 진행 상, 마이크가 필요했는데도 중반 이후에야 마이크를 줬다는 점이다. 알고 보니, 기계를 만질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처음부터 줄 수 없었다고 하더라.
다음엔 연극 공연을 했다. 솔직히 공연이라기보다 그냥 발표라고 하는 말이 맞을 듯하다. 연극은 과장된 몸짓에 연기력까지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이번 공연은 연기력은 둘째 치고, 대사에 감정도 힘도 없이 그저 외운 것들을 어설프게 따라하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는 내내 ‘저게 도대체 뭐 하는 거냐?’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연극이 끝나고 나서 제대로 연기할 수 있음에도 왜 그러지 않았냐고 이유를 물어보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니 어떤 제스처를 취하며, 어떤 억양으로 해야 되는지 알 수가 없어요”라고 대답하더라. 이 대답이야말로 이번 대통령 학교 일정의 문제점을 제대로 드러낸 말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입장에선 한국 학생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제대로 이끌어주지 않았으며, 우리 입장에선 주도적으로 나서 무언가를 요구하고 적극적으로 하려 하기보다, 정해진 대로 얼렁뚱땅 따라가기에 바빴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와 같은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투간졔름Туған жер’이란 노래를 불렀다. 한국에서 떠나기 전부터 충분히 외웠던 노래이고 스튜디오에서 녹음까지 했던 노래다. 이번 여행에서 단재팀의 야심작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 우리의 노력에 화답이라도 해주듯이 관객석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노래에 맞춰 학생들이 모두 일어나 환호를 지르고 따라 불러줬기 때문이다. 그런 정열적인 반응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꼭 단재친구들이 엄청나게 유명한 가수라도 된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래도 발표회의 끝이 좋아서 천만 다행이다. 우리에겐 잊지 못할 최고의 순간이었다.
나중에 얘길 들어보니, 강당에 있던 학생들은 이미 다른 일정 때문에 강당에 모여 있었던 것이고 그들이 강당을 떠나기 전에 발표회를 하려다 보니 서두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대통령 학교는 방학 중이기 때문에 학생들을 모으기가 힘들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이곳도 이곳 나름대로의 상황이 있는데 그럼에도 최고의 순간들을 위해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 뿐인가 새롭게 연습한 카자흐스탄 노래도 부를 수 없었다. 왜냐, 피아노 선생님이 급한 일이 생겨 발표회 때 없었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피아노를 쳐줄 사람이 없어서 실컷 복식호흡을 하며 노래 부르는 연습도 하고 가사까지 외웠는데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거기에 대해서 전혀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왜 노래를 부르지 않았나요?’라고 물으니, 그제야 이와 같이 좀 황당한 대답을 해주는 것이다. 그만큼 발표회 자체가 어설프게 진행되었다는 얘기고, 그렇기에 찝찝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발표회가 끝나고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밥을 먹는데, 식당 밖에서 공연을 본 학생들이 우리 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거 있지 않던가? ‘하룻밤 사이에 스타가 되어, 다음 날 대문을 여는 순간 수많은 팬들이 자신을 둘러싸는 것’ 같은 상황 말이다. 단재 친구들도 그 상황에 어안이 벙벙하긴 했지만 은근히 그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그래서 밥을 다 먹고 밖에 나왔더니, 학생들이 우리를 둘러싸며 사진도 찍고 인사도 건네더라. 우리의 공연이 완벽하진 않았다 해도, 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공연의 ‘찝찝함’이 ‘짜릿함’으로 승화되던 순간이었다.
알마트와 발렌티나가 오늘부터 캠프 때문에 집을 비운다고 한다. 그래서 승빈이와 이향이가 혼자서 그 집 식구들과 생활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은 피치 못할 상황이기 때문에, 이 상황 자체에 대해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됐나요?’라고 따지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일이 있지만, 저희 학교에선 이러저러한 조치들을 모두 다 해놓았습니다.’라는 말로 승빈이와 이향이에게 안심을 시켜주든, ‘이런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나와 상의를 하든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이야기조차 없다가 갑자기 ‘홈스테이 친구들이 캠프에 간다’는 말을 들으니, 황당했던 것이다.
그래서 디아나 선생님에게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려 생각 중이신가요?”라고 물었더니, 오히려 발끈하며 ‘그게 뭐가 문제가 되냐?’는 투의 대답을 했다. 이럴 때 문화적인 차이를 현격하게 느낀다. 아무리 가족과 친해졌다고 해도 친구가 없는 집에서 생활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문제시한 것인데, 디아나 선생님은 아이들만 없을 뿐 집 안에서 생활하는 것은 똑같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뭐 크게 달라진 문제는 아니기에 충분히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승빈이나 이향이에게 양해를 구했다면 훨씬 좋았을 테지만 말이다.
상황은 이미 벌어진 뒤였기에, 디아나 선생님에게 각 가정에 전화하여 탈디쿠르간에 머무는 이틀 동안 승빈이와 이향이를 잘 챙겨주시면 좋겠다는 말을 건네며 양해를 구하게 했다. 어차피 탈디쿠르간의 일정도 이젠 막바지다. 이틀 동안만 약간의 불편을 감수한다면,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찌 보면 이런 색다른 경험들도 좋은 방향으로 생각한다면, 홈스테이 가족들과 좀 더 친해질 수 있는 계기일 것이다.
길고도 여러 일이 많았던 하루가 저물어 간다. 탈디쿠르간의 마지막 금요일이 그렇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