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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Dec 24. 2018

탈디쿠르간 마지막 일정, 우린 사람이기에 좌충우돌한다

2013년 6월 30일(일)

탈디쿠르간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 일정은 아쿠아 파크에 가서 수영만 하면 된다. 특별한 것이 없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렇지만 디아나 선생님에게 상의도 없이 일정을 바꾸는 것에 대해, 발렌티나와 알마트가 떠났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더욱이 오늘만 해도 디아나 선생님과 아이노르 선생님과 10시에 만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 10시가 되도록 아무 연락이 없다가, 기어코 약속이 취소되었으며 1시에 아쿠아파크 입구로 오면 된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공동의 합의나 이해가 아닌, 자기 멋대로 하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꼭 이 문제를 얘기하여 다음에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빠지고 싶으면 빠져도 돼

     

아쿠아 파크에 도착하여 보니, 아이노르 선생님과 민석이만 있었다. 그 때 아이노르 선생님에게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디아나 선생님은 오늘 개인적인 일로 여기에 오지 않으며 근호는 디아나 선생님과 얘기하여 오늘 일정에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디아나 선생님 일은 유감스러웠고 근호의 일은 황당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의견은 내일 말하기로 했고, 근호에게는 바로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들어보기로 했다. 

어제 저녁에 사우나를 다녀왔단다. 그런데 머리를 말리지 않고 자서 감기 기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혀 아픈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다. 잠긴 목소리도, 피곤에 쩔은 목소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어떤 이야기든 나한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당연히 근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말해봐야 ‘안 돼!’라는 반응이 나올 게 뻔했기에, 디아나 선생님에게 말한 걸 거다. 둘째, 지하철 2호선과 8호선이 부딪히는 천지지변이 일어나거나(이건 준규쌤이 분위기를 띄우고자할 때 드는 예임^^),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아픈 게 아니면 빠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건 프로젝트를 진행하러 온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근호는 며칠 전부터 “일요일엔 쉬는 시간을 주면 안 되나요?”라는 건의를 했었다. 벌써 2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정을 진행했기에, 근호의 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예 하루를 푹 쉬게 하진 못하더라도, 최대한 여유를 누릴 수 있도록 오후에 만나 수영만 하는 느슨한 일정을 잡은 것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나오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빠지고 싶으면, 빠져도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 10시에 만나기로 한 약속이 취소되며 굴심쌤과 이것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래도 할 땐 해야 해

     

일정에 빠져도 된다는 생각이, 대통령학교에선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 말을 들으면 ‘도대체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이 어딨냐?’고 따질지도 모르지만, 단재친구들과는 달리 대통령학교 학생들은 일정에 참여하는 게 자유로웠다. 전통춤 연습을 할 때, 알마트는 하지도 않았으며 산자르도 하고 싶을 때만 연습했다. 연극 연습을 할 때도 이미 배역이 정해져 있기 때문인지, 남학생들은 같이 있지도 않았다. 이런 식으로 들쭉날쭉하는 모습을 보며 단재친구들도 ‘우리도 빠지고 싶으면 빠져도 된다’는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른다. 

어제 알틴에멜에 가는 내내 이향이는 “괜히 왔어. 발렌티나 얘길 듣고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말을 연이어 했다. 이 말을 한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런 말은 푸념처럼 할 수도 있는 말이니 말이다. 단지 문제가 되는 건, 일정에 참여하느냐 마느냐를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단재친구들만의 생각이 아닌, 대통령학교에서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오늘 근호의 행동은 그와 같은 상황들이 겹치고 겹쳐 드러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일정의 참여여부를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단재친구들 모두에게 퍼지는 걸 막아야만 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근호에게 강한 어조로 와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아르토르와 함께 오겠다고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럴 때마다 갈등에 휩싸인다. 쉴 때 쉬게 하고 할 때 하게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고 아이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단체가 함께 해야 할 약속이니 강한 어조로 딱 끊어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사라는 자의식이 한껏 자리하고 있다 보니, 그리고 전체 프로그램을 진행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자리하고 있다 보니, 참 쉽지가 않다. 조금씩 자의식과 부담에서 놓여나길 바라며 이 시간을 지내보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 어제 긴 시간동안 했던 사막여행은 힘들긴 해도 귀한 체험이었다.




소통 불능이 만든 상황

     

발렌티나가 대통령 학교에서 보내는 캠프 대상자(남학생, 여학생 각 2명)에 포함되어 알마티와 아스타나에 가서 수학 공부를 한다고 한다. 홈스테이하는 학생이 집을 비우는 상황이 생겼는데도 문제를 봉합하듯 넘어간 담당자 때문에 문제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향이는 발렌티나 외엔 이야기가 제대로 통하는 사람도 없다. 발렌티나의 가족은 러시아어를 쓰기에 영어를 알아듣지도 못하고 바디랭귀지도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에 홈스테이를 한다면, 카작어를 할 수 있는 집으로 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하지만 여기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이와 같은 홈스테이 프로젝트는 고비용이 드는데, 돈이 있고 이런 활동을 하고 싶은 학생 중엔 카작어를 전혀 모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발렌티나 어머님이 “이향이는 호텔보다 여기에 있고 싶어 해요. 그래서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아침에 데려다 주겠습니다.”라는 말을 디아나 선생님에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디아나 선생님은 당연히 그런 줄로만 믿고 알았다고 대답을 했단다. 이 내용을 10시 약속이 취소되었다는 내용의 통화를 할 때 들을 수 있었다. 참으로 황당한 게, 단재학생에 관한 내용을 나는 통보받듯이 들어야 하며, 발렌티나도 없는 집에 이향이가 하루 종일 있어야 하는데도 이향이에겐 물론이고 나에게도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이향이가 어떠한 경우든 꼭 아쿠아파크에는 올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지금은 이향이와 할머니가 산책을 나가 3시간 후에 집에 돌아오므로, 그 때 데리러 가면 된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 아쿠아파크로 가는 버스. 날씨가 정말 좋으니 기분이 말로 할 수 없도록 좋다.



아쿠아 파크에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걸었더니, 발렌티나 어머님이 이향이가 발로 문을 걷어차고, 냉장고 문을 세게 닫고 책상을 내리치는 등 화가 잔뜩 나 있다고 얘기하더라. 그래서 급하게 굴심쌤과 아이노르쌤이 택시를 타고 이향이를 데리러 갔고, 모든 짐을 챙겨서 아쿠아파크로 오게 된 것이다(이향이는 발렌티나 집에서 나오며 ‘I'm Free’라는 『쇼생크 탈출』에 나올 법한 말까지 했단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얘기겠지). 

이향이는 그런 말을 듣고 자신은 전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 발렌티나 어머님이 이상하게 상황을 묘사했다고 황당해했다. 자신은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기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조심조심 행동했는데도, 이런 식의 말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 상황의 핵심은 ‘의사소통’에 있다고 본다. 언어가 다르고 생활방식이 다르며 문화가 다른 데서 기인한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향이는 이향이 나름대로 억울한 부분이 있었고, 발렌티나 어머님도 발렌티나 어머님 나름대로 억울한 부분이 있었다. 이향이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 행동했으며, 음식이 입에 안 맞더라도 맛있게 먹고 더 주면 남김없이 먹으려다가 속이 안 좋았던 적도 있을 정도로 어머니께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에 맞춰 발렌티나 어머님도 탈디쿠르간에 온 첫 날부터 이향이를 마중 나왔으며, 병원에도 성심성의껏 데려다주었고, 야유회를 갈 때에도 배고프지 않도록 음식도 정성스레 싸줬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니 제대로 중간다리 역할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벌써 카자흐스탄에서 2주를 보냈다. 내일이면 다른 장소로 떠난다. 우리의 여행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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