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일(월)
탈디쿠르간에서 1시간여를 달려 우슈토베ushtobe에 도착했다. 버스에 타고 이동할 때만 해도 우슈토베에 있는 고려인이 운영하는 여관에 아이들과 함께 머물며 우슈토베에서 고려인 발자취를 따라가며 카자흐스탄의 마지막 1주일을 보내는 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은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라, 종교시설이었다. 감리회 소속 선교사님이 세운 교회로 우리가 도착했을 땐 재미교포 학생들이 여름성경학교에 와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교회에 마련된 숙소가 아닌,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별채에서 자야 한단다.
별채는 민가를 개조한 곳이어서 아늑한 느낌이 났다. 이런 건물을 러시아식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특이한 구조의 집이었다. 방도 넉넉했으며 각 방마다 4~5개 정도의 침대가 있어서 여유롭게 잘 수 있었다. 짐을 내려놓고 교회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교회에서 먹는 밥은 예술이었다.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어서 원하는 만큼 퍼다 먹을 수 있었다. 더욱이 총각김치도 한가득 담아주셨다.
그런데 이 때 전혀 예상치 못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내가 평소에 알던 사실이 거짓말인 것처럼 느껴지는 희한한 광경이었다. 그건 바로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총각김치가 사라진 광경이다. 모두가 무림비공을 전수 받은 마냥 젓가락을 ‘쑹’하는 소리를 내며 날렵하게 몇 번 왔다 갔다 했다. 그랬더니 ‘그 많던 싱아’가 아닌 총각김치는 누군가의 입으로 사라진 것이다. 더욱이 김치를 한 가닥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먹기까지 했다. ‘얘네들이 언제 김치를 이렇게까지 좋아했지?’ 싶을 정도로 놀라운 순간이었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넉넉함보단 넉넉하지 못함이, 과잉보단 부족함이 우리의 삶을 더욱 살찌게 한다는 것을 말이다.
넘치도록 가득 채우는 것은, 적당할 때 멈추는 것만 못하다. 너무 날카롭게 만든 것은, 오래도록 보존할 수가 없다.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하면, 이를 지킬 수가 없다. 재산과 명예로 교만해지면, 스스로 허물을 남길 뿐이다. 공을 이루었으면 자신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다. 『노자』 9장
持而盈之, 不如其已. 揣而銳之, 不可長保. 金玉滿堂, 莫之能守. 富貴而驕, 自遺其咎. 功遂身退, 天之道. 『老子』 9장
노자의 말은 역설로 가득 차 있다. ‘소리 없는 아우성’과 ‘눈 뜬 장님’이란 표현을 처음에 들으면 이해할 수 없지만, 무언가를 느끼며 살아본 사람에겐 이처럼 의미심장한 말도 없다. 그처럼 노자의 말도 처음에 들으면 ‘뭔 멍멍이 소리야!’라고 황당해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탁월함에 무릎을 치게 된다.
넘치도록 가득 채운 것엔 아무 것도 새로 담을 수 없다. 그건 곧 모든 가능성이 막혔다는 뜻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기에 적당할 때 멈추는 지혜가 필요하다. 노자는 이것을 ‘하늘의 도天之道’라고 표현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며, 꽉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이야말로 자연스러운 사람의 본성인 걸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자주 접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것에 욕망이 생기기 마련이다. 넉넉할 땐 간절하지 않다가, 부족해지면 마음이 자꾸 간다. 새우깡에만 손이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맘껏 누릴 수 없거나, 누리는 것이 차단된 것들에 손과 마음이 가는 것이다. 그래서 꽉 꽉 채우려 하기보다, 적당히 채울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한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