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일(월)
밥을 먹고 본격적으로 고려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을 떠났다.
아스타나에서 알마티로 기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같이 갔던 교육원 선생님에게 전혀 뜻밖의 말을 들었다. 한 분은 기르기스스탄에서 태어났고, 다른 한 분은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난 고려인이다. 고려인이 한국에 들어가 공부를 하려 하거나, 취업을 하려 하면 한국의 나이 드신 분들이 “배신자!”라며 공격한다는 것이다. 민족의 수난을 함께 겪어낸 동포이며 동변상련을 함께 해온 동지로 생각하여 반길 거라 짐작했는데, 반기긴 커녕 욕을 한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걸 보고 있으니, 임난 당시 인조가 병자호란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내빼고 항복한 후에 조선 땅에 돌아오는 여자들을 화냥년還鄕女으로 모욕 준 사건이나,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도망간 후에 서울로 돌아와서 인민군에 부역을 했다는 이유로 처벌했던 사건이 떠올랐다. 백성들은, 국민들은 살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권력자가 돌아와서 한 행동은 피해자들에 대한 석고대죄席藁待罪가 아니라 피해자를 오히려 가해자로 만드는 일을 서슴없이 했으니 말이다. 피비린내 물씬 나는 이념 논쟁으로,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바빴던 것이다.
이처럼 고려인에 대한 인식도 그와 별로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잘 살고 있는데 삶의 터전을 버리면서까지 타국으로, 그것도 허허벌판으로 가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세도정치勢道政治로 삼정三政(조세, 군역, 환곡)이 문란해지면서, 가난한 농민들은 이 땅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살기 위해 국경이 막힌 청나라로는 가지 못하고, 러시아의 허허벌판인 블라디보스톡Владивосток으로 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현실을 문제 삼기보다 한 개인을 문제 삼고 있으니 문제라는 것이다.
아래의 인터뷰는 우리의 화가 약한 고리로만 향해 있다는 비겁함을 느끼게 해준다.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우리 러시아에서 온 고려인들이에요. 교포예요’라고 말했는데, 그때 들었던 반응은 ‘나라가 위기상태였는데 너희 조상은 그쪽으로 도망친 배신자들이다. 너희는 그들의 후예다’였다.”(고려인 S씨) -『귀환 혹은 순환』
이 인터뷰 내용을 읽고 어떠한 생각이 드는가? 비겁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더욱이 그 당시 민초들에겐 ‘국가’라든지, ‘국민’이란 인식이 없었다. 그저 살고 있는 땅이 있으며 살 수 없으면 살 수 있는 곳으로 떠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현대의 ‘근대국가적인 관념’으로 그들을 옥죄거나, 비판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우리의 시선은 그들을 껴안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보아야지, 그들을 정죄하며 자신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것이어선 안 된다.
아래의 시는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시인이 쓴 것이다. 이 시를 읽고 나서도 그들을 비난하거나 정죄하려 한다면, 더 이상 한국에 희망은 없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이미 남북으로 선명하게 갈라져 있는데, 여기에 더하여 자이니치ざいにち(在日), 조선족, 고려인 등으로 갈기갈기 찢어놓으려 하는 마음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백두산 말기에 먹지 못해
먼 북쪽으로 쫓겨난
할아버지 손자, 난 조선사람이다.
구르지아의 나나보다도
까자크의 아빠보다도
러시아의 마마보다도
조선의 어머니가
내 심장에 깊더라.
난 조선사람이다.
난 고려인이다.
- 김준, 「난 조선사람이다」
이 시는 울분이다. ‘나라를 잃은 설움’이라는 말을 쓰지만, 그런 정형화된 단어가 감춘 무미건조함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반면, 이 시를 통해서는 절절히 감흥을 느낄 수 있다. 이 시를 읽으며 우리 안에 ‘날카롭게 그어진 너와 나를 가르는 선’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고려인을 과연 배신자로 볼 것인지 같은 동포이며 아픔을 함께 나눈 동지로 볼 것인지, 그게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