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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06. 2019

설거지와 손해 본다는 심리

2013년 7월 3일(수)

우슈토베에 온 첫 날엔 재미교포 학생들이 우리의 설거지를 도맡아 해줬다. 어제 점심을 먹고 재미교포 학생들이 간 후엔 단재학생들이 설거지를 나눠서 해야만 했다. 다섯 번 식사 때 설거지를 해야 하기에, 각 식사 당 두 명씩 설거지를 하면 됐다. 우리 그릇만 설거지 하면 되기에 많은 양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소비주체에게 설거지란?

     

하지만 문제는 점심 식사 시간에 일어났다. 설거지양이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색종이 접기와 그림 그리기에 참여한 아이들이 점심을 먹었으며, 국까지 나왔다. 난 푸짐한 반찬과 국까지 만들어주신 정성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설거지를 해야 하는 B학생은 아이들 것까지 해야 한다며 짜증을 내고 있었고 거기다 국까지 따라주자 “국그릇까지”라며 땅바닥이 꺼질 듯한 한숨을 쉬고 있었다. ‘저녁과 아침에 설거지한 팀은 우리들이 먹은 것만 했는데, 자기는 더 많은 그릇을 설거지해야 한다’며 억울해 하고 있었다. 

자신의 것을 남이 해주는 건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남의 것을 하나라도 더 하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반응이 나온 것이다.                



▲ 설거지를 하는 귀한 손길들.




남보다 하나라도 더 하는 걸 손해라고 여기다

     

‘남보다 하나라도 더 하는 건 손해다’라는 인식이 문제다. 이것은 철저히 ‘소비주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사회가 개인에게 심어놓은 생각이란, ‘손해 아니면 이득’ 둘 중에 하나다. 그래서 두 가지의 극단적인 생각 외에 중간은 없다. 묵혀두면 현상 유지가 되지 않냐고 반문할진 모르지만 자본주의에서 현상유지는 곧 손해인 것이다. 10년 전의 만원이란 돈의 가치와 지금 만원이란 돈의 가치가 다른 것에서 ‘현상유지=손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만큼 물가가 상승하면서 돈의 가치는 끊임없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을 묵혀두기보다 고배당을 받을 수 있는 투자처를 찾거나 부동산을 사려 혈안이 되는 것이다. 

그런 식의 관념은 ‘남보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게 이득이다’라는 생각과도 맞닿아 있으며 그걸 뒤집으면 ‘남보다 더 하는 건 손해다’라는 생각이 된다. 설거지라는 행위조차도 ‘소비주체적인 관념’으로 따지고 있는 현실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 단재학교는 여행을 많이 가기에 설거지를 하는 것도 중요한 일정에 포함된다. 열심히 설거지를 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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