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3일(수)
오전엔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어 현지 학생들과 색종이 접기와 그림 그리기를 했다. 현지 학생 이래봐야 10명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선 단재학교 학생들에게 색종이 접는 법을 연습시키고 무얼 그릴지 미리 회의를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어제 저녁에 아이들끼리 오해를 풀 수 있도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도 좋지만, 전체 회의를 하여 무엇을 만들고 그릴지 정하고 연습시켰어야 했는데, 그 땐 그런 생각을 못했다. 아마도 ‘색종이 접기는 아이들이 다할 줄 알 테니, 각자에게 맡겨줘도 잘 할 것이다. 그리고 그림 그리기는 혜린이 특기이니 어련히 알아서 할 것이다.’라는 ‘케세라세라’와 같은 무책임한 생각만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과 봉사할 시간이 다가오자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단재학생들과 모여 “오늘 색종이 접기를 하는데 무엇을 접을 수 있냐?”라고 묻자, 접을 수 있는 게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무진장 굴리기 시작했고 임기응변으로 색종이표지에 나와 있는 ‘나비’를 접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나비 접기 또한 단재학생들에게 낯선 걸 어쩌랴. 아이들이 색종이 접기를 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놀랐지만, 나의 막무가내인 진행에도 놀랐다. 총체적인 부실이고 비상이다.
색종이 접기 시간엔 내가 맨 앞에 서서 전체를 보여주며 종이 접는 법을 보여주면 단재친구들이 선생님이 되어 각각 아이들을 알려주는 방법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예행연습도 하지 않은 터라 도면을 보고도 접지 못하는 단재친구들이 꽤 있더라. 단재친구들이 헤매고 있으니, 학생들도 헤맬 수밖에. 그러다 보니 어떤 곳은 학생이 오히려 선생님을 가르쳐주기도 할 정도였다. 그렇게 얼렁뚱땅 20분 정도 걸려 나비 접기가 끝났다.
미안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래서 ‘남은 시간은 뭘 할까?’ 생각하다가, 내가 제일 자신 있게 접을 수 있는 학접기를 같이 하기로 한 것이다. 내가 한 부분씩 보여주고, 아이들이 따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다함께 학을 접는데 무려 30분의 시간이 걸렸다.
모두 다 접고 나서, 학을 한 자리에 모아두고 사진을 찍으니 그럼에도 나름 뿌듯한 기분은 들더라. 조금만 더 성실하게 준비했다면, 더 알찬 시간이 되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단재친구들에게도 교회 아이들에게도 너무 시간을 그저 때우는 듯한 느낌을 준 것 같아 미안하기까지 했다.
색종이 접기 시간에 넌지시 혜린이에게 ‘다음 시간이 그림 그리기 시간이야. 니가 강사가 되는 시간이니, 어떤 식으로 할지, 어떤 그림을 그릴지 준비해봐.’라는 말을 했다. 혜린이 입장에선 갑자기 던져진 황당한 주문인 것이다. 겨우 30분정도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내가 주문하긴 했지만, 솔직히 따지고 보면 이처럼 황당한 주문이 어딨는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도 없이,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린다는 이유로 현장에 던져놓았으니 말이다. 아마 혜린이는 그 순간, 쌍시옷… 멍멍이… 씹던 껌… 등의 욕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황당함과는 상관없이 혜린이는 침착하게 잘 진행했다. 아이들과 소통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그래서 그 순간 혜린이는 최고였다고 감히 평가할 수 있고, 어느 누구보다도 멋져보였다.
혜린이는 부엉이, 사람, 스폰지밥을 그리게 했다. 혜린이도 색종이 접기를 할 때처럼 한 획씩 칠판에 그리면서 보여주면, 아이들이 그걸 보고 도화지에 따라 그리는 것이다. 아이들은 완성되는 그림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며 만족해했고 그걸 보는 나 또한 벅찬 감동을 느꼈다. 혜린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듦과 동시에, ‘사람은 누구나 예술가다’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