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Nov 25. 2015

사진은 모방품인가? 예술품인가?

내셔널지오그래픽전 후기

예전부터 궁금하던 게 있다. 과연 예술이란 게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누군 색지에 칼집을 낸 후 출품했고 누군 공산품인 변기에 샘Fountain이란 이름을 붙여 전시했다. 색지에 칼집을 내거나 공산품에 어떤 명칭을 붙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진은 일상의 모방품일 뿐?

     

‘누구나 할 수 있다’와 ‘별로 색다를 게 없다’라고 평가할 수 있음에도 예술품으로 칭송받고 있기에 예술이란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적어도 예술품은 그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일상에서 흔히 보지 못하는 특별한 것이어야 한다고 정의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고정관념이 ‘예술품 같지 않은’ 예술품을 보며 흔들리게 되었으니,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예술에 대한 혼란이 정리되지도 않았는데, 그런 정의를 사진에 대입하면 혼란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사진이란 건 적당히 카메라의 셔터만 누르면 완성되는 것이기에 예술이라 하기엔 ‘뭔가 좀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들었고 요즘처럼 카메라가 필수품이 된 시대에 있어서 사진가는 ‘거저먹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사진가가 찍은 사진을 예술품이라 한다면, 그건 ‘날라 다니는 파리를 봉황이라 하는 격’이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기 때문이다.      



▲ 내셔널지오그래픽전을 찾은 합정동팀. 예술이 그대들에겐 무슨 의미인가?



의식이 담긴 예술품으로써의 사진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다보니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 그건 바로 사진이란 ‘객관적이냐?’ 하는 점이다. 객관적이란 얘긴, 누가 찍더라도 같은 사진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고 특별한 시선에 따라 다르게 찍혀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사진에 담긴 장면은 사진을 찍는 사람의 의식이 반영된 장면일 수밖에 없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의식이 반영되며, 결과물엔 그런 작가의 시선이 박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이야말로 객관적인 결과물이 아닌 ‘주관적이어도 너무도 주관적인’ 예술품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얼룩무늬바다표범은 처음엔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사진가를 위협했다. 그러나 친근감을 느끼자 펭귄을 잡아 선물로 가져다 주고 있다. 어떻게 이런 사진을 아무나 찍을 수 있을까.



이런 관점으로 사진을 볼 수 있다면 ‘누구나 찍을 수 있다’는 말과 ‘별로 색다를 것 없다’는 말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사진은 작가가 지닌 순간의 감각이 담긴 예술품일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사진을 보며 어떤 의도로 이런 사진을 찍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사진을 작가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그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을 때, 예술로서의 사진이 가진 의미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 촛불집회 당시의 두 개의 시선. 누구의 시선인지, 누가 찍었는지, 무슨 의도인지




예술은 남다름이 아닌 일상에 묻힌 특별함을 찾는 것   

  

이에 대해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작가인 애니 그리피스는 “진짜 사진가는 바로 자신이 사는 지역(뒷마당)에서 모두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사진’을 촬영할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일상 그 속에서 비상함을 끄집어내는 능력, 누구나 스쳐지나가는 장면에서 색다른 관점을 발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스쳐 지나는 어떤 것이든 허투루 보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일상에 묻힌 비상함을 발견해내는 안목, 그게 바로 예술품을 만드는 이의 힘이고 능력이라 할 수 있다.      



▲ 짝을 찾는 에콰도르 운무림의 수컷 곤봉날개무희새는 날개를 1초에 107번이나 부딪혀 소리를 낸다.




일상을 깊게 파고들 때 새로움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말하면 왠지 예술가의 천재적인 자질을 요구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어디 말이 쉬워서 그렇지 특별한 안목을 갖는다는 게 쉬운 일인가? 그런 특별한 안목을 가질 수만 있다면, 나는 영혼이라도 팔고 싶다. 일상을 특별한 안목으로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 사는 세상은 일반인들이 사는 세상과 분명히 차원이 다른 세상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같은 지구에 살지만, 전혀 다른 세상을 보며 산다.



그렇지만 그런 자질은 결코 타고나는 게 아니었다. 예술가들은 그 한 순간을 위해 몇 날 며칠 날을 새기도 했으며 아예 근거지를 옮겨 외딴섬에 들어가 혼자 살며 외로이 작업하기도 했다. 이쯤에서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단 한 컷의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90일 동안 한 곳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는 “참을성을 가지고 자연을 새롭게 바라보고 싶었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 컷의 사진을 찍기 위해 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힘들 것이다.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런 인내심을 발휘한다는 말인가? 그런 인내심은 순수한 창작욕, 사진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발휘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최상의 순간, 최적의 순간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그런 순간이 다가올 때까지 숨죽여 기다릴 줄 알았다.

일상의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으려면, 그런 끈기와 인내가 필요한 법이다. 그건 겉모습의 휘황찬란함에 휘둘리지 않고 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파고들려는 집중력인 셈이다. 적극적인 마음과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일상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일상에 묻힌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 사진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완성된다.




예술이란 일상, 그 속에서 나온다

     

이런 시각으로 ‘샘’이나 ‘칼집을 낸 캔버스’를 보자. 그러면 이런 작품들은 예술품의 고정관념을 깬, 즉 형식화된 예술에 새 바람을 불어넣은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건 곧 기존의 작품들이 자신만의 색다른 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이들은 이미 있는 작품, 또는 공산품에 자신만의 색채를 넣어서 예술품과 공산품의 경계를 허물거나 2차원에만 머물던 전통적인 회화의 공간을 3차원으로까지 확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고정적인 발상이 깨지는 그 순간에 예술은 탄생했다는 것이다(철학자 이왕주의 예술에 대한 시선 보기).

고정적인 발상을 깰 수 있으려면, 당연히 고정적인 발상이 무엇인지 발견해야 한다. 지극히 일반화되고 법칙화된 내용을 발견할 수 있으려면, 당연히 그 일상 한 가운데로 들어가야 한다. 그림 공부를 하는 사람이 수 만장씩 유명한 작품을 따라 그리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반복을 통해 그림의 패턴을 알게 될 때, 고정적인 발상이 무언지 알 수 있게 된다. 그걸 알게 될 때가 비로소 자신의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흔히 학생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지겹다’는 표현인데, 이 때 지겹다는 표현은 부정적인 표현만은 아니다. 그 지겨움도 더 깊숙이 파고들 수 있다면, 분명히 새로운 활기를 찾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지겨움을 맛들 때, 예술작품이 탄생한다.




지겨움을 맛들 때, 예술작품이 탄생한다

        

합정동 프로젝트를 반 년 가까이 진행하다보니, 서서히 어떤 안목이 트이는 경험을 하고 있다(나만의 경험이 아니길 바란다). 그건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기도 하면서, 흔한 것 속에 감추어진 새 생명을 발견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회를 합정동팀에게 제안할 때 썼던 글을 잠시 보도록 하자.           



세상은 경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스쳐지나가는 그 모든 것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생명의 경이로움이 숨어 있습니다. 떨어지는 낙엽에서 삶의 진리를 깨달은 부타나 씨 뿌리는 농부의 모습을 보고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생각한 예수나 흐르는 물의 움직임을 보고 “최상의 선함은 물과 같다上善若水”라는 앎을 얻은 노자는 세상의 경이를 볼 줄 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합정동 친구들도 스쳐지나가는 순간 속에서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합정동 프로젝트는 ‘삶의 경이를 맛보려는 사람들의 열정’을 느껴보려 합니다. 세상의 경이를 찾아 자신이 누려도 될 쾌락을 포기한 사람들의 열정 말입니다. 아마도 내셔널지오그래픽전의 사진을 보며 여러분은 ‘뭐 하러 저런 오지까지 가서 고생하는 걸까?’하는 의문이 들 것입니다. 바로, 그 의문이 이번 합정동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그 의문에 자신만의 대답을 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만의 대답을 찾아 전시된 사진들을 보고 생각을 담아낼 수 있길 바랍니다.       



▲ 크리스존스 "스타일이나 양식보다 이야기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술품이란 재현된 작가의 시선이나 의식이라 본 것이다. 그걸 우린 눈으로 훑고 지나갈 테지만, 실제로 그 행위 자체가 하나의 작품을 읽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과정을 거치며 하나하나 작품을 읽어가고 맛들여가야 하야 한다.

‘일이관지一以貫之(하나로 모든 것을 꿰다)’라는 말은 『논어』라는 책에 나오는 말로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의 뜻과 같다. 아무리 많은 지식의 조각과 아무리 많은 상식의 파편이 내 머릿속에 있을지라도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 의미 있는 무언가를 생산해내지 못한다면, 창고에 쌓인 잡동사니와 같을 뿐이다.

그러니 합정동팀은 자신이 많은 경험을 했다고 자랑하지 말고 많은 지식을 지녔다고 거만하지 말고 그런 경험을 하나로 묶어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합정동팀이 쓴 루브르박물관전 연합후기 보기). 그 이야기야말로 모두에게 의미 있는 예술품으로써의 작품일 테니 말이다.



▲ 우리가 걷는 이 거리에서 예술은 피어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