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소시온, 데, 에널쟈!(absorcion de energia)”
분리된 리의 에테르가 노파에게 훅 빨려 들어가자,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부웅’ 떠올랐다.
공중에서 한 바퀴 ‘빙글’ 돈 노파는 발레라도 하듯 발 끝으로 사뿐히 내려섰다.
그녀의 등 뒤로 에테르의 후광이 밝게 빛났다.
“와우! 맛있다, 맛있어. 정말 맛있어!”
노파에게 에테르를 빼앗긴 리는 휘청거리더니, 가슴을 붙잡은 채 옆으로 쓰러졌다.
쓰러진 리의 입에서 파란 액체가 흘러내렸다.
어깨로 이어지던 두 줄의 검은 선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이햐, 자네 대단해. 이런 에테르를 가졌다니. 이거면 마수(魔獸) 100마리를 소환하는 건 일도 아니겠는데. 고맙다, 고마워. 칼칼칼칼!”
‘쿠우우와아앙!’
그때 하늘에서 또다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경기장 위로 전투기가 나타났다.
이번엔 전투기 날개에서 불꽃이 번쩍하더니, 뭔가가 운동장을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미사일이었다.
리를 보며 가래 낀 목소리로 깔깔거리던 노파는, 미사일이 날아오는 걸 눈치채곤 얼른 팔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손가락 끝에서 둥그런 에테르 덩어리가 만들어지더니, 미사일을 향해 곧장 날아갔다.
“라마다!(llamada)”
노파가 주문을 외우자 둥그런 덩어리의 껍질이 깨지더니, 팔이 여섯 달린 ‘거미원숭이’가 튀어나왔다.
리와 싸웠던 쌍둥이 원숭이들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경기장 공중에서 옆으로 ‘빙글’ 돌며 미사일을 낚아챈 원숭이는, 마치 투포환을 던지듯 미사일을 전광판 쪽으로 날려버렸다.
‘퍼펑!’
폭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전광판 밑동이 폭발해, 전광판이 앞으로 쓰러지며 관중석을 덮쳤다.
‘끼야아악’ 관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여기저기로 달아났다.
노파는 멈추지 않고 하늘을 향해 구체 두 개를 더 쐈다.
미사일 두 발이 더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라마다 도블레(llamada doble)!”
노파의 주문에 또다시 거미원숭이로 변한 구체는, 이번엔 미사일과 공중에서 그대로 부딪혔다.
‘퍼버벙!’ 소리를 내며 폭발하는 미사일들.
불꽃놀이 하듯 경기장 하늘을 가득 메우며 거대한 불꽃이 일었다.
미사일 파편이 경기장 여기저기로 튀며 관중들을 공격했다.
‘끼야악!’
넘어지고 계단을 구르며 혼비백산 달아나는 관객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마수의 능력도 훨씬 강해진 것 같은데. 자네 힘, 정말 놀랍구만, 놀라워.”
하늘을 보며 감탄의 미소를 짓다가, 이내 쓰러진 리에게 다가가는 노파.
손을 내밀자 허공에서 지팡이가 만들어져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그녀는 지팡이 끝으로 리의 머리를 ‘톡톡’ 쳤다.
“쿨럭, 쿨럭”
리가 파란 액체를 뱉어내며 기침을 했다.
“기분이 어때. 내가 자네 에테르를 쫙 뽑아내며 선물을 남겼거든. 조금 있으면 그 파란 액체가 네 혈관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거야. 칼칼칼칼. 내가 이 기술 하나로 암형계에서 A급을 달았거든.”
‘쿠우우와아앙!’
또다시 하늘을 진동시키는 전투기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세 대가 함께 편대 비행을 하며 날고 있었다.
“원래 ‘유물’을 찾으러 내가 나올 참이 아니었는데, 오히려 잘 됐구먼. 자네 같은 영물을 다 만났으니. 자, 그럼 저것들이 더 날뛰기 전에 어서 끝내자고.”
리의 머리를 지팡이로 ‘톡’ 치고는 돌아서는 노파.
쓰러진 투수를 향해 걸어가며 나지막이 주문을 외웠다.
“익스플로타(explotar).”
그러자 리가 미친 듯이 몸을 떨었다.
그러다 파란 핏줄이 피부 위로 도드라지며 덩굴 가지처럼 온몸을 뒤덮었고,
눈, 코, 입, 귀에서 새파란 액체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도와줄까?’
리는 바닥에 맥없이 드러누운 채, 멀어지는 노파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웠고, 눈을 깜빡거릴 때마다 눈앞이 점점 더 흐려졌다.
‘이대로 끝인가. 영혼을 구해야 하는데... 오발탄을 붙잡아야 하는데... 유니 선배... 일권 선배...’
투수 옆에 걸터앉는 노파의 뒷모습을 끝으로, 리의 눈앞이 완전히 깜깜해졌다.
‘도와줄까?’
그때, 어디선가 음성 변조라도 된 듯, 남자도 여자도 아닌 괴이한 목소리가 리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누구야?’
‘난 천둥의 눈, 그리고 너 자신.”
‘나라고?’
‘도와줄까?’
‘뭐야, 넌 어디 있는데.’
‘네 앞에.’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더니, 앞쪽으로 타원 모양의 커다란 눈이 등장했다.
눈의 노란 눈동자 위에, 쓰러진 리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쳤다.
‘도와줄까?’
‘뭘 도와준다는 거야?’
‘구해야 하잖아. 잡아야 하잖아.’
순간 문을 열고 달아나는 오발탄의 뒷모습, 투수 옆에 걸터앉는 노파의 뒷모습이 차례로 떠올랐다.
그녀의 어깨에선 보라색 팔이 ‘쑤욱’ 튀어나오고 있었다.
‘맞아! 그래 도와줘! 잡아야 해. 저 마물을 물리쳐야 해!’
‘공짜는 없어.’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니, 어서 도와줘! 도와달라고!’
‘그래, 너는 나고, 나는 너니까. 나는 네 눈이고, 너는 내 몸이니까. 따라 해, 달라다라 워제아니, 달라다라 워제아니.’
쓰러진 투수 옆에서 자세를 고쳐 앉는 노파.
그녀의 어깨에서 보라색 팔이 ‘쑤욱’ 튀어나오더니, 투수의 몸을 이리저리 헤집었다.
그러다 핑크빛 자물쇠를 끄집어 올렸다.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번거로워.”
노파가 열쇠를 꺼내 자물쇠에 밀어 넣으려는 찰나, ‘두두두두두’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바닥이 거세게 흔들렸다.
“응?”
노파가 진동을 쫓아 시선을 돌리자,
외야 좌측 펜스 앞에서 땅이 둥그렇게 솟아오르더니, ‘파악!’하고 뭔가가 바닥에서 튀어나왔다.
실눈을 뜬 채,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물체를 살피는 노파.
경차 크기의 타원형 물체였는데, 자세히 보니 눈이었다.
거대한 거인의 눈알 같은.
“오호라. ‘천둥의 눈’ 일세. 여기 어디 있다더니, 오발탄이 제대로 찾긴 찾았구만. 제 발로 이렇게 나타나 주기까지 하다니. 환생하는 수고도 덜게 생겼어. 칼칼칼칼”
노파는 지팡이를 바닥에 꼽더니, 손으로 인을 맺으며 에테르를 훅 끌어올렸다.
그러자 지팡이의 끝에서 검은 그림자 같은 게 ‘천둥의 눈’을 향해 쭈욱 뻗어나갔다.
‘천둥의 눈’ 위로 날아간 검은 그림자는, 순식간에 갈가리 쪼개지더니 그물 모양으로 변해 ‘천둥의 눈’을 덮쳤다.
“자, 집에 갈 시간이다, 이리 온.”
그물이 ‘천둥의 눈’을 덮으려는 순간, 바닥에 쓰러졌던 리가 입술을 움찔거리며 웅얼거렸다.
“달라다라 워제아니, 달라다라 워제아니.”
그러자 순식간에 모래알처럼 미세한 정육면체로 분해되는 ‘천둥의 눈’.
노파의 에테르 그물을 관통해 허공으로 솟아오르더니, 소용돌이치며 리를 향해 돌진했다.
“뭐야 저건?”
노파가 고갯짓 하자, 새로 소환된 거미원숭이가 입자를 붙잡으러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의 손을 ‘빙글’ 타고 돈 입자들은, 리의 입속으로 곧장 빨려 들어갔다.
“커어헉!”
입을 벌린 채 또다시 미친 듯이 몸을 떨어대는 리.
마지막 한 조각까지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나자,
팔에 남은 회전식 자물쇠 중 두 번째 자물쇠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때에에에엥!’ 맑고 긴 종소리를 내며 멈추더니, 이내 먼지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쩌저적, 쿵!’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천둥이 리의 몸에 내리 꽂혔다.
천둥에 스친 거미원숭이의 몸뚱이가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강렬한 천둥 불빛에 얼른 시선을 돌리는 노파.
“뭐지...?”
인상을 잔뜩 쓴 채 리 쪽을 바라보자,
리가 공중에 둥둥 뜬 채, 아기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달라다라 워제아니, 달라다라 워제아니!”
순간 주문을 멈추고 눈을 번쩍 뜨는 리.
‘퍼벅’하고 리가 쓰고 있던 고글이 터져나갔다.
리의 눈에서 노란색 빛이 불꽃처럼 뿜어져 나왔다.
기지개를 켜듯 팔다리를 대(大) 자로 쫙 펼치자, ‘쩌저적!’ 강렬한 플라스마가 리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쿵’ 번개에 맞은 조명 스탠드가, 목이 꺾이며 관중석으로 떨어졌다.
천천히 바닥에 내려서는 리.
어느새 파란 핏줄들은 사라져 몸은 말끔히 되돌아왔고, 손등에 생겼던 검은 두 줄도 다시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어깨를 타고 넘은 검은 두 줄이,
등 뒤에서 만나 리본처럼 묶였는데,
매듭 부분에 주먹 크기의 태양이 생성돼 이글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짧고 검었던 리의 머리카락은 긴 노란색 머리카락으로 변해, 마치 무중력 상태인 것처럼 허공에서 너울거렸다.
“재미있구나. 아니 재미있는 걸 넘어 이젠 놀랍구나.”
노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번개 한 줄기가 노파의 얼굴을 향해 순식간에 날아들었다.
얼른 머리를 기울여 피했지만 귓불에 맞아 귀가 찢겨나갔다.
“크으윽!”
왼쪽 귀를 붙잡은 채, 깜짝 놀라 리를 바라보는 노파.
리가 그녀를 향해 마치 총을 쏘듯 검지를 내밀고 있었다.
공중으로 빙글 백 텀블링하며 가로로 지팡이를 휘두르는 노파.
지팡이의 궤적을 따라 허공에 ‘에테를 볼’ 수십여 개가 주르륵 만들어졌다.
“라마미엔토 무르티투드(llamamiento multitud)”
바닥에 지팡이를 꽂으며 노파가 주문을 외우자, 거미원숭이 수십여 마리가 에테를 볼을 깨고 우르르 튀어나왔다.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송곳니를 드러낸 채 리를 향해 미친 듯이 돌진하는 원숭이들.
그들 사이로 노파가 지팡이를 활처럼 당기더니, 거대한 불화살을 쐈다.
“세파라씨온(separation)!”
리를 향해 곧장 날아오던 화살은, 노파의 주문에 갑자기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여러 개의 작은 화살로 갈가리 쪼개졌다.
그러더니 리의 얼굴을 향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벌집이나 되어버려라!”
지팡이를 두 손으로 꼭 붙잡은 채 고함을 지르는 노파.
흥분한 노파와 달리, 일련의 공격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는 리.
코앞까지 다가온 원숭이 무리가 발톱을 번뜩이며 자신을 향해 뛰어오르자, 그제야 왼손 손바닥을 머리 위로 펼쳤다.
순간, 원숭이와 화살들이 일제히 공중에 멈췄다.
이어 펼친 손바닥을 위로 튕기자, 대기가 ‘꿀렁’ 하더니 장풍에라도 맞은 듯 원숭이 무리가 뒤로 쭉 밀려났다.
“섬뢰(纖雷)!”
이들을 보며 외마디 주문을 외우는 리.
그러자 ‘빠지직’ 불꽃 튀는 소리와 함께 리의 다섯 손끝에서 수백 줄기의 번개가 일제히 쏘아져 나갔다.
‘쩌저저적!’
강렬한 번개에 원숭이들의 팔, 몸통, 다리가 그대로 찢겨 나갔고, 화살들은 그 자리에서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걸렸구만!”
그때, 리의 앞에 갑자기 등장한 노파.
리의 가슴에 손을 얹은 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리의 다리엔 어느새 허벅지까지 나무뿌리가 단단히 감겨 있었다.
멀리서 꽂은 노파의 지팡이가 바닥을 관통해 리를 결박한 것이었다.
“압소시온! 데, 에널ㅈ... 크헉!”
노파가 또다시 에테르 흡수 주문을 외우려는 순간,
갑자기 수백 발의 번개가 동시에 날아와 ‘파바바박!’ 노파의 몸에 박혔다.
원숭이들을 공격하고 흩어진 줄 알았던 번개가, 일제히 되돌아와 노파를 공격한 것이었다.
이제 보니 다른 번개들도 사라지지 않고 드라이아이스처럼 바닥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번개에 관통된 채, 리의 앞에서 몸을 부르르 떠는 노파.
번개는 마치 가시처럼 노파의 몸 여기저기에 박힌 채 사라지지 않았다.
“나를 죽이면... 크헉... 오발탄을... 찾을 수 없을...”
피를 토하며 힘겹게 말하는 노파.
리는 그녀를 공중으로 천천히 들어 올려 2루수 베이스 위, 경기장 한가운데에 띄웠다.
“있어.”
리가 주먹을 움켜쥐자, 땅바닥을 뱀처럼 맴돌던 번개들이 일제히 노파를 향해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악!”
또다시 번개에 미친 듯이 관통되는 노파.
번개가 모이며 점점 하얗게 빛나더니, ‘꽈직!’ 소리와 함께 폭발해 버렸다.
‘쏴아아아아!’
폭발 때문일까.
갑자기 경기장 하늘 위로 거대한 먹구름이 일더니, 열기를 식히기라도 하려는 듯 소나기를 퍼부었다.
‘끼아아아악!’
여전히 경기장은 관객들의 비명으로 가득했지만, 신기하게도 더 이상 전투기 날아다니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