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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 재추적

by 무딘

“참말로? 오발탄 선배가 환생 관리사를 죽였다고?”


환생관리국 사무실 옆, 임시 회의실에 모인 일권과 유니 그리고 리.


“아, 선배! 목소리 낮춰요! 확실한 증거도 없잖아요!”


유니가 얼른 일권의 입을 막으며 문밖을 살폈다.

다행히 다들 자기 일에 바빠, 별 관심 없어 보였다.


“워매, 여그 확실헌 목격자가 있는디, 증거가 뭣이 필요하당가.”

“우리는 뭐 목격자가 없어서 징계받았나요? 다들 봤잖아요. 리가 아무 짓도 안 한 거. 그래도 짜고 치면 다 징계받는 거잖아요. 무조건 물증이 있어야 한다고요, 물증이. 절대로 발뺌 못 할.”


‘키잉’, 콧바람을 내쉬며 얼굴을 찡그리는 일권.

리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비토가 리의 머리 위에서 짧은 발끝을 세운 채, 발레라도 하듯 빙그르르 돌았다.


“어휴, 여기들 모여계셨어, 징계 삼총사. 그래, 미리미리 쉬어둬야지. 앞으로 천년 넘게 뺑이쳐야 할 텐데. 킥킥킥”


그때, 환생 관리자 하나가 회의실로 고개를 쑤욱 내밀며 비아냥 거렸다.

일권이 그를 향해 주먹 감자를 먹였다.


“우덜 일은 우덜이 알아서 할랑 게, 좀 찌그러져 줄랑가?”

“풋, 곧 죽어도 자존심은. 꺼꾸리 너 부장님이 부르신다. 당장 튀어오래. 또 뭔 잘못을 했나 몰라. 킥킥킥.”


키득거리며 문을 닫는 환생 관리자.

유니가 뚫어질 듯 그를 쏘아봤다.


“아따, 또 왜 찾고 그러신댜.”


연신 뒷머리를 긁적거리는 일권.

그의 머리에 덥수룩하게 까치집이 생겼다.

그게 신기했는지, 비토가 얼른 일권의 머리로 넘어가 그의 머리카락을 들여다봤다.

그러자 일권이 짜증스럽게 비토를 손으로 밀쳐냈다.


“참,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왜 사람들이 일권 선배를 ‘꺼꿀이’라고 부르는 거죠?”

“갑자기? 이 시점에? 궁금한 것도 참 많다, 리는. 에효. 목 뒤 문신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겠어? 기껏 멋 낸다고 문신을 했는데, 타투이스트가 문신의 위아래를 거꾸로 그렸다나 뭐래나. 선배가 또 잘못 인쇄된 그림을 가져다준 거 아니겠어?”

“그거시 아니지. 그 오살노무 인간이 졸면서 그리다 본 께 그라고 된 거지. 월매짜리 문신인디. 쯧. 가설라무네, 시방 그런 쓰잘대그 없는 일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여. 참말로 오발탄이 형계의 끄나풀이믄 빨리 학실한 증거를 찾아야 한당께. 소명자료 제출 시한이 인자, 닷새 밖에 안 남았다고.”


그때, ‘웅웅, 웅웅’ 일권의 워치가 울어댔다.

환생관리국 부장의 호출이었다.

워치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일권.


“제일 확실한 건 오발탄을 잡는 건데... 마지막으로 그가 무슨 성당 같은 데 있었다고?”

“네. 높은 천장이 보였고 거기에 벽화가 그려져 있었어요. 서로를 향해 무기를 치켜든 게, 꼭 싸우는 장면 같았어요.”

“천정인디, 싸우는 장면이 그려 있다고라...”


일권이 팔짱을 낀 채 턱을 문질렀다.

비토가 일권의 앞으로 날아가 ‘웅웅’ 대는 일권의 시계를 가리키며 ‘왜 안 받는 거야?’라는 의미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비토가 손가락질하자마자 때마침 시계의 진동이 멎었다.


“그리고 천정 앞쪽에 ‘La Catedral’ 어쩌고 저쩌고 쓰여 있었는데, 모르는 말이라 정확히 기억이...”

“Catedral이믄 ‘성당’이 맞구만. 하, 가만있어봐 봐. 내가 분명 어디서 비슷한 걸 본 거 같은디. 천정에 싸우는 벽화가 그려진 성당 말여.”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를 쿡쿡 찌르며 고민하는 일권.


“일단 오발탄의 집부터 뒤져보는 게 좋지 않겠어요? 뒤져보면 뭐라도 흔적이 나오겠죠.”


그때, 일권의 워치가 다시 ‘웅웅’ 울어댔다.

또 부장의 호출이었다.


“워매, 자꾸 불러 쌌는 게 뭔가 단단히 꼬였는 갑네. 일단 그라믄 리는 오발탄의 숙소를 뒤져 불드라고. 나는 그 ‘Catedral’인가 뭔가를 찾아 볼랑게. 유니는 우덜이 딴 일 하는 거, 티 안 나고로 ‘대 환생일’ 자료나 학실히 정리해 두고. 근디 아까부터 겁나 정신 사나운 거, 이 토깽이 새끼는 뭐다냐. 뭐, 새로운 유행이여?”


손으로 짜증스럽게 허공을 휙휙 젓는 일권.

비토가 일권의 팔을 이리저리 피해 얼른 리의 스카프 속으로 쏙 숨었다.

유니가 그런 일권의 모습을 보며 인상을 확 찌푸렸다.


“에에? 하다 하다, 이제 헛것까지 보이시나.”

“자, 시간 없응게, 싸게 싸게 움직이드라고. 무브, 무브, 무브! 에, 또, 여보셔요. 부장님요, 네, 일권인디요...”


공손하게 전화를 받으며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일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유니.

리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 선배, 그 책 말이에요. ‘저승 4대 힘에 관하여’라는 책. 그거 누가 썼는지 알 수 있을까요?”


리가 회의실에서 나가려는 유니를 멈춰 세웠다.


“그거? 그걸 왜?”

“더 자세히 배우고 싶어서요. 생각보다 효과가 있더라고요.”

“그게 효과가 있어? 진짜? 왜 있지? 하긴 뭐 어련하시겠어. 하늘도 막 날아다니고, 마물이랑도 죽도록 싸웠다고 하고. 이젠 나도 포기했어. ‘미스터 리’를 머리로 이해하는 거.”


비토가 스카프에서 쏙 눈만 내밀고는, 일권이 있는지 없는지 이리저리 살폈다.


“글쎄, 그거 수운신이 쓰셨다고 들은 거 같은데. 아니다, 금운신과 같이 쓰셨다고 했던가?”

“수운신이라면, 이곳 중간계를 다스린다는 그 수운신 말이죠?”

“그래, 누가 쓰셨건 간에, 우리 같은 조무래기들이 직접 뵙기는 쉽지 않을걸.”

“흐음. 그래요? 아쉽군요.”


그때, 뭔가 떠올랐는지 ‘후다닥’ 달려와 리의 왼팔 옷깃을 걷어 올리는 유니.

아니나 다를까 두 번째 자물쇠도 사라지고 없었다.


“흠... 역시. 너, 진짜 조심해. 아무래도 이거 꼭 시한폭탄 같단 말이야.”


유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리를 보자, 리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회의실을 빠져나온 리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유니가 얼른 리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리, 장비실부터 들르자고. 내가 오발탄이 숙소 여벌 키를 어디다 숨겨 두는지 알거든.”

“아, 숙소 키요... 그거 굳이 없어도 될 것 같아요.”

“엥? 숙소에 가는 거 아니었어? 없어도 돼?”


유니가 눈썹을 치켜세우자, 리가 웃으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리의 손바닥 위로 탁구공 만한 ‘원형 구체’가 둥둥 뜬 채, 번개를 지직거렸다.

비토가 용접 마스크 같은 걸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


‘콰치직!’


리가 ‘전기 볼’을 도어록에 대자마자, 도어록이 망가지며 전원이 꺼졌다.

손잡이를 돌려 당겨봤지만, 걸쇠가 걸려 있는 듯 여전히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근데, 아까 그 사람 말이야. 일권 선밴가 뭔가.”


리의 귀 옆에서 검은 마스크를 쓴 채 주변을 정찰하는 비토.

리는 손바닥을 도어록에 펼쳐 대고, 걸쇠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문질렀다.

그러자 ‘털컥’ 걸쇠가 풀렸다.


“오! 진짜 됐어. 자석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복도를 살피는 리.

텅 빈 복도는 정적으로 가득했다.


“그 사람 내가 보이는 거 같더라. 원래 보이면 안 되거든. 나는 정령이라 내가 드러내는 사람한테만 보여야 하거든.”

“쉿!”


비토를 조용히 시키며 손잡이를 당기자, 스르륵 문이 열렸다.

텅 빈 복도를 잠시 돌아보는 리.

누가 볼 새라 얼른 집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와.”


오발탄의 숙소는 원룸형으로 길게 뻗어있었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빛 때문에 방안은 불을 켜지 않아도 충분히 밝았다.


방 중간쯤 놓인 일자형 테이블,

테이블과 ‘ㄱ’ 자를 이루며 벽 쪽으로 배치된 책장형 책상,

그리고 창문 옆에 가지런히 놓인 침대 겸용 소파를 빼면, 이렇다 할 장식도 없이 방은 단출했다.


“보일 리가 없는데, 어떻게 그 사람은 내가 보였을까?”

“쉿! 정신 사납게 자꾸.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삐졌는지 입을 비죽거리며 리의 스카프 속으로 휙 들어가 버리는 비토.


리는 창가로 다가가 잠시 창밖을 살폈다.

건물 10층 크기의 커다란 ‘암형문’이 널따란 광장 끝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그 뒤로 푸른 호수가 유유히 흘렀다.


“저게 암형문이군.”


잠시 형문 주변을 살펴보다 이내 시선을 거두는 리.

방을 훑어보며 천천히 테이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테이블에는 쓰다만 메모지와 꺼진 양초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남은 시간 1주. 필요한 천계환 수는?’


“천계환이라. 이것 때문에 마물과 내통했던 건가.”


리는 메모지를 넘겨 가며 꼼꼼히 살펴봤지만, 더는 아무런 내용도 남아있지 않았다.


테이블 위의 양초를 들어 이리저리 살피는 리.

특별한 점이 없어 내려놓으려는데, 뭔가가 ‘양초 받침대’ 밑에서 후다닥 튀어나왔다.


“으악! 벌레!”


비토가 기겁을 하며 소리치자, 얼른 책상을 내리쳐 벌레를 잡는 리.

순간, 리의 손바닥에서 가벼운 스파크가 튀더니, 테이블 표면색이 하얀색으로 싹 바뀌었다.


“어, 뭐야, 스크린이었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는 비토.

리는 메모지와 양초를 스크린 한쪽으로 치웠다.

바뀐 스크린 위로, 특정한 장소를 찍은 사진들과 그에 관한 설명이 차례차례 등장했다.


마치 땅따먹기 하듯 5가지 장면이 스크린 군데군데 나뉘어 표시되었는데,

그중 오른쪽 하단의 한 영역에만 빨간색 물음표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여긴 환생계 바다 같고, 여긴 낯이 익은 게 지난번 그 야구장 같은데? 그리고 여긴 무슨 성당처럼 보이고, 여긴 뭐야, 그리스 휴양지인가?”


어느새 탐정 안경을 걸친 비토가 안경을 당겨 쓰며 주절거렸다.


“아무래도 오발탄이 뭔가를 찾고 있었던 것 같은데...”

“빙고. 너도 똥멍청이는 아니구나. 나 월묘님의 날카로운 추리로 봤을 땐 말이야, 오발탄이란 작자는 5가지로 이뤄진 뭔가를 찾고 있었어. 그중 4가지의 위치는 파악했는데 아직 한 가지는 못 찾은 거지.”


마치 대단한 발견을 했다는 듯, 손가락으로 물음표를 가리키며 의기양양해하는 비토.

‘풋’ 리가 자신도 모르게 콧방귀를 뀌었다.


“에? 웃어? 돌머리 주제에?”


“띠리링, 띠링,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메시지 도착 음성이 들렸다.

테이블에서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는 리.

책상 위에 놓인 파피루스 하나가 끝부분을 번쩍이며 덜그럭거리고 있었다.


얼른 다가가 파피루스를 집어드는 리.

파피루스를 펼치자, 메시지 아이콘이 촐랑거리며 춤을 췄다.


“거, 아이콘 참 방정맞네.”


투덜거리는 비토를 무시하고 리가 아이콘을 누르자, 메일 창과 함께 암호를 넣으라는 팝업이 떴다.


“암호라. 오발탄이니까. 583인가. 아니면 오빠 세 번? 그것도 아니면 여기 주소가 암형로니까 글쎄... 뭐랄까... 에이 모르겠다, 아무거나 막 넣어봐!”


스크린을 보며 입술을 비죽거리는 리.

입력 제한이 걸릴 수 있으니, 아무거나 막 넣어볼 순 없었다.

그렇다고 오발탄에 대해 딱히 아는 것도 없었다.

워낙 악명 높은 빌런인지라 마주치지 않는 게 최선이었으니까.


‘텅텅텅!’


그때, 갑자기 문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는 리와 비토.


“저, 숙소 관리자입니다. 도어록 경고음이 떠서 왔는데요. 안에 계신가요?”

“리! 걸쇠!”


비토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리에게 속삭였다.

놀란 리는 발꿈치를 들고 황급히 문 쪽으로 다가갔다.


‘텅텅텅!’

“안에 안 계세요? 이게 왜 이러지? 망가진 거 같은데.”


문 안쪽에서 도어록에 손바닥을 대고, 조심스레 걸쇠를 다시 밀어 넣는 리.

그 옆에서 비토가 침을 꿀꺽 삼켰다.


‘털컥, 털컥’


그때, 관리자가 손잡이를 잡고 좌우로 돌렸다.


안쪽에서 그대로 몸이 굳어버리는 리와 비토.

땀 한 방울이 리의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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