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금동대향로 동물백과> 책 리뷰
2주전 주말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다녀왔습니다. 재치있으면서도 진지하게 만든 다양한 독립출판물을 볼 수 있어 반갑고 즐거웠어요. 다음 일정이 있어 오래 머물지 못해 아쉬웠는데요. 둘러보다가 반가운 책 한 권을 발견했습니다. ‘유물시선’ 출판사에서 발간한 <백제금동대향로 동물백과>란 책입니다.
책의 큰 주제는 제목처럼 ‘백제금동대향로’인데요. 이 책의 진짜 매력은 대향로에 있는 동물 캐릭터를 집중 소개하기 때문입니다.(일부 인물 조각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책의 전체 구성은 대향로의 바닥에서 시작해 ‘용 → 연꽃 → 산과 5악사 → 봉황’을 ‘기승전결’로 짜놓았습니다. 각 부분에 있는 동물 캐릭터 이름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발간한 도록을 기본 참고하고, 그중 이름이 따로 없는 동물들에게는 새로운 이름을 선물했죠. 눈에 띄는 동물 이름을 몇 개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몸을 낮춘 새, 뛰는 새, 물살이를 삼키는 동물, 긴부리새, 새끼를 품은 사자, 외뿔새….등’ 이 외에 인물들에게도 딱 들어맞는 이름을 붙여주고 설명하고 있어요. 원래 이름 있는 아이들은 책에서 자기 이름을 불러줘 기뻤을 테고, 책 작업 전까지 이름이 없었던 아이들은 새로 얻은 이름이 무척 반가웠을 것 같습니다.
이런 종류의 도록들은 대상 유물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대개 사진을 싣습니다. 전체와 부분 사진을 정밀하게 촬영해 고해상도 사진을 보여주는 방법은 유물의 외양을 알려주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고요. 그런데 <백제금동대향로 동물백과>는 동물 캐릭터 하나하나를 직접 일러스트로 그려 보여주고 있어요. 책 만드는 과정을 늘 옆에서 보는 입장에서 <백제금동대향로 동물백과>가 어떤 수고와 노력, 시간을 들여 세상에 나왔을지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때론 실제 장면을 찍은 사진보다 손으로 그린 그림이 대상을 좀 더 사실적으로 전달할 수도 있으니까요.
친절하게 지은 이름과 직접 그린 그림이 캐릭터 소개와 만나 완성한 책이에요. 유물을 소개하는 수많은 책들과는 다른 줄에 서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백제금동대향로 동물백과>가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잠깐 백제금동대향로가 어떤 보물인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우선 29년 전 겨울에 있었던 일입니다. 1993년 12월 부여 능산리 절터에 주차장을 만드는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공사를 본격 시작하기 전 우선 해당 장소에 대한 발굴이 있었는데요. 논바닥을 파던 발굴 담당자들 눈에 이상한 물건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백제금동대향로’가 1,400년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온 순간입니다. 그때가 12월이었는데요. 발견 당시 향로 뚜껑과 몸통이 분리되어 있어 처음엔 정확히 어떤 물건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혹여 이 보물이 다칠까싶어 차가운 논바닥에 엎드려 종이컵으로 조심스럽게 꺼냈다고 해요.
대향로는 여러 이유로 당시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땅에 묻혀 있었는데도 거의 완벽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거든요. 툭 건드리면 부러질 것처럼 생긴 봉황의 꼬리와 용의 다리가 온전히 붙어 있는 거예요. 아마도 땅에 묻히는 순간 다른 곳이 아니라 진흙 속으로 떨어져 발견되기까지 진공 상태를 유지했기 때문에 손상이 없었던 걸로 추정합니다.
그때 이 보물이 떨어진 장소가 진흙이 아니었다면, 훗날 바로 그 장소에 주차장을 만들 계획이 없었다면, 한국전쟁 때 이곳에 폭탄이라도 떨어졌다면, 발굴 담당자의 세심한 노력이 없었다면….. 우린 지금도 이 대향로의 존재을 전혀 모르고 있겠죠. 수많은 우연과 우연이 겹쳐 보물을 지켜냈습니다.
대향로는 디자인도 대단했습니다. 가장 위에 올라간 봉황부터 가운데 산과 연꽃 모양, 바닥의 용 모양까지 어떻게 이런 모양을 생각했을까, 제작은 또 어찌했을까 궁금하고 놀랍기만 합니다.
대향로의 높이는 61.8cm, 무게는 11.8kg인데요. 백제인들은 이 보물 안에 커다란 세계관을 모두 넣었습니다. 보고 있으면 스토리가 흐르는 것도 같고. 커다란 우주를 보는 느낌도 드는데요.
저도 오래 전에 국립부여박물관에 가서 한참 보고 왔던 기억이 납니다. 어둑한(이라고 기억합니다.) 전시실에 우뚝하니 선 대향로 앞에 무릎을 꿇고 보고, 또 봤었죠. 그때 기억이 강렬했는지 퍼블리셔스 테이블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무척 반가웠던 거고요.
책의 시작 페이지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유물시선은 한국의 유물을 과거에 두지 않고 동시대로 가져온다.’ 누가 만들었는지 유물시선의 정신을 명쾌하게 정리한 선언처럼 느껴졌어요. 한국 유물을 향한 유물시선의 다음 시선이 어디로 향할지 무척 궁금합니다.
책을 구입하면서 여쭈니 <백제금동대향로 동물백과>가 최근 나와 아직 정해진 건 없다고 하네요. 부디 귀한 우리 유물에 유물시선의 다음 시선이 빨리 닿아 다음 결과물이 나오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