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는 언제나 굶주려 있다.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이끌려 우연찮게 내셔널 지오그래픽 영상을 보게 되었다. 평소에 동물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런 영상을 직접 찾아본 적은 없었는데, 꽤나 자극적인 아프리카 야생동물들의 생활은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 질 만큼 흥미로웠다. 그렇게 나의 검색창은 그들로 가득 차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프리카 초원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밀림의 왕인 사자다. 생각했던 것보다 지능적이고 사회적인 그들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는데, 일단 나는 사자로 태어나면 항상 쉽게 사냥하고 쉽게 배부른 삶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놀랐던 점은 '처형'이란 개념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왕위에 오르기 위해선 족보도 족보지만 신체적인 능력을 아마 최우선으로 여기는 듯했다. 성체 사자가 본인의 새끼인 사자를 물어 죽이는 장면을 봤다. 짐승이라서 사리분별이 안 되는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살해당한 그 새끼 사자는 다리를 절뚝이고 있었고, 치열한 야생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처형'을 시키는 것까진 그들만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됐지만 흠칫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새끼를 죽인 사자가 그 시체를 먹는 것이 아닌가? 그 장면에서 경악했다. 동족을, 그것도 본인의 새끼를 먹다니! 내레이션에선 그 사자가 사이코패스의 성향이 있다고 말한다. 다 똑같아 보이는 사자 무리에서도 이렇게 특이성향을 가진 사자들이 종종 있다고 했다. 여태 사이코패스는 사회적인 공간이 어느 정도 확보된 환경에서 돌연변이처럼 나타나는 모습으로 알고 있었는데, 사자들의 세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회성이 깊은 듯했다.
둘째로는 앞서 말했던 사회성의 일부인데, 사자들은 항상 배부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치열하게 살아간다. 정말 극한의 상황이 오면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에 스스로를 드러낸다. 흔히 우리는 "이빨 빠진 호랑이"라는 말을 종종 쓰곤 하는데 한 물간 사람을 칭한다. 사자도 예외가 없다. 늙어서 예전만 못해진 수사자는 무리에서 철저히 버려진다. 혼자 떠도는 사자는 굶주림에 지쳐있지만 살기 위해 사냥을 감행한다. 무시무시해 보였던 사자는 얼마나 굶주렸는지 뼈가 다 보일 정도로 메말라 있다. 아마 거의 죽기 직전이었던 것 같다. 걷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던 수사자는 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물소에게 달려든다. 하지만 물소도 상황판단을 하는 편. "이빨 빠진 사자"는 그들에게 큰 위협이 되질 않았기에 큰 뿔로 들이받는다. 이미 굶주릴 대로 굶주려 뼈만 남은 사자는 처참하게 짓밟히다가 죽는다. 간혹 늙은 사자들이 인간을 공격하고 심지어 먹기까지 하는데, 이는 쇠퇴한 스스로의 신체능력을 인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다 손쉬운 사냥감을 찾고 찾다가 인간을 목표로 삼는다고.
이처럼 아프리카 초원에 최상위 포식자로 알고 있던 사자도 꽤나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모든 게 쉽지 않았고, '밀림의 왕' 이란 칭호를 얻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모험을 하기도 하니까. '라이언킹'에서 설정된 사자들의 모습들은 그저 애니메이션에 불과하지 않았다는 걸 느끼면서, 동물들의 세계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 있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인간의 나약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사냥하기 가장 수월한 존재라니. 만약 인간이 사고하는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면 진작에 멸종했겠구나 싶었다. 이 말은 즉, 우리는 매 순간 사고해야 함을 의미한다. 끊임없이 무언가에 대해 고뇌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이점을 최대로 활용해야 한다. 아마 인간 세계에서 약육강식의 의미는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그에 미치지 못한 사람을 잡아먹는 게 아닐까. 또 사자로부터 배워야 할 부분도 많다. 준비되지 않은 자는 더 성장할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 힘이 없는 우두머리는 철저히 배제당하는 것. 때론 혼자서 치열하게 목숨까지 걸어 싸우는 것. 다소 잔인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치열하다고 생각하는 일상들이 사자에겐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내셔널지오그래픽 #라이언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