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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건하 Jul 05. 2021

그의 이를 부숴버렸다.

그래서'형'이었다.






 내가 한참 군생활의 끝을 달리고 있던 2012년 말. 군대와 관련된 뉴스를 자주 접했다. 계급사회의 특성을 악용하는 사례들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음을 이제야 공론화하기 시작했고, '선진병영'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덕분에 군대는 비상이 걸렸다. 여태까지 보고도 못 본 척하던 사람들이 전혀 몰랐다는 듯 분노하는 연기를 시작했다. 일명 '마음의 편지'(보복이 두려워 쉽사리 이야기할 수 없는 내용들을 글로 적어 곳곳에 배치된 함에 넣어두면, 간부들이 이를 취합해 조치를 취한다.)라는 묵살되던 제도가 급격히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병사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온갖 위반 사항들을 철저히 감시하고, 처벌하기 시작했다. 


군대 버전의 ‘범죄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 무렵 어느 우중충한 날씨였다. 신막사의 완공으로 인해 구 막사 철거작업을 주야장천 하던 시기였고 당시 병장이었던 나는 후임병들보다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각목으로 만들어진 청소도구 거치대를 곡괭이로 내리쳐서 부수는 일이었다. 


곡괭이를 힘껏 드는 순간, 퍽 하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당시 나보다 형이었지만 동기였던 동료가 그대로 곡괭이에 맞는 소리였다. 부대 내에서 제일 친한 동료였기에 온갖 극단적인 감정이 머릿속을 교차했고, 난 당장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때 본인의 치아가 피와 뒤섞여 뱉어질 정도로 엉망진창이 된 그가 나에게 차분히 속삭이듯 말했다. 


“이건 나 혼자 부딪혀서 다친 거야. 절대로 네가 했다고 하지 마.” 


그렇게 그는 군 병원으로 이송됐고, 나는 헌병대로 끌려갔다. 


 어느 취조실 같은 곳에 나와 헌병대 수사관(상사) 뿐이었다. 그는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듯 싶었다. 나를 보자마자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범죄자 취급하기 바빴다. 무서웠다. 정말로 죄를 지어 끌려온 것만 같았다. 그렇게 욕만 하던 수사관은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너 걔 왜 때렸어?"


 난 너무 억울했지만 내 손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은 분명했기에, 또 살벌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수사관은 빨리 대답하라며 재촉했고 난 입을 열었다. 


"때린 거 아닙니다. 저랑 제일 친한 동기인데 제가 왜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수사관은 애초에 내 말을 듣지도 않았고, 본인이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그럴 작정인 듯 보였다. 그가 원하는 대답은 "제가 때렸습니다."였다. 시기가 시기인만큼 일방적 폭행으로 사건을 일찍이 종결하고 실적을 챙기려는 심산이었다. 


이런 억울한 상황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군인 신분의 내 모습이 더없이 초라해졌다. 그때 내 마음을 듣기라도 했는지, 문 밖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주임원사님(내가 속한 부대의 간부님이자 수많은 병사들 중 내 이름을 기억해주던 고마운 분.)께서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아니, 애 말을 듣지도 않고 그렇게 몰아붙이는 게 어딨습니까? 다친 병사 말도 들어봐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제야 수사관은 헛기침을 하며 다친 병사의 말을 듣고 다시 이야기 하자며 자리를 떴다. 이송되었던 형은 '그 친구는 아무런 죄가 없다, 내가 조심하지 못해서 혼자 다친 거고 그는 군생활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하고 있는 가장 친한 동료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지옥 같았던 헌병대의 수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다행히도 형은 군 병원에서 임플란트를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 형의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부모님은 오히려 다친 아들보다 나를 걱정하셨다. 많이 놀랐을 텐데 괜찮냐며, 마음 잘 추스르라고. 


 이 사건을 통해 나는 평생을 증오할 집단과 평생을 미안해하고 감사해야 할 사람을 얻었다. 상관의 눈치만 보기 바쁜 빌어먹을 계급사회에 속해 못된 것들만 보고 배운 시간이 너무나도 아깝다. 하지만 그 와중에 얻은 것이 있다면 '사람'이 아닐까 싶다. 


본인도 놀랄 만큼 크게 다친 상황에서도 나를 먼저 챙겨주는 사람. 동기였지만 그는 '형'이었다. 나이만 많은 형이 아닌 진짜 형 같은 형. 나라면 그 상황에서 절대로 그런 마음을 쓸 수 없을 것 같아서. 많이 아프고 힘들었을 텐데 단 한 번도 티 내지 않아 줘서.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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