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건하 Apr 29. 2021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무념무상.


나의 평일은 매번 똑같다. 퇴근하고 한두 시간 쉬다가 운동을 하러 간다. 다시 돌아와 늦은 저녁밥을 먹고 습관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두어 판 한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지금처럼 글을 쓰거나 책을 읽다 잠이 든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지만 그 양과 질은 절대로 비례하지 않는다. 퇴근 후부터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아마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쉬고 싶으면 곧장 쉬고, 하고 싶은 운동을 하고, 하고 싶은 만큼 게임을 하며, 읽고 싶은 만큼만 책을 읽을 수 있으니까. 업무시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어제 내가 뭘 했는지 생각해보면 하체운동을 한 것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에 거의 똑같던 일상이 약간 변했다. 평소엔 종종 운동을 가기 싫으면 안 갔다. 운동 자체에 스트레스를 심어주기가 싫었다. 그런데 요즘엔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가야만 한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지 않는다. 의자가 옷걸이로 변한 지 좀 됐을 정도로. 또 책은 아예 펼쳐보지도 않으며 침대에 누우면 곧바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갑자기 왜?


운동을 할 때면 잡생각이 떠오를 수가 없다. 당장 내 근육이 힘들고 아픈 것만 생각하니까. 게임, 책, 핸드폰을 들여다보지 않게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나를 생각하게 만들만한 재료를 아예 차단하는 중.


그렇다. 나는 요새 아무런 생각을 하고 싶지가 않다. 정말 단 한 가지도 머릿속에 들이고 싶지가 않다. 딱히 이렇게 될만한 이슈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생각의 미니멀리즘을 지향하고 있었다.


 머릿속을 청소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받았던 스트레스와 부담감, 긴장감 같은 것들이 더 이상 채워질 공간이 없어서. 그것들 때문에 지쳐서 못 버틸 만큼 힘든 건 절대 아닌데, 앞으로 더 괴로운 것들을 받아내기 위한 인저리 타임이라고 해야 하나.


며칠 뒤면 괜찮아졌다는 듯 다시 게임도 하고 책도 읽게 될 거란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생각’ 자체를 거부하는 일상이 나쁘지만은 않다. 어차피  다시 스트레스를 받으러 가야 하니까.





이런 내 모습이 사실은 되게 불쌍한 건데. 매일 같이 즐겨하던 SNS도 안 하고, 여러 카톡방에서도 조용한데 아무도 모르니까, 지금처럼 나 혼자 조용히 정리하다 돌아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