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무상.
나의 평일은 매번 똑같다. 퇴근하고 한두 시간 쉬다가 운동을 하러 간다. 다시 돌아와 늦은 저녁밥을 먹고 습관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두어 판 한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지금처럼 글을 쓰거나 책을 읽다 잠이 든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지만 그 양과 질은 절대로 비례하지 않는다. 퇴근 후부터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아마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쉬고 싶으면 곧장 쉬고, 하고 싶은 운동을 하고, 하고 싶은 만큼 게임을 하며, 읽고 싶은 만큼만 책을 읽을 수 있으니까. 업무시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어제 내가 뭘 했는지 생각해보면 하체운동을 한 것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에 거의 똑같던 일상이 약간 변했다. 평소엔 종종 운동을 가기 싫으면 안 갔다. 운동 자체에 스트레스를 심어주기가 싫었다. 그런데 요즘엔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가야만 한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지 않는다. 의자가 옷걸이로 변한 지 좀 됐을 정도로. 또 책은 아예 펼쳐보지도 않으며 침대에 누우면 곧바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갑자기 왜?
운동을 할 때면 잡생각이 떠오를 수가 없다. 당장 내 근육이 힘들고 아픈 것만 생각하니까. 게임, 책, 핸드폰을 들여다보지 않게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나를 생각하게 만들만한 재료를 아예 차단하는 중.
그렇다. 나는 요새 아무런 생각을 하고 싶지가 않다. 정말 단 한 가지도 머릿속에 들이고 싶지가 않다. 딱히 이렇게 될만한 이슈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생각의 미니멀리즘을 지향하고 있었다.
머릿속을 청소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받았던 스트레스와 부담감, 긴장감 같은 것들이 더 이상 채워질 공간이 없어서. 그것들 때문에 지쳐서 못 버틸 만큼 힘든 건 절대 아닌데, 앞으로 더 괴로운 것들을 받아내기 위한 인저리 타임이라고 해야 하나.
며칠 뒤면 괜찮아졌다는 듯 다시 게임도 하고 책도 읽게 될 거란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생각’ 자체를 거부하는 일상이 나쁘지만은 않다. 어차피 난 다시 스트레스를 받으러 가야 하니까.
이런 내 모습이 사실은 되게 불쌍한 건데. 매일 같이 즐겨하던 SNS도 안 하고, 여러 카톡방에서도 조용한데 아무도 모르니까, 지금처럼 나 혼자 조용히 정리하다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