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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희 Mar 08. 2019

KBS야 제발

공영성의 늪


8살부터 역사(만화)책을 끼고 살았던 나에겐 반가운 방송이었다. 잠시 역사, 사회 선생님이었을 때의 고민이 이 프로에 녹아있어 더 눈길이 가기도 했다. <도올아인 오방간다> 얘기다.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고 세대를 뛰어넘으며 소통하고 교감하는 신개념 하이브리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소개된 <도올아인 오방간다>는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강의의 틀에 딱 맞는다. 교수자-학습자 구도가 방송에 드러나고 자연스레 강의목표와 교수전략도 등장한다.

<도올아인 오방간다>의 강의목표
- '우리는 왜 역사를 알아야 하는가?에 답하기
- 역사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바라보기

<도올아인 오방간다>의 교수전략
- 인물과 사건에 집중해 서사구조를 만든다
- 강의와 휴식의 균형에 힘쓴다



<도올아인 오방간다>는 트렌디하게 잘 짜여진 강의다. 도올과 방청객 말고 다른 등장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둘만 있었다면 일방통행 강의가 되었을 것이다. 도올은 상대적으로 옛스런(?) 사고를 가진 교수자. 방청객은 학습자다. 유아인은 용감한 학습자이며 동시에 연결자다. 그는 젊은 세대를 대변한다. 그 덕에 절대 다수임에도 선뜻 질문하지 못하는 수동적 학습자는 사라진다. 학습자는 의문이 드는 걸 바로 질문한다. 유아인은 토론이 과열된다 싶으면 중재자 역할도 하고 도올의 뜬구름을 정리해주는 센스도 발휘한다. 오방신은 휴식을 담당한다. 도올이 어려운 말을 하면 퉁명스럽게 질책한다. 그의 노래는 강의 내용을 담았지만 편안하다.



만약 대학 강의였다면 수강생이 넘쳤을 것이다. 역사를 통해 현재의 고민을 다루는 강의, 자유로운 대화 분위기, 권위를 내려놓은 교수자, 휴식의 보장. 학교에선 참신한 강의다. 그러나 방송에선 익숙하다. 지금은 단물이 다 빠진 강연 프로그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작진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신개념 하이브리드 버라이어티라고 꾸역꾸역 적은 듯하다. 기존의 것에 화려한 포장지만 씌운 셈이다.



신선함을 찾기 위해 '역사와 현재의 연결'에 방점을 찍었다. 도올과 유아인의 대화, 민요와 재즈의 결합으로 역사와 현재, 세대 간 소통을 이끌겠다는 기획 의도가 참신하다는 말. 결국, 모호한 포맷 설명만 남았다. 현재의 고민을 잘 다뤘다 보기도 어렵다. 방송이 끝나고 남는 건 역사 지식 뿐이다. 다른 역사 프로와 다른 점을 찾기 힘들다. (물론, 특별 기획 프로에서 포맷의 신선함은 정규 프로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한마디로 KBS만의 다채로운 도전이었다. 도올과 유아인의 투톱 체제, 민요와 재즈의 콜라보, 바이 섹슈얼한 오방신까지. 눈치 보면서 발버둥 치는 모양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공영방송의 이미지' 속에서 변화를 시도하려니 여전히 촌스러울 수밖에. 자막도 교수자도 포맷도 고전적이다. 공영성을 위해 어쩔 수 없다지만 촌스러움을 벗어내는 과감한 시도도 필요하다. 방송에서 말했듯이 스스로 인식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공영성을 부수고 새롭게 짠 그들만의 틀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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