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가 15개월 무렵이다. 그때면 이제 좀 걷기 시작해서 뒤뚱뒤뚱 걸어 다닐 때이다.
엽서를 보니 한 장은 내가 아이에게 쓴 것, 한 장은 남편에게, 한 장은 남편과 아이가 같이 그린 그림엽서였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내가 아이에게 쓴 편지.
To. 사랑하는 하은
하은아 안녕.
지금쯤이면 네가 말을 하고 있겠지? 글을 읽길 바라는 건 엄마 욕심일듯해.
오늘 아빠랑 하은이랑 장욱진 미술관에 왔어. 넌 피곤한지 아빠 등에 업혀 있다.
바람이 차서 감기에 걸릴까 걱정이지만 너랑 다니고 싶은 곳이 너무 많구나.
하은아.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커서 아빠랑 셋이 재밌게 여기저기 다니면서 살자.
사랑해 하은아.
2022.12.11(일)
-엄마가-
편지를 읽다가 '글을 읽길 바라는 건 엄마 욕심일듯해' 부분에서 웃음이 나왔다. 그때 무슨 생각으로 글까지 읽길 바랐을까. 지금 말 잘하는 거에도 참으로 감사하다.
'정말 욕심을 많이 부렸었구나'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내 친정 근처에 있는 곳이다. 문화생활을 좋아하는 남편이 가자고 해서 갔던 기억이 새롭다. 난 이곳 근처에서 40년 넘게 살았고 미술관이 있는지도 알았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
추운 겨울 남편이 아기띠로 아기를 등에 업고 미술관에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갈수록 기억을 잘 못해 그때 일이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그래서 아이와의 추억을 기록하려고 브런치에 열심히 기록 중이다. 가끔 브런치 작가님들 글을 읽다가 몇십 년 전 일을 마치 어제 일처럼 글로 옮기시는 분들을 보면 기억력에 감탄하곤 한다.
미술관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건물이 나오지 않고 드넓은 마당이 나온다. 여기저기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고 저 멀리 하얗고 예쁜 건물이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미술관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장욱진님그림이 여러 층에 걸쳐 전시돼 있다. 그림은 주로 가족이나 동물 등이며, 그림책에 나오는 그림처럼 순수하게 표현돼 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어떤 그림을 보고 그림이 너무 순수해서 눈물이 났던 기억이 소중하게 남아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지금까지 왜 몰랐을까.
장욱진 <가족>
지하로 내려가니 화가의 그림이 흰 바탕에 검은 테두리로 여러 종류가 작은 종이에 그려져 있다. 옆에는 색연필과 크레파스도 놓여 있다. 아이들이 방문해서 색칠을 해 볼 수 있도록 마련해 놓았다. 한편에는 엽서가 있었다. 편지를 작성해서 빨간 우체통에 넣으면 언젠가 당사자에게 보내주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그곳에 앉아그림이 그려져 있는 흰 종이에 색연필로 색칠도 하고 엽서에 편지도 썼다.
추운 날이었고 아기가 어렸고 그때 참 행복했던 것 같다. 그 순간을 엽서로 남기고 싶어서였을까. 그 순간을 글로라도 잡고 싶었을까. 난 어쩌면 그런 마음으로 편지를 작성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잊었다.
1년 4개월 후인 어느 날 그 편지는 나에게 도착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었다.
편지를 받아보니 기분이 묘했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보낸 편지라......
편지를 읽으며 이렇게 예쁜 아이와 사랑하는 남편과 건강하게 살고 있는 현재에 감사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엽서를 들이밀었다.
"이게 뭐야?"
엽서를 보던 남편이 말했다.
"이거 하은이가 그린 편지잖아."
남편한텐 하은이뿐이 안 보이나 보다.
"여기 내가 당신한테 쓴 편지도 있잖아."
나는 내가 남편에게 작성한 엽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
역시나 딸아이가 우선인 남편에게 살짝 서운하긴 하지만 지금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