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가기 싫어. 선생님 싫어.
25개월 아기 이야기
저번 친정에 갔을 때 일이다. 친정에 가면 나는 하은이와 작은 방에서 같이 잔다. 불을 끄고 잠을 청하는데 갑자기 하은이 어린이집 생활이 궁금했다.
"하은아 어린이집 좋아?"
나는 당연히 하은이가 "좋아"라고 말할 거라 기대하고 질문했다. 그런데 답변은
"어린이집 가기 싫어. 선생님 싫어"였다.
"하은아. 왜 어린이집 가기 싫어? 선생님 싫다고?"
그동안 어린이집을 잘 다니고 선생님을 보면 반가워서 뛰어가 안기던 아이라 갑자기 무슨 일인가 걱정이 됐다. 질문에 하은인 답이 없었다.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몇 분 있다가 하은이가 입을 열었다.
"내가 유주를 때렸어."
'이건 무슨 소리지?' 나는 갑자기 어리둥절했다. 유주는 하은이 같은 반 남자아이다.
"유주를 때렸다고? 그래서 선생님한테 혼났구나. 그래서 가기 싫은 거야?"
"응"
나는 곰곰이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됐다. 그리고 친구를 때린 건 잘못한 일이니 그것부터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은아. 친구를 때리면 안 돼. 그러니깐 선생님한테 혼나는 건 당연한 거야."
내 말에 하은인 답이 없었다. 그렇게 아기와 함께 잠이 들었다.
다음날 서울로 올라왔고 진짜 있었던 일인지 궁금해서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하은이가 그래요? 그런 일 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하은이는 한 반에 선생님이 두 분 계시고 보조 선생님도 한분 계신다. 아마 다른 선생님한테 혼난 것 같다.
"어머니. 그리고 제가 내일은 휴가예요."
하은이는 워낙 선생님을 좋아하고 잘 따른다. 일주일 정도 어린이집을 안 간 상황에서 선생님도 없는데 아이를 보내기 곤란했다. 오랜만에 가면 선생님만 졸졸 따라다닌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하은이에게
"하은아. 어린이집 가야지."
"어린이집 가기 싫어. 선생님 싫어."
결국 담임 선생님도 안 계시고 아기도 가기 싫다고 하여 어린이박물관에 놀러 갔다. 한참 놀고 있는데 어린이집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다. 반 선생님이 하은이 안 온다고 전화하셨나?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다.
"하은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저 원장입니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네. 어머니. 하은이가 오랜 시간 어린이집 안 와서 궁금해서 전화드렸어요. 무슨 일 있나요?"
난 그동안 쌀 받으러 친정을 갔다가 어린이집 코로나로 친정에 더 있게 됐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하은이가 등원을 거부하는 것을 말씀드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의논차 이야기를 했다. 왜냐하면 난 정말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원장님. 사실 하은이가 요즘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그러네요. 유주를 때렸다는데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원장님이 대답했다.
"어머니. 제가 CCTV를 확인해 보는데 결단코 하은이가 선생님한테 크게 혼나거나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네. 원장님. 전 선생님이 혼내는 건 친구를 때렸으니 당연해요. 선생님을 탓하는 건 아닙니다. 단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기 싫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머니. 아이가 어린이집에 오는 것도 단체생활입니다. 이렇게 장기간 빠지는 건 어린이집 적응과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기 싫다고 다 들어줘도 안되고요. 내년에는 말도 더 잘하고 자기주장도 더 세질 텐데 아이 말을 다 들어주면 내년엔 어린이집 보내기 더 힘들어집니다. 아이가 가기 싫다고 하면 엄마 아빠도 매일 회사 가듯이 너도 어린이집 가야 하는 거야. 가기 싫다고 안 가는 게 아니야.라고 단호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래서 오히려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더 잘 오고 적응도 잘한답니다."
원장님의 답변을 들으니 고민이 해결되고 하은이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도 알게 됐다. 내가 원한 건 이런 답변이었다.
"원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어린이박물관에서 잘 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은아. 내일은 어린이집 가는 거야."
"어린이집 가기 싫어. 선생님 싫어."
"하은아. 아빠도 매일 회사 가지? 엄마도 볼 일 있어서 나가고. 하은이도 어린이집 가야 돼. 가기 싫다고 안 가는 거 아니야. 알았지?"
"응"
신기하게 하은이는 수긍했다. 다음날 아침 하은이는 별 일 없이 등원했다.
쪽쪽이를 떼는 것도, 동영상을 안 보여 주는 것도, 어린이집 등원하는 것도 해보니 결국은 내가 결심하면 되는 거였다. 어떡하지? 이러면서 전전긍긍하면 아이도 더 떼를 쓴다는 걸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됐다.
며칠이 지났다. 하은이가 혹시나 어린이집에서 친구를 때릴까 걱정이 된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하은아. 친구 때리면 안 돼. 절대로 때리면 안 돼."
그러자 하은이가 답했다.
"유주한테 미안하다고 했어."
어른처럼 대답하는 하은이의 말에 깜짝 놀랐다. 말을 이젠 잘하는구나. 많이 컸구나.
며칠 전엔 또 "선생님 무서워" 그런다. 무섭다니 또 걱정이 된다. 그런데 또 한참 있다가 "아빠 무서워" 그런다. "아빠가 왜 무서워?" 그랬더니 "아빠가 공 뺐었어." 그런다. 하은이는 가끔 집 거실에서 아빠와 공을 차며 축구를 한다.
아이의 말을 들으며 '무섭다'는 말이 어떤 뜻일까? 고민해 봤다. 그리고 내가 너무 아이 말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은인 25개월이고 말을 배우고 있으며 완벽한 말을 구사하지 못한다. 그리고 어른처럼 말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른 말을 듣고 따라 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 의미가 하은이는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앞으로는 아이가 하는 말에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