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6일 독서모임
안녕하세요, 영감을 나누는 공간 <치즈(Cheese)>의 건킴입니다.
요즘의 무더위를 다들 잘 이겨내길 바랍니다...!
이번에도 너무 영감 가득한 이야기가 많아서 짧게나마 정리해보았습니다.
건킴 -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저자: 헬렌 켈러
혜원 - [깊이에의 강요] 저자: 파트리크 쥐스킨트
은선 - [이별의 푸가] 저자: 김진영
정한 - [배를엮다] 저자: 미우라 시온
아영 - [만남이라는 모험] 저자: 샤를 페팽
성미 - [세상의 끝에 있는 너에게] 저자: 마리꼬드리
강군 - [맛] 저자: 로알드 달
원익 - [싯타르타] 저자: 헤르만 헤세
준호 - [문제해결연구소] 저자: 사토 오오키
4개의 단편들 - 예술가 주인공의 작품이 전시 되어도 사람들/ 평론가 들이 깊이가 없다고 비판한다. 그녀는 깊이를 찾아다니다가 붕괴되어 자살을 결심한다. 죽음에 이르고 그 평론가는 다시 그녀와 그 평론가는 다시 그녀의 작품을 평론한다. 평론가는 그녀가 깊이를 찾는 것에 강박하여 죽음에 이른게 하나의 예술작품 처럼 여기며 재해석한다.
여기서 나오는 예술에 대한 ‘깊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깊이가 없는 예술은 가치가 없는가? 에 대한 질문이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 작품의 상징성에 대한 고찰이 삽입되어있어야 한다. 예) 부패한 사회를 비판하는 의미, 슬픔 혹은 쾌락을 극적으로 표현해서 관측자가 그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함 등등
- 작가의 인생 서사가 흥미로워야 되며 그 서사가 작품과 연동되어 보는이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깊이는 주관적이고, 깊이가 있다 한들 대중은 그 깊이에 대하여 관심 없는 경우가 다분하다고 생각한다. 무라카미 타카시, 이우한 작가, 쿠사마 야요이, 베어브릭 등등이 깊이가 없는 작품으로 보는 사람들은 깊이를 못 보는 사람일 뿐 작품들이 깊이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대중들은 수면 위만 보며 수질을 논하고 수중 생물에 대하여 떠들어대는 머저리일 뿐이다.
‘인연’이란 강가에 우연히 갔는데, 마침 떠내려오는 바구니를 건지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 한다.
또한 이별이란 그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연인관계에서의 이별은 거의 그 상대방이 죽음에 이르는 것과 별반 다를바가 없다. 다시 만나지 못하고 이야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과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0%가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수 있는 사전을 만드는 작업에 진심인 사람들의 회사생활이야기 사소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합심하여 사전을 만든다. 사전이란 배와 같다. ‘언어의 배’이다. 두 언어(국가)를 엮는 존재이다.
사전을 만드는 사람이 느끼는 희열은, 특정 단어가 어떻게 번역되는지 자신이 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흥미로운 관점인 것 같다.
만남이란 두 사람의 충돌이다.
두 사람의 충돌이 일어나면 각자의 궤적이 바뀌는 것과 같다. 하지만 모든 인간관계의 만남이 ‘만남’이 아니라 ‘마주침(궤적 변화x)’ vs ‘만남 (궤적 변화 o)’ 이라고 한다.
Q: ‘만났다’라는 증거는 무엇인가?
A: 타인의 시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누군가를 ‘만났다’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x와 만나 방향이 틀어지고 y와 만나 방향이 틀어져서 결국 목적지에 도달한다.
“익숙한 만남이 그려지는 사람에게서는 뻔할 것 같아서 만남을 주저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선뜻 시도하기엔 리스크가 클 것 같아 만남을 주저한다” 요즘 모델 주우재의 말 “예전엔 하나만 맞아도 사귀었는데 이제는 하나라도 안 맞으면 주저하게 된다” 라는 말에 공감을 하며 나온 말이였다.
동화 속 주인공인 ‘곰’은 어떤 ‘새’를 만나게 되는데, 그 새의 어떤 부분이 좋아 새를 찾아 세상 저편까지 모험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동물들과 만나(충돌) 경험을 쌓고 새들의 세계에 대하여 배운다. 주저하다가 새로운 가치관, 혹은 세계관을 못 보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