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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Feb 05. 2022

고민의 총량을 팝니다

브랜딩이란 관계 맺음이다

'스타벅스는 커피를 팔지 않는다', '애플은 아이폰을 팔지 않는다'. 마케팅이나 브랜딩을 조금이라도 공부했다면 수없이 듣는 말이다. 물론 제품 단위로 보면 스타벅스는 커피를 팔고, 애플은 아이폰을 판다. 하지만 소비자가 브랜드를 택하는 건 제품 때문만이 아니다. 소비자는 스타벅스가 제공하는 편안함, 감성, 문화를 소비한다. 또한 애플에서 느낄 수 있는 직관성, 창의성, 통합된 생태계를 소비한다. 소비자는 제품이 아니라 가치를 소비한다.


그런데 가치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의식적이고 일관되게 브랜드 자산을 쌓아나가야 한다. 애플이라는 브랜드의 이면에는 수없이 갈려나간 디자이너와 개발자의 노고가 있다. 그들의 고민이 제품과 서비스 하나하나에 녹아있다. 그렇게 깔끔하게 정돈된 결과물을 얻으려면? 애플 제품을 구입하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애플 스토어 앞에 긴 줄을 선다.


나이키나 레고도 마찬가지다. 왜 고작 운동화 하나에 감탄을 할까. 레고 피스가 딱 하고 맞아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왜 전율이 흐를까. 이 플라스틱 조각을 벼려낼 때 들어간 레고 디자이너의 숙고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난 그렇다. 그래서 그 비싼 돈을 주고 레고를 산다. 레고는 그 자체로 하나의 경험이 되고 가치가 된다.


글이나 영상 같은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만약 글을 읽을 때 술술 읽히고, 영상에도 어색한 부분이 없다면 최소한 편집자가 수없이 고민한 거다. 처음부터 모든 걸 완벽하게 편집할 순 없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경우에도 최소 1~2번의 퇴고를 거친다. 매일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평소에도 소재를 고민하고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게 애를 쓴다. (물론 매번 조금씩 실패한다)


소비자는 콘텐츠나 제품이 아니라 고민의 총량을 산다. 이는 마치 피카소가 냅킨에 휘갈긴 그림을 몇천만 원에 파는 것과 같다. 남들이 보기에는 낙서지만 피카소 입장에서는 모든 노하우가 녹아든 작품이다. 컴퓨터가 베낀 그림에 가치가 없는 이유다. 그래서 이른바 '전략적인 고민'이 요구된다. 소비자의 마음에 들어가서 그들을 위한 결과물을 산출해야 한다.


자극적인 썸네일과 제목으로 이목을 끄는 이들은 언뜻 이런 전략적인 관점을 제대로 체화한 것처럼 보인다. 이들의 콘텐츠는 항상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다. 반면 잔잔하게 자신만의 길을 가는 이들은 주목받지 못한다.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콘텐츠보다 연예인 가십이 더 각광을 받는다. 허탈해진다. 나도 저렇게 해야 하나 싶다.


그런데 전략적인 관점에서 보면 저들의 행보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대중은 자극을 접하면 항상 더 큰 자극을 원한다. 그게 자극의 생리다. 처음에는 각설탕 한두 개만 들어가도 충분했던 커피에는 이제 시럽을 몇 펌프나 넣어야 한다. 떡볶이도 점점 더 매워지고, 피자에는 더 많은 치즈가 얹어진다. 더 많이, 더 자극적으로, 더, 더, 더. 자극은 만족을 모른다. 순간적으로 소비되고 버려진다. 더 큰 자극을 찾아 나선다. 더, 더, 더.


전략이란 항상 지속성을 전제로 한다. 이 순간만 모면하면 된다는 마인드셋은 전략과는 거리가 멀다. 브랜딩은 전략을 동반해야 한다. 일시적인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문법으로 무장한다면 살아남는 브랜드가 될 수 없다. 당장은 뜨내기손님을 받을 수 있지만 금방 밑천이 드러나고 만다. 그런 브랜드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






브랜딩이란 거칠게 말해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제공할까'에 대한 대답이다. 꾸준하고 일관될수록 진정성이 생긴다. 이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으려면 오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대신 한번 구축되면 웬만한 일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브랜딩은 돈을 버는 방법론이 아니라 관계를 맺는 방법론이다. 경제적인 보상은 부산물이다.


매일같이 콘텐츠를 생산하는 내 입장에서 브랜드란 '타깃 독자층에 인사이트를 브런치 포스팅의 형태로 제공'하면서 만들어진다. 여기서의 타깃 독자층은 단순히 '30대 초반 남성' 같은 인구통계학적인 기준으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 매거진에 지속적으로 나오는 '퇴사'라는 키워드를 보자. 아주 단순하게 보면 이 매거진의 타깃 독자층은 '퇴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다. 사실 웬만한 직장인은 퇴사에 크든 작든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다들 사직서 한 장씩을 가슴에 품고 산다고 하지 않는가. 그럼 그 모두에게 소구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아주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다. 퇴사 통계를 소개하거나 퇴사 후 진로에 대한 짤막할 설명 정도?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브랜딩을 하려면 자신이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을 분명히 정의 내려야 한다. 물건을 팔아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내 사람'을 찾는 과정이다. 온라인에서 브랜딩을 검색하면 보통 순서가 반대로 되어있다. 어떻게든 많은 사람에게 사기에 가까운 콘텐츠를 팔아서 경제적 자유를 얻자는 식이다. 브랜딩의 1차 목적은 돈이나 경제적 자유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관계 맺음이다.


그럼 관계 맺고 싶은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자아성찰을 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를 떠올려보자. 그는 어떤 사람에게 애플 제품을 팔고 싶었을까? 아마 자신의 철학에 동의할 수 있는 혁신가가 아니었을까? 세상을 바꿀 창의성을 가진 해적 같은 사람. 스티브 잡스는 정확히 그 포인트를 짚었고, 많은 이들이 애플에 열광했다.






이 브런치는 '내 사람'을 찾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성찰이 끝나고 길을 떠나는 게 아니라 걸어가면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처음부터 자기 자신에 대해 완벽히 아는 건 불가능하다. 일을 진행하며 새롭게 발견하는 모습도 있다. 다년간 블로그에 연재를 한 결과 난 '자아의 고유성과 독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브런치의 큰 주제는 일, 사랑, 돈, 자아다. 그 중 어떤 포스팅을 읽어도 비슷한 주제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사색을 통해 나만의 길을 발견해야 한다는 거다. 일시적인 충동이나 유행, 타인의 시선, 사회적인 압박, 조직의 논리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대면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


사실 이런 메시지는 가장 잘 소비되는 분야는 아니다. 사람들은 보통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방법, 공무원에 합격하는 방법, 저 남자를 내 남자로 만드는 방법'을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내 인사이트는 지루한 공염불에 불과하다. 고유성이나 자아성찰 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고 있으니까. 알고 있다. 알면서 시작한 거다.


브랜딩을 하려면 길게 봐야 한다. 단기간에 가능한 건 프로모션이지 브랜딩이 아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신에 대한 성찰 -> 내 사람(타깃) 정의 -> 일관된 메시지 전달 -> 내 사람(팬층)이 모임 -> 브랜딩


물론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이유로 이 브런치에 모이는 건 아니다. 그냥 재밌어서 보는 사람, 공감해서 보는 사람, 새로운 생각이 신선해서 보는 사람, 어쩌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있겠지. 글이 쌓이고 다른 주제로 확장해야 할 때마다 겪게 될 일이다. '고유성과 독립'이라는 하나의 기치 아래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라는 사람이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될 때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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