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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꼭 해야 할까

아니, 꼭 해야 하는 건 아닌데 꼭 해야 돼

by 신거니

얼마 전 '연애를 하지 못하는 사람 유형'이라는 제목의 밈(meme)을 봤다. 무슨 말을 적어놨나 싶어 하나하나 뜯어보니 대부분 내게 해당하는 얘기다. 자존심이 강하고, 관계에서 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등등등. 하나라도 비껴가면 변명의 여지가 있을 텐데 이건 정말 빼도 박도 못할 일이다. 그래서 연애를 못하는 건가 싶다.


괜히 변명하고픈 마음이 올라온다. 그저 조금 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을 뿐인데, 이것마저 내려놓으면 정말 연애를 위한 연애 밖에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 와중에 혼자 사는 게 그리 불편하지도, 외롭지도 않으니 일부러 찾아 나설 이유도 찾지 못하겠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간다.


연애란 한국 사회에서 그래도 '잘' 살아가고 있다는 일종의 신호를 제공한다. 그래도 나, 파트너가 있다! 이런 식의 신호랄까. 상대방에게 어필할만한 성적 매력도 갖추고 있고, 사회적인 관계도 무난하게 맺고 있고, 연애를 이어갈만한 경제적인 능력도 어느 정도 있고 등등. 연애를 한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할 수 있다.


그렇다고 연애를 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없고, 반대로 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다. 다만 연인 유무에 따라 농담이든 진담이든 어느 정도 위아래가 나뉘는 걸 보면 연애에 뭔가 있긴 있나 보다. 글쎄, 연애하던 시절에도 딱히 누구보다 낫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니 모두에게 적용되진 않을 거고.


물론 연애가 필수냐고 물어보면 그렇지는 않다. 다만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하면 좋고, 하지만 어쨌든 해야 하는 무언가'에 연애가 들어간다. 그래서 하면 하는 대로,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질문을 듣는다. 연애 자체가 결혼의 전초전(?) 같은 이미지가 있으니 특히 가족이나 친척에게는 더욱 많이 접하게 될 말이다. 그건 그것대로 골치 아프지만 연인이 없다면 딱한 시선까지 받게 된다. 눈물을 머금고 반박해봐도 자기변명으로 비칠 뿐이다. 조용히 있는 게 상책이다.


'빛이 나는 솔로'가 되겠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생각보다 성취해야 할 게 많기 때문이다. 연애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사람이 되려면 갖춰야 할 덕목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만큼 연애가 내뿜는 사회적 신호는 강력하다.


설령 연애를 못하더라도 그건 딱히 잘못이 아니다.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잘못이고 문제다. 문제가 있는 사람은 연인이 있든 없든 힘든 삶을 살아간다. 오히려 파트너 탓에 더 큰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 반대로 혼자서도 인생을 잘 꾸려가는 사람은 애인 유무와 관계없이 알아서 살아간다. 물론 연애 상대방이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아예 연애를 포기하고 살 수만은 없다. 그 관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감정과, 경험과, 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연애는 (대개) 한 명의 사람과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이기에 특수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일무이한 순간의 원천이기도 하다. 친구와도, 가족과도 다르다. 오직 연인 관계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게 있다.


그래서 더 까다로워진다. 난 친구 관계도 함부로 맺지 않는다. 새로운 만남에는 항상 마음을 열어둔다. 다만 아무나 들이지 않는다. 나름의 기준으로 끊임없이 눈앞의 사람을 저울질한다. 내 시간과, 에너지와, 돈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그저 예전에 알았다는 이유로 관계를 이어갈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친구도 그런데 연인은 오죽할까. 물론 마음을 아예 닫고 살 수는 없다. 다만 연애가 내게 미치는 영향력을 알기에, 조금은 더 신중하고 싶을 뿐이다. 이 신중함이 지나치면 독이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무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난 흔히 말하는 '금사빠'는 아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알아가는 편이다.


그럼 대체 언제까지 알아가야 할까? 그건 경우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친구 관계를 맺는 경우에도 속도차가 있듯이 말이다. 찬찬히, 다만 확신이 생겼다면 확실하게. 이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사결정의 모습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탐색하는 기간을 가지다 맞다 싶으면 우선 지르고 본다. 가끔은 스스로도 놀랄 정도다. 내가 마음껏 즉흥성을 발휘하며 살 수 있는 건 이렇게 사전에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길거리를 걷는데 벚꽃 꽃망울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다. 당장 옆에 누군가를 데리고 오라는 듯, 그렇게 괜히 재촉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그저 내 내면이 만들어 낸 환상인 걸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혼자서도, 둘이서도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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