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퇴사해도 이직 안 할거야

회사가 맞지 않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by 신거니

오래간만에 회사 동기와 점심을 먹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퇴사 얘기가 나왔다. 그 친구도 평소 퇴사 노래를 부르는터라 물어봤다.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냐고. 전에는 이직을 할 거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자기는 퇴사해도 이직을 안 하고 사업을 하고 싶단다. 회사가 자신이랑 잘 맞지 않다며.


취업의 가장 큰 장점은 낮은 문턱에 있다. 살벌하게 얼어붙은 취업시장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사실이다. 회사일은 몇몇 전문직이나 기술직 정도를 제외하면 누구나 앉혀놓고 시킬 수 있다. 사실 그래야만 한다.


헨리 포드는 분업화를 도입해 장인의 전유물이던 생산 시스템을 다수의 생산직 노동자에게 위임했다. 한 사람이 혼자 자동차를 만들려면 엄청난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하지만, 분업을 통해 업무를 세분화하면 누구나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


학습 비용 및 기간이 획기적으로 줄고, 생산성은 대폭 상승한다. 본격적인 대량생산이 가능해진다. 이는 생산 현장에만 국한되지 않고 흔히 화이트 칼라로 불리는 사무직에도 그대로 도입된다. 수많은 회사원이 자리에 앉아 주어진 업무만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옆 부서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른다. 알 필요가 없다.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효율성 측면에서는 이만한 방법이 없다. 문제는 그 효율성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기계가 아닌 사람이라는데 있다. 사람은 반복적인 업무에 쉽게 질린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말이다. 실제로 분업 시스템은 이른바 '노동 소외' 현상을 야기한다. 노동자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도, 생산과정을 통제하지도 못한다. 그저 자신의 노동력과 임금을 매번 교환할 뿐이다.


노동 소외는 일에서 동기, 보람,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에게 가장 큰 장애물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번 일에서 소외감을 느낀다면 자신의 인생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퇴근 후에 '진짜 삶'을 찾는다. 이들에게는 워라밸이 중요하다. 가능하다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여가나 공부, 취미를 즐겨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일과 삶이 꼭 분리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예전처럼 회사에 충성하고 모든 인생을 바쳐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일 자체가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일에서 충만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리 노동시간을 줄여도 여전히 공허하다.


모르텐 알베크의 책 <삶으로서의 일>은 구성원이 업무에 의미를 느낄 수 있게끔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일과 삶이 건강한 형태로 융합할 수 있다.


일과 삶이 융합된 모습. 그건 어떤 형태일까? 적어도 지금의 내 모습은 아니겠지. 나도, 내 동기도 매일매일 괴로워하고 있으니. 지칠 대로 지쳐 퇴근 후 '진짜 삶'을 찾을 힘조차 없다면 어떨까? 해결되지 않은 모순은 차곡차곡 적립되어 언젠가 한꺼번에 인출된다.


회사에서 나를 찾을 수 없다면 밖으로 나와야 한다. 회사 업무의 문턱은 분명 낮지만 모두를 품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든 이가 퇴사를 할 필요는 없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저마다의 일을 하면 된다.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솔직하게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기. 그게 돈이든 지위든 안정성이든 보람이든 영향력이든. 자신의 일이 욕망을 온전하게 담아내지 못한다면 떠날 시간이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욕망을 따르는 삶이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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