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주인으로 사는 방법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는 퇴직 후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전까지는 몰랐지만 이제 '치약의 통통한 부분'같은 자유시간이 넘쳐난다. 평일에 공원을 가거나 늦잠을 자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는 자유로운 시간을 한껏 만끽한다.
퇴사 이후의 삶을 상상한다. 정확히는 내가 맞이할 시간을 상상한다. 퇴근만을 손꼽아 기다릴 이유도, 출근에 괴로워할 이유도 없다. 지긋지긋한 월요일도 다른 날과 비슷해진다. 주말이라고 특별하진 않다. 모든 시간은 그저 있는 그대로 내 앞에 놓인다. 사실은 이게 시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인간은 무한한 시간의 지표면을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없다. 유한한 존재는 무한을 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1년, 1달, 1주일 하는 식으로 시간을 잘게 쪼갠다. 그리고 그 쪼개진 조각마다 이름을 붙인다. 이름이 붙은 시간에는 규칙이 주어진다. 시계가 없던 시절, 닭이 울면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규칙은 모두의 삶을, 그리고 시간을 규정한다.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가장 대표적인 공간이 학교와 직장이다. 등하교,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의 일정도 촘촘하게 짜여있다. 학교나 회사의 시간에는 울타리가 쳐져있다. 허락된 시간에 허락된 만큼만 시간을 보낸다. 학교는 수업시간으로, 회사는 마감기한으로 울타리를 만들어낸다.
갑갑하지만 한편으로는 편하다. 내가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누군가 정해주기 때문이다. 모든 시간이 잘 정리된 채로 내 앞에 놓인다. 지칠 순 있어도 길을 잃지는 않는다. 또 퇴근 후에는 휴일이, 평일 끝에는 주말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다음 시간을 견뎌낼 힘을 얻는다.
휴일에 한없이 늘어진 내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퇴사를 하게 되면 이런 나날이 계속될 텐데, 정말 괜찮은 걸까? 어떤 형태로든 시간을 보낼 방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회사라는 거대한 조각을 들어낸 자리엔 빈 도화지가 남아있다. 갑자기 그 시간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 주어진다. 좋으면서도 두렵다.
아이러니하다. 자유를 얻기 위해 퇴사를 결심했는데, 막상 그 자유 앞에서 주춤하다니. 사실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난 항상 어딘가에 소속되어 살아왔다. 가족, 학교, 군대, 직장 등. 집단은 구성원의 시간을 규율하면서 동시에 책임진다. 이제 난 나에게 소속되어야 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꽤 긴 시간 동안.
새로운 규칙이 필요하다. 규칙 없는 삶은 견디기 어려우니까. 거대하게 밀려오는 시간의 파도에 압도당하지 않으려면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 규칙을 내가 정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내 몸과 마음의 흐름에 맞는 시간. 이건 내가 바라는 자유의 모습이기도 하다.
정신없는 아침엔 운동으로 몸을 깨우고, 능률이 나지 않는 오후에는 휴식을 취한다. 가장 머리가 잘 돌아가는 오전, 저녁 시간엔 일을 하고 책을 본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뭘 하겠다고 정해놓기보다는 울타리를 유동적으로 세워둔다. 꼭 평일에만 일하라는 법은 없고, 주말에 쉬라는 법도 없다. 오히려 사람이 없는 평일에 놀러 다니고, 주말에는 집에서 일을 마무리해도 좋다.
누구와 시간을 보낼지 마음껏 선택할 수도 있다. 관계는 시간의 질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이 힘들다는 말은 이를 방증한다. 혼자 있고 싶으면 혼자, 친구와 있고 싶으면 친구와 시간을 보낸다. 적어도 억지로 부대껴야 하는 관계는 많이 사라진다. 평소에 사람을 많이 가리는지라 더없이 좋다.
자유란 거창한 게 아니다. 누군가는 자유를 '언제든지 낮잠을 잘 수 있는 모습'으로 정의했다. 낮잠이나 실컷 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