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싫어하는 일만 하며 살겠니

힘듦과 괴로움은 다르다

by 신거니

사막만큼 건조할게 분명한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한다. 가져온 물병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코로나 시국과 동시에 사라져 버린 정수기가 그리워진다. 하도 모니터를 들여다봤더니 눈이 뻑뻑하다. 글자가 두 갈래로 갈라져 보인다. 미간을 찌푸리고 자판을 두드린다. 사방에서 메일이 날아온다. 그리고 그 메일의 개수만큼 팀장님의 피드백이 달린다. 이건 이래서 문제고, 저건 저래서 문제다. 고민할 시간이 없다. 수시로 쏟아지는 업무에 숨이 찬다. 바람이나 쐬러 옥상에 올라간다. 맑은 하늘 아래 뿌연 담배연기가 나를 반긴다. 안타깝게도 난 비흡연자라 금방 내려오고 만다. 화장실에서 괜히 손만 오래 씻다가 다시 사무실로 들어간다. 어딘가에서 전화 벨소리가 울린다. 내 머릿속도 함께 울린다. 그렇게 영혼을 한껏 산화하고 나면 퇴근할 시간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방을 집어 든다. 한시라도 이곳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다. 거의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범인처럼 절뚝거리던 다리가 바르게 펴진다. 뚜벅뚜벅 달리다시피 걸어간다. 회사 건물을 박차고 나오고서야 몸과 마음이 트인다. 내일 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은 잠시 잊기로 한다. 이런 하루를 3년 정도 반복하면 이제 퇴사를 꿈꾸는 새나라의 직장인이 된다.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한다.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겠냐고. 역으로 되묻고 싶다. "그럼 싫어하는 일만 하면서 어떻게 살까요?" 물론 회사 생활에도 소소한 재미와 행복은 있다. 하다못해 군대 훈련소에서도 그런 순간은 있었다. 문제는 비율이다. 싫어하는 일 한 무더기에 체리가 하나 올려진다고 해서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일 가운데 힘든 순간이 좀 있다고 해서 내가 바로 무너져버릴까?


학창 시절에도, 군대 시절에도, 그리고 회사를 다니는 지금도 싫어하는 일을 묵묵히 견디는 법을 배운다. 사실 견딘다기보다는 그냥 내려놓고 관성으로 지낸다. 특별히 의지력이 강하거나 한 게 아니라.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순간이다. 즐기진 못하더라도 버틸 수는 있다. 그런 생각이다.


하지만 드디어 내 의지대로 그만둘 수 있는 순간이 찾아왔다. 이 순간이 날 괴롭게 만들 뿐이라면, 우리 사이엔 이별이 필요하다. 단순히 힘들어서가 아니다. 힘들었다면 오히려 버텼을 거다. 괴로움과 힘듦은 다르기 때문이다. 송길영 부사장에 따르면 힘듦은 날 성장시키는 촉매제이자 내가 가치 있다는 증거다. 하는 일이 힘들지 않다면 내가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 다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괴로움은 다른 영역의 문제다. 버틸 필요가 없다. 나를 갉아먹기 때문이다. 힘들면 버티고 괴로우면 나가야 한다.






지금 난 괴로운 걸까, 아니면 힘든 걸까? 그 둘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지나 봐야 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있는지 찬찬히 살펴봐야 한다. 오래간만에 헬스장에 가서 잔뜩 조져지고 왔다. 내 근성장에 진심인 회사동기 덕분이다. 힘들다. 정말 힘들다. 하지만 덕분에 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물론 내일이 되면 온갖 근육통에 시달리겠지만 최소한 괴롭지는 않다.


괴로움은 아무런 보상 없이 나를 소모시킨다. 회사에서는 월급을 받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월급이 내 괴로움의 대가가 아니라는데 있다. 월급은 엄연히 노동의 대가다. 괴로움은 거기에 사족처럼 붙는 거머리다. 가스 라이팅 하는 상사, 열악한 근무환경, 욕설이나 갈굼은 그저 덤일 뿐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월급 안에 욕먹고 갈굼 당하는 비용도 들어있는 거라고. (실제로 들은 말이다) 굳이 근로계약서를 들추지 않더라도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럼 좋은 근무환경에서 일하는 사람은 월급을 일부 반납해야 하나?


사람은 다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간다. 무엇을 싫어하는지도. 난 쨍하게 내려쬐는 형광등보다는 은은한 전구 불빛이 좋다. 삭막한 시멘트 건물보다는 자연의 내음이 좋다. 담배연기보다는 모닥불 연기가 좋다. 옆에 바짝 붙어 닦달하는 업무환경보다는 여유를 두고 깊게 생각하는 게 좋다. 속박보다는 자유가, 위계보다는 존중이 좋다.


이상적인 일의 형태가 조금씩 움튼다. 퇴사는 그 과정에서 잠시 겪는 에피소드다. 최소한 싫어하는 일만 하면서 살지 않으려고 치는 발버둥이다. 분명 힘들겠지만 난 안다.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걸. 긴 시간이 흐르고 뒤를 돌아봤을 때 이만큼이나 왔다며 놀랄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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