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말했다 '저 퇴사해요'

드디어

by 신거니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년간 이 순간을 그려보았다. 어떨까? 후련할까? 불안할까? 무서울까? 기쁠까? 상사는 뭐라고 할까?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알아내는 방법은 단 하나. 직접 해보는 수밖에. 그렇게 면담을 요청했고 사수와 팀장님께 각각 말씀드렸다. '저 이제 퇴사해요'


관계의 모서리는 이별의 순간에 더 선명해진다. 가장 솔직한 마음만이 자리를 지킨다. 속 깊은 얘기가 새벽 술자리에서 조심스레 얼굴을 내밀듯이. 팀도 팀이지만 사실 주변 동료에게도 많은 응원을 받았다. 아쉽다는 사람, 축하한다는 사람, 부럽다는 사람, 걱정하는 사람.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나의 퇴밍아웃을 받아들인다. 한 사람이 떠난다는 건 생각보다 큰 일이다. 조금은 더 책임감을 갖게 된다. 여기서 받은 사랑만큼 나가서도 더 충만하게 살아가야지.


어떤 기분이냐면, 사실 잘 모르겠다. 마음의 짐을 하나 덜어낸 만큼 시원하지만 이젠 정말 공식적으로 안전벨트를 푼 셈이니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 덤덤하면서도 끝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찡하기도 하다. 너무도 당연해서 모르고 살았던 관계의 소중함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인생은 혼자지만 그래도 같이 걸어갈 사람 정도는 있다. 회사에서 헛살지는 않았구나, 녀석.






퇴사는 좋은 결정이었을까? 사실 알 수 없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좋고 나쁨은 결과로 드러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다만 옳은 결정이었는지, 혹은 나에게 더 맞는 결정이었는지는 알 수 있다. 옳고 그름, 그리고 적합성은 동기와 과정으로 나타난다. 내가 무슨 이유로 그런 선택을 내렸는지, 또 어떤 과정을 밟아나갈지는 미리 생각할 수 있다.


결과는 알 수 없다. 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갖가지 변수와 요동치는 감정, 운에 의해 방향을 수시로 바꾼다. 다만 어떤 공을 대포에 넣고 쏠지는 결정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인생은 참 단순하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초연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퇴사 때문에 싱숭생숭할 때면 왜 그 길을 선택했는지 곱씹어본다. 난 철저히 나 자신의 내면을 따랐다. 이기적이지만 효과적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끼어들지 않으니 문제가 간단해진다. 내 안에서 피어오르는 욕망을 살폈다. 쉬고 싶다는 욕망,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욕망, 독립적으로 살고 싶다는 욕망, 세상을 더 알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하나둘씩 수면으로 떠오른다. 욕망을 하나씩 건져내어 펼쳐놓는다. 사실 하나같이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그 이야기를 경청했고, 생각보다 쉽게 마음을 먹었다. 퇴사하자.


내면을 꺼내놓고 잘 관찰해보자. 안주하고 싶다면 계속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더 좋은 회사로 가고 싶다면 이직 준비를 하면 된다. 나만의 사업을 하고 싶다면 창업을 하면 된다. 다른 세계가 궁금하다면 해외로 나가거나 아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면 된다. 다 필요 없고 그냥 쉬고 싶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냐고 되묻는다면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아직 그렇게 절박하진 않구나. 물에 빠진 사람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뭘까? 당장 물 밖으로 나와 산소를 마시는 거다. 불타는 빌딩에 갇혔다면 탈출해야 하고, 폭주 기관차가 달려들고 있다면 옆으로 몸을 피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하는데, 저렇게 해야 하는데 하면서 시간만 보내고 있다면 여유가 있는 거다. 괴롭고 힘든 거랑은 별개로.


'간절해야 뭔가를 이룰 수 있다, 미쳐야 미친다'식의 충고를 하는 게 아니다. 내면에 따라 살고 결과를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회사에서 미치도록 힘들다면 나와야 한다. 그게 두렵다면 남아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 현실을 부정하면 나만 괴롭다. 욕심을 버리거나 행동해야 한다. 괴로움이 커지면 자기 손해다. 난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라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실은 퇴사 결정도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사소하진 않다. 그냥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내면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마주한 갈림길이다. 방향은 명확하다. 어떻게 끝날지 모를 뿐이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반대로 회사에 다닌다고 해서 마냥 안정적이진 않다. 구조조정, 부서이동, 순환배치, 사업장 이동, 직무 변경, 승진 누락, 폐업 등 수많은 요소가 기다린다. 상사의 말 한마디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나를 보고 있노라면 이놈의 안정성은 대체 어디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제 한 달 남았다. 시작해야 할 일도, 끝내야 할 일도, 계속 끌고 가야 할 일도 산더미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지만 그래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잘했어. 그리고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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