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부터 다시 출근이다
다시는 직장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호기롭게 회사를 나온 지 2주, 한 채용공고에 붙어버리고 말았다. 퇴사의 아이콘(?)으로 길이길이 남겠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지만 실은 그렇지는 않다.
사건의 시작은 퇴사 당일, 호텔방에 앉아 혼자 지지리 궁상을 떨고 있을 때였다.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평소 눈여겨보던 채널에서 인턴 공고가 올라왔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지만 이건 거의 환승에 가까웠다. 마침 근무지도 새롭게 이사 가는 집에서 멀지 않다. 어떤 미지의 존재가 점지해준 자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박수무당이 신내림을 거부하면 신병을 앓는다고 했던가. 그렇게 운명이라고 하기엔 거창하고 우연이라기엔 신기한 마음을 안고 지원서를 보냈다. 결과는 합격. 다음 주부터 다시 기간제 직장인의 삶을 살아갈 예정이다.
굳이 '기간제'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해당 포지션은 두 달짜리 단기 인턴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기간제 직장인이다. 동시에 기간제 백수이기도 하다. 사람은 순간의 영원함을 믿지만 대개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고 또 새로운 시작이 있다. '평생'직장이 있었던 시절에도 마찬가지다. 죽을 때까지 다닐 수 있는 직장이란 없으며 또 계속 일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업의 본질이 그렇다.
순간은 덧없으면서 또 가치 있다. 삶은 유한하기에 귀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더욱. 좋아하지 않는 일이나 사람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하루라도, 한시라도 충만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 이렇게 살아도 무료할 때가 있고 그냥 흘려보낼 때가 있는 게 인생이다. 은연중에 이 순간이 영원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려면 시간의 유한성을 떠올려야 한다. 시간이 아까우니까.
이렇게 말하는 나도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어 아무 의미 없는 콘텐츠의 나선에 갇혀버린다. 이것만 보고, 이것만 보고 하다가 어느새 자정이 된다. 수면에는 진심인 편이라 자는 시간은 칼같이 지킨다. 아차 싶을 때가 많다. 나만의 시간을 오롯이 보내고 싶어서 퇴사를 했는데. 물론 아직은 쉬는 단계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그래 봐야 이제 2주다. 2주 만에 인생이 나락으로 갈 거였으면 학창 시절 난 방학마다 굴러 떨어졌을 거다.
애초에 알차게 시간을 보낸다는 건 뭘까? 자기계발 업계에서 알찬 시간이란 '생산성'이다. 쉽게 말하면 돈이 되어야 한다. 자기가 정한 목표를 달성하거나 사회적 지위를 올리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새벽 시간을 쪼개 미라클 모닝 챌린지를 하거나, 퇴근 후에도 여러 활동을 통해 열정을 불태운다. 자기계발의 가르침은 그래서 쉬이 자기 착취나 번아웃으로 이어진다. 모든 시간이 돈을 위해 직간접적으로 환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휴식도 돈을 벌기 위한 예열 과정이 되어버린다.
난 알찬 시간을 '충만함'으로 정의했다. 충만함이란 감정이다. 감정은 현실에 대한 가장 개인적인 해석이다. 개인적인 해석은 내가 가진 비전이나 철학과 맞닿아있다. 가장 자신답게 살아내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 대충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아니면 미국의 대법관이던 포터 스튜어트의 명언처럼 "보면 안다." (한 재판에서 예술과 포르노를 어떻게 구분하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보면 알 수 있는 걸 새삼 글로 옮기는 게 이 브런치에서 하는 일일지도.